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요즘 저는 보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한 표
던지고 있는 중입니다.
르 코르뷔지예란 건축가의 말을 인용한 미술시리즈책이
있더군요.
내 손안의 미술관시리즈를 빌려 읽던 중 첫 머리에서
만난 그 말이 눈에 들어와서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구나,요즘 현대미술 강의 들으면서
정말 공부의 즐거움을 깊이 느끼고 있는 중이라 그런지
보는 만큼 새롭게 보이는 것들에 감탄하다보니
그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는지도 몰라요.
다만 제대로 된 가이드를 만나면 보는 만큼이 더 풍요롭게
아는 것으로 연결이 되겠지요?

이 그림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오르세 미술관 전시에서
만나서 참 반가웠던 그림이지요.
생각보다 캔버스의 크기가 작아서 놀랐던 기억이
새롭네요.
오늘은 그림속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표정을
살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드가의 조각에 모델이 된 이 소녀를 주인공으로 해서
쓴 재미있는 동화책이 번역이 되었더군요,
저는 마침 영국의 미술관에서 이 책을 영어판으로 발견하여
사들고 와서 아이들에게 읽어보도록 권하는데
이미 동화책을 읽은 아이들의 반응이 더 열렬하더군요.
선지식의 유용함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다리미질 하다가 고단하여 하품하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다가
문득 오늘 인터넷에 뜬 기사가 생각나는군요.
맞벌이 (이런 표현은 사실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남자가 직업을 갖고 있을 때는 벌이라고 표현하지 않다가
부부가 함께 일하면 맞벌이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여자의 일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부부의 가사노동을 평가한 것인데 하루에 남자가 일하는
시간이 평균 32분이라면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이
208분이라고요.
가슴이 멍멍한 느낌이더군요.
변화는 얼마나 더딘가,딸이 있는 제겐 이 수치가
말해주는 것의 의미를 많이 생각하고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딸 자신이 이런 현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지난 금요일
국립박물관내에 있는 극장 용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뮤지컬로 본 기억이 나는군요.
7년전인가 초연이래로 극단측도 극단측이지만
관객의 열렬한 지지속에서 (물론 모든 관객은 아니고
열혈팬들의 지지에 힘입어) 지금까지 무대에 오르고 있는
뮤지컬인데 이번에는 초연 멤버들이 모여서
무대가 막을 열었다고 하네요,
everymonth의 켈리님 덕분에 그 공연에 가서
오랫만에 다시 괴테와 만나고 그 시대의 독일과 만나기도
했지요,
알아듣진 못해도 독일인이 하는 공연은 어떨까
느낌이 다르겠지 싶기도 하더군요.

이 뮤지컬에서 저는 연출에서의 조명의 힘에 대해서
크게 느꼈고,뮤지컬의 반주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의 힘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롯테가 치는 금단의 꽃이란 멜로디가 반복되면서
그것이 갖는 비극성을 점점 강화해서 보여주는 것
이 때 들려준다는 표현보다는 보여준다고 느낀 점이
신기했었습니다.

처음 고른 그림의 여파일까요?
오늘은 음악에 관련된 드가의 그림 위주로 골라서
보게 되네요.
이번 주 금요일에 한 번 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러가고 싶다,그렇다면 미리 괴테의 작품을 다시
한 번 읽고 소설을 어떤 식으로 가지치기 하고
대본으로 만들었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아니,그럴 것은 없고 그냥 다시 음악속으로 들어가보나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서 더 이런 그림들에 눈길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