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을 보고 반하게 되는 경험을 하지요.가끔은
제겐 발라스케스에게 반했다란 기분을 느낀 첫 그림이
바로 이 세비야의 물장수였습니다.

아,그러고보니 왜 세비야의 물장수인가 했더니
그가 그 지방 출신이었군요.
그런데 그때도 물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인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이상하네요.이 그림을 그렇게 여러차례 보고도
제목에서 이상한 낌새를 못 채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대목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한 번 인연을 맺은 다음 죽을때까지 화가를 지원하고
아꼈다는 펠리페 4세입니다.
그를 처음으로 본 것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였다고
기억을 하는데 그때만 해도 그림을 잘 몰랐고
눈을 반짝이게 하는 그림이 워낙 많아서 그냥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두 번째 갔을 때 조금 더 친숙하게 만나게 되었고
화가의 이름도 기억하게 되었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펠리페 4세를 그리고 나서 그는 일종의 편애의 대상이 되어서
다른 궁중화가들로부터 질시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서열을 중시하고 있었을 시기에 혜성처럼 나타난 화가라
나이도 더 많았던 화가들에겐 이 일이 그렇게 쉽게
마음정리될 일은 아니었겠지요?
1625년에 장차 영국 왕이 될 찰스 황세자가 펠리페4세의 누이와
결혼하기 위해 마드리드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 때 왕세자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기록에는 나와 있으나 그 그림이 유실되었다고 하네요.
아쉬운 대목이군요.
반 다이크의 그림으로만 알고 있는 찰스왕의 얼굴을
벨라스케스는 어떻게 그려냈을까 궁금하군요.

벨라스케스는 의외로 종교화를 많이 그리지 않았더군요.
그런데 이 그림에서 보면 달걀 부치는 여자의 그림에서처럼
손을 처리한 기법이 비슷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빛의 영향만이 아닌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는 외교사절로 이 나라에 온 루벤스를 만나게 되고 나서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은 열망을 느낍니다.
떠나기 전에 처음으로 그린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이라고 하는데요
가운데 있는 사람이 바쿠스라고 하네요.
그런데 지금은 이 그림의 제목이 주정뱅이들이라고 알려졌다고
하는데 아마 화면안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연유한
제목일까요?
30세에 떠난 예술의 전당으로의 여행
그는 그곳에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그리고 티치아노와
틴토레토의 그림에 매료된다고 하는군요.
여행후 돌아와서 그린 그림중 하나입니다.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그린 그림인데요
왼쪽에 서 있는 신이 아니라면 이 그림이 일반 대장간을
묘사한 그림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신의 세계가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온 그림이라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이 그림도 같은 시기에 그려진 것인데요
요셉의 옷이란 제목의 그림입니다.
그러고보니 요셉의 옷이란 소재는 처음보는 것같습니다.
자식을 공평하게 사랑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그것이
몰고오는 비극에 대한 하나의 예로써 읽을 수 있는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만나니 새로운 기분이어서
찬찬히 그림속을 들여다보게 되는군요.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화가에게 왕은 왕궁안에 작업실을 마련해주고
열쇠를 마련하여 매일 작업실에 들러서 그의 그림을 보았다고
하네요.
그림에 대한 깊은 관심이 아니면 이런 일은 사실 상상하기
'
어려운 일인데 싶어서 다시 한 번 펠리페 4세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는 종이에는 화가의 서명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왕비 이사벨입니다.

왕가의 초상화를 그리는 한편 이 시기에 그린 또 하나의
걸작이 바로 십자가위의 그리스도인데요
화가들인 그린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란 작품만을 모아서
전시를 해도 화가들의 개성을 비교하면서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당시 왕가에서는 사냥이 상당한 오락이자 훈련이었다고 하는데
펠리페 4세 역시 사냥을 즐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턱선을 보고 있으려니 역시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람이로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당시의 실세중의 한 명인 올리바레스 백작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은 사냥총을 들고 있는 펠리페 4세와 짝을 이루는
기분이 드는 그림인데요
왕의 동생이라고 하는군요,그런데 총을 들고 있는 자세가
달라서 구도가 새롭게 보이는군요.

왕은 화가가 이탈리아에 가 있는 동안 다른 화가들에겐
아무에게도 그림을 맡기지 않다가 그가 돌아오자 마자
가족의 초상화를 부탁했다고 하는데 그 시기에 그려진
왕세자 발타사르의 그림입니다.
당시 유럽에는 난쟁이가 궁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이번에 본 골든 에이지에서도 첫 장면에서 엘리자베스여왕이
난쟁이와 함께 등장하는 모습이 나오더군요.

당시 유럽왕실의 혼맥은 정말 복잡하던데요
펠리페 4세의 부인은 프랑스의 브루봉왕가 출신이고
루이 14세는 펠리페의 조카이면서 동시에 사위가 되기도 하는
이런 복잡한 촌수로 인해 왕위 계승전쟁이 일어나서
전쟁으로 치닫기도 하고 화해를 하기도 하고
그래서 유럽의 역사는 읽을 때마다 어느 부분은 엉켜서
참 복잡하네 하고 한참을 헤매게 되더라고요.

어린 왕세자가 커서 이렇게 사냥총을 들고
사냥꾼 흉내를 내면서 모델이 되어주고 있군요.

그는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죽었는데
벨라스케스의 그림속에서 살아남아 한 인간의 성장과정을
따라가보는 사진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