목요일 수업을 하러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이번 여행에 함께 가는 황경림씨가 물어보더군요.
선생님,아람누리에서 빌린 책이랑 석류나무 그늘아래
소설 다 읽었는가 하고요.
아니 어떻게 아나 순간 궁금했는데 제가 글에서
읽었다고 빌렸다고 자랑을 늘어놓았으니 이미 그 글을
읽은 모양이구나 고개끄덕이고 빌려주면서
그런데 제가 요즘 파산지경이라
가우디랑 스페인 너는자유다 두 권을 황경림씨가 구해서
읽고 저도 빌려달라고 했지요.
어라,그러고보면 정말 많이 변했네요.저도
이런 소리를 얼굴 별로 붉히지 않고 하다니
옆에 있던 박혜정씨가 말을 받아서 선생님
그렇게 음악회 자주 다니니 파산할만 하지요라는
뉘앙스의 말을 해서 웃었습니다.
금요일 제가 교보문고에 갈 일이 있으니 대신 구해주겠다고
제안을 하니 그러면 먼저 읽고 달라고 하더군요.
총만 들지 않았지 강도가 따로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진전 보고 시립미술관에 가기 전의 잠깐 틈을 내서
교보문고에 들렀습니다.
두 권 구하고 그냥 나오기 아쉬워서 잠깐 둘러보는 사이에
세계미술관 기행 시리즈를 만났습니다.
갈등하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네요.
모르고 가는 것보다 얼마나 더 잘 볼 수 있겠나
그리고 책 사면 나 혼자 보는 것도 아니고 여럿이서
나누어 볼 수 있는 책인데 이렇게 마음먹고 한 권 더
그했습니다.
책과 음반앞에서는 자제력을 발휘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니 옷앞에서 자제력을 잃는 보람이를 나무라기만
할 일이 아니로군요.
다른 친구들은 엄마의 카드로 옷을 사지만
자신은 스스로 벌어서 ,명품이 아닌 옷을 사는데
엄마가 그것까지 간섭하는 것은 무리한 일 아닌가
엄마도 음반을 늘 같은 것만 듣고 싶지 않아서 자주
바꾸어서 듣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주장하는 말을
아직 다 수긍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값을 계산하느라 계산대에 서 있는 중에 갑자기
그 아이의 말이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나오더군요.
토요일 아침 피아노 소나타곡을 들으면서
프라도에서 만날 그림을 미리 검색해보느라 들어와 있는데
갑자기 라파엘로의 그림에서 아라곤이란 말을 보곤
눈이 반짝 합니다.

개인소장품이라고 되어 있네요.
아라곤의 후아나라,누구일까? 만약 그녀가
이사벨과 페르디난드의 딸 후아나라면 아라곤의 후아나라고
하진 않았을텐데 궁금하지만 지금 그것을 찾으려면
복잡하니 두고 그림먼저 싶어서 그냥 진도를 나갑니다.

바로 이 그림이 프라도에 걸려있는 작품이라고 하네요.
라파엘로,별로 관심이 없던 화가였는데
내셔널 갤러리에서 처음으로 그가 그린 교황앞에서
마음이 떨리는 경험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림을 잘 모르던 시절,그 그림과 렘브란트,그리고 티치아노
그렇게 세 명의 화가를 발견하고
돌아와서 한동안 그들의 그림을 보게 되었지요.
언제 어디서 무엇을 만나고 그것이 사람의 인생을 변하게
할 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요.
다만 지금 내가 지닌 것만으로 살아도 충분하다는 그런
마음만 버린다면 어느새 스미어 들어오는 것,혹은
어느 날 망치로 내려치는 것같은 충격으로 쳐들어오는 것
그런 것들과의 만남으로 인생은 어느 순간 변하기 시작하는
그런 경험을 가끔 하게 되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일의
경이로움이 아닐까요?

첫 부인 사스키아를 모델로 하여 아르테미시아란 제목으로
그린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빛이 주인공이로군요.
이 그림이 어떻게 프라도까지 가게 되었는지 사연은 모르지만
그렇게 멀리서 렘브란트를 볼 수 있다니 기대가 됩니다.

이 그림에서도 세 개의 황금사과가 등장하지요.
달리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아틀란타가 처녀성을
지키기 위해 결혼을 하기 싫어합니다.
그녀는 구혼자에게 달리기에서 이기면 결혼하겠다고 하는데
이 남자 히포메네스 이전에는 다 이겨서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 수 있었지만 이 남자가 황금사과를 던지는 바람에
그것을 줍기 위해 고개 숙이는 순간 히포메네스는
앞질러가게 된다는 이야기에서 소재를 딴 그림입니다.
바로크시대의 화가인 귀도 레니의 작품인데 이 작품도
프라도에 있네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로스5세가 그가 떨어뜨린 붓을
줍기도 했다는 티치아노
그것이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식의 생각이고
당시의 신분격차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대단한 파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티치아노의 다나에,렘브란트의 다니에
그리고 클림트의 다나에
같은 소재로 그린 서로 다른 화가들의 다나에를 한자리에서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그럴 기회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다른 그림도 아니고 자화상이 프라도에 있다니
사연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신기합니다.


이 그림들이외에도 펠리페 2세를 그린 그림도 볼 수 있으니
전혀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좋아하는 화가 티치아노를
만나게 되는군요.
이 화가들 이외에도 브뤼겔,보슈,로렌초 로또,뒤러등
상당히 다양한 화가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집니다.
어제 등기로 비행기표와 일정표를 받았고
새로 여행가방도 준비를 했으니
정말 떠나기만 하면 되는군요.
고흐를 만나러 간 전시장에서 그림보러 들어가기전
보람이랑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가우디 책을 보여주었더니 엄마 그렇게도 여행가는 것이
행복한가 하고 물어보더군요.
그럼,한 번 가는 것으론 모자랄 것 같다고 하니
그러면 십년만 기다리면 내가 보내줄께라고 하네요.
그 말 녹음해놓을까 하고 웃던 기억이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