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의 일입니다.
제가 의견을 냈지요.언제 한 번 가을이 다 가기 전에
헤이리의 카메레타 (키메레타? 정확한 이름을 모르겠네요
갑자기)에서 수업을 하면 어떤가 하고요
이번 가을에는 도대체 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주로 공연장에 간 바람에 가을을 제대로 못 느꼈거든요.
그랬더니 자전거님이랑 권희자씨가 선뜻 그러자고 동의해주어서
어제 집앞에서 만나서 헤이리로 갔습니다.
가는 길 차속에서의 이야기도 좋지만
역시 밖에서 보이는 색색의 나뭇잎들이 눈을 유혹합니다.
한 나무안에서 보여주는 색의 다른 층위라니
그것이 어울려서 내는 화음이 일품이네요.
오랫만에 와 본 헤이리에도 역시 건설의 열기가? 가득하여
조용하던 시절이 오히려 그리워지고
이제는 더는 그만했으면 이대로가 더 좋은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도착하여서 보니 문을 여는 시간이 열한시로 되어 있네요.
어라,지금 10시 30분인데 하고 걱정하는 중에
황인용씨가 등산복차림으로 카메레타 앞에 있다가
들어와도 된다고 브람스를 틀어주겠다고 합니다.
음반이 그 곳에서는 엘피판으로
첫 소리가 나는 순간,아 이것은 마치 제가 파리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다른 오케스트라와 스피커가 질적으로 다른 것이
바로 이런 기분인가 하고 느꼈던 날의 기분을 상기시킵니다.
여기 공부하러 오긴 했지만 저런 소리를 옆에 두고
귀에 잘 들어오겠나 순간 고민에 빠집니다.
그래도 간간히 소리속에서 길을 헤매면서
프란스 할스와 렘브란트 그리고
당시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난 에너지의 대폭발을
경험한 17세기의 네덜란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할스에 대한 반룬의 찬사는 대단합니다.
84세에 그렸다는 구빈원 여성 위원들의 그림에 대해선
song of color라는 극찬을 했는데 그 말이 인상적이어서
오늘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당시에는 집단 초상화가 유행했다고 하는데요
인원수대로 돈을 걷어서 지불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렘브란트가 대상을 똑같은 비례로 그리지 않았을때
돌아온 비난이 이해가 되지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집단초상화가 미적으로 승화되어
표현되었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불한 만큼 제대로 그려졌는가가 더 의미있는 일이었겠지요.

어제 그동안의 피로가 폭발하여 잠을 오래 잤더니
아침에 허리는 조금 결리는 기분이지만
몸상태는 아주 좋네요.
슈베르트를 틀어놓고 렘브란트 자화상만을 보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작정하고 그려진 연대순으로 찾아서 보고 있는 중인데요
누군가 전문가가 그의 자화상만을 갖고 제대로 된
렘브란트 책을 한 권 써준다면 정말 좋으련만 하는
기대를 하는 아침이기도 합니다.


같은 1630년대의 그림인데 사뭇 다르지요?
그 기간안에 첫 부인 사스키아의 죽음이 자리합니다.
그에게 여신이나 다름없던 그녀의 죽음은
죽음자체도 그렇지만 그녀가 한 유언으로 인해
렘브란트는 수렁으로 빠지게 되더군요.
아들 티투스만을 남기고 죽은 그녀는 남편에게
유산을 상속하긴 하지만 그것을 아들을 위해서만 쓸 수 있게
했고
그리고 사실 요란하던 유산이란 것이 뚜껑을 열어보니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는데
그 이전에 렘브란트는 그림이 잘 팔리고 유명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소품이란 생각에서 참 많은 물건들을
구하고,그리고 집도 중산층 남자에겐 분이 넘치는 집을
구하기도 합니다,물론 사스키아에게도 보석류를 많이
사주기도 하고요.
그러나 일명 야경이라고 번역된 집단 초상화이후에
그에겐 주문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업친데 덥친다는 우리 속담이 그에게 딱 들어맞은 셈이지요.
살아가는 일에 겹친 이런 악재가 오히려 그의 그림세계에선
일종의 전환점이 되고 그를 위대한 화가로 우뚝 서게 하니
고통을 통하여 인간은 지혜를 얻는다는 문학의 주제는
바로 렘브란트에게도 그대로 들어맞은 셈이 된 것일까요?

중간 시기의 그림이 없을 리는 없는데 찾기 어려워서
그 다음 고른 것이 1659년작입니다.

이 작품은 1660년작이고요
지금 찾고 있는 싸이트에서 발견한 자화상은 이것이
전부인데 조금 미진해서 다른 곳을 뒤적이니
1640년작이 한 점 나옵니다.

이 작품은 그가 경매에 나온 라파엘로의 그림을 사고
싶었으나 너무 비싸서 도저히 손에 넣을 수 없었다고요
그래서 현장에서 스케치한 다음
자신의 자화상에 그 구도를 이용했다는 그림이네요

이 작품은 1661년작입니다.
그런데 60년의 자화상보다는 뭐랄까
이미 달관한 표정이라고 할까요?
이상하게 더 마음에 끌리고 오래 마음속에 남을 그런
그림입니다.

자화상으로 남은 한 인간,위대한 화가의 일생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그리고 있는 인생은 어떤 것일까?
문득 등허리가 서늘한 기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