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오치균님의 갤러리주소를 올려주신
깜빡이님 덕분에 파스텔화를 구경하고 나서
다음에 시간이 나면 다시 들어와서 산타 페 그림을 보아야지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추석연휴 마지막날 늦은 아침을 먹고 나니
조금 시간여유가 생겨서
새로운 피아노 악보 한 곡 보다가 여기 저기 막혀서
짜증이 나려고 하네요.그렇다면 기분을 전환해서
그림부터 보고 나서 다시 시도해보자 싶은 마음에
베토벤 음악 한 곡 크게 틀어놓고
그림을 보려고 들어왔습니다.
화가는 뉴욕에 그림으로 유학을 간 이후에 산타 페쪽으로
이사해서 한동안 산 모양입니다.
당시 살아가면서 그린 그 주변의 풍경인 것 같은데요


소설가 한승원의 추사를 읽다보니 추사가
유배의 어려움속에서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플때
그에겐 글씨를 쓰는 일,쓸 수 없는 상황이면
머릿속으로 그리기라도 하면서 고통을 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붓으로,악기로,글로
삶의 고통을 ,환희를 표현하는 존재로구나
그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의지해서 무엇을 이루거나 넘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겠지요?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언젠가 그런 것이
나타나는 순간이 있을 수도 있고요.

남인과 노론이란 정치적 배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나눈 다산의 아들 정학연,학유 형제와
김정희 형제의 우정
초의선사와 추사의 우정
근엄한 세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조선시대에
지식인들이 나눈 우정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추사를 읽는 동안

안동김씨의 눈에 그의 재기가 가시가 되지 않도록
파락호 생활을 하던 이하응이 어느 날 추사를 찾아왔을 때
그를 알아본 추사가
소나무가 아니라 난을 쳐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추사에겐 적자가 없어서 양자를 들이더군요.
그러나 그가 아주 사랑한 초생에게서 낳은 서자가 있습니다.
김상우라고
추사가 상우를 낳고 나서 후회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나오지요.
서자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도 부르지 못하고
대감이라 불러야 하는 상황에서 그 아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 걱정하면서
왜 이 세상에 아이를 내놓았을까 하는 자책을.
소설가의 관심때문인지 상우가 상당한 비중으로 소설속에
등장을 하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 이 아이는 소치 허유를 그린 소설속에서도
등장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추사를 찾아간 허유와 동무처럼 지내다가
허유가 발군의 실력을 보이자 갈등하는 인물로 그려지더군요.
아버지가 넘을 수 없는 산인 사람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얼마나 버거운 짐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인물이었거든요.

소설은 주인공때문에 읽기 시작하지만
그 소설속으로 들어간 순간 전혀 다른 인물들과도
만나게 되지요.
이번 소설에서 관심이 간 사람중의 한 명이 김조순입니다.
정조의 신임을 받아서 순조의 장인이 된 사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세도정치를 연 인물인데요
그래도 다른 안동김씨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조는 왜 그를 그토록 신임했을까?
한 번 뒤적여 볼 필요를 느끼게 한 인물이었거든요.


세자일때 의문의 죽음을 당한 소현세자
그의 삶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강한데
이번에 새로 발견한 세자,효명세자 혹은 덕인세자라고도
불리는 인물이 있습니다.
순조의 아들로 박규수와 친했던 인물,추사가
그의 인품을 능력을 높이 사고 그가 왕이 되면
정조대왕을 뒤이을 인물로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를 추종하던 인물들이 안동김씨의
계략에 의해 유배를 가게 되더군요.

순조에 뒤이은 왕이 헌종인데 헌종이 어려서
역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심화되고
그 다음에 철종-강화도령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진 -
여기서부터는 비교적 조선 말기의 역사가 잘 알려지긴 했지만
비극으로 치닫는 역사라서 읽을 때마다 우울한 기분을
뿌리치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소설을 한 권 읽고나면 그 시기의 역사를 찾아서 읽는
기폭제가 되는 그런 경험을 쌓으면서
제 한국사 읽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첫 인연은 소설 목민심서였었지요.
그렇게 맺은 인연이 십년이 넘고 있습니다.
참 긴 세월인데 한 고비 넘길 때마다 누군가 소설가가
다시 새로운 인물을 형상화해서 보여줍니다.
이번에는 누굴 만날까,그런 기대가 있지요.
소설가 한승원님이 형상화한 원효도 있다고 하니
다시 돌아서 신라시대로 가볼 수 있겠구나
기대하고 있습니다.


적당한 수다와 그림보기,그리고 귀를 즐겁게 하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로 기분이 업되었으니
다시 어렵게 느껴지는 악보 새로 보기에 도전해볼 힘이
생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