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에 관한 글이 흘러넘치는 시기에
마음이 불편한 적이 있었습니다.
완전 올빼미인 제겐 불가능한 일이라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그런 심정도 있었고요.
새벽3시까진 거의 말짱한 정신으로
그리고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4시 정도까지는 제대로
무엇에 집중하는 일이 가능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제겐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살아왔는데
어제 과제를 준비하는 일로 제가 쓰는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보람이 때문에
(그리고 감기가 완전히 낫지 않아서 몸이 조금
불편한 것도 있어서 )
방을 양보하고 열두시 조금 넘어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다 쓴 영작문과제 고치는 것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전화로 일어날 시간도
맞추어 놓고요.
정작 눈이 떠진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두 시간이나
이른 새벽 다섯시,불이 켜 있길래
건너와 보니 아이는 요까지 떡하니 깔아놓고 잠이
들어있네요.
깨워서 물어보니 한 가지 숙제는 마무리했지만
영작문은 생각이 진전되지 않아서
마무리 못하고 잠이 들었다고요.
주제가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 중요한 것들에 대한 것이라고
하네요.
보람이는 컴퓨터 책상앞에 앉아서
저는 깔아놓은 요에 누워서
질문하고 제가 질문을 하기도 하면서 한 시간 가량
지나니 숙제가 끝나고
8시에는 꼭 깨워 달라는 말을 남기고 잠을 자러 갔습니다.
다시 잠들기도 애매한 시간인 6시
어제 일찍 자서 몸이 개운한 상태라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를 틀어놓고 듣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일요일 이래로 첼로소리가 친구가 되고 있네요.

오늘 아침 수요일 모임에서 이야기할 대목이
렘브란트 시대의 네덜란드와 루이 14세 시기의 프랑스라서
어제 밤 반룬의 예술사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첼로소리와 더불어 선택한 그림이 프란스 할스인데요

반룬의 설명이 인상적이어서 프란스 할스의 그림이 보고
싶어졌거든요.

지금의 네덜란드도 궁금하지만 제겐 17세기의 네덜란드가
가장 궁금하고 놀랍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에너지의 폭발을 경험한 시기,마침 그 시기를 살면서
당대를 기록한 사람들,그중에서도 화가의 활약이
두드러진 시기였지요.
거인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긴 활력으로 생의 에너지를
폭발시킨 작은 나라,

나라만이 아니겠지요?
한 개인에게도 삶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시기가 분명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벽에 깨어 보람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작문 숙제하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 아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였을까하고요.

그림을 찾다가 만난 르네 데카르트입니다.
아,그러고보니 데카르트가 일정 기간 이 곳에 와서
산 적이 있어서 이런 초상화가 할스의 손으로 그려진
모양입니다.
당시 유럽에서 사상으로 박해받기 쉬운 사람들이 선택한
나라가 네덜란드였다고 하니까요.

이미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으니
앞으로는 어떤 엄마로 아이를 도울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크고 나니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네요)

그림 검색을 하다보니 초상화가 많은 중에도
당당한 포즈로 자세를 취한 여성의 초상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띄입니다.
그들이 귀족이 아니라 당시를 살던 평민들이란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고요.



첼로소리를 벗하면서 할스의 그림을 보는 시간
창밖에선 벌써 아침이 밝아오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