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들어와서도
밤에 들어와서도 어제 읽은 마네의 책을 따라서
그림을 고르고 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는데
이상하게 두 번 다 글이 아차 하는 순간 날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새로 산 컴퓨터라 이제 동영상이 제대로 작동하여
장영주의 오래 전 클래식 오딧세이를 틑어놓고
소리를 따라가면서 그림을 보는 행복한 시간을 누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뿔사 아깝다 절로 혀차는 소리가 들리는지요?
다시 재생하여 글을 쓰는 일은 어려워도
아직 연주가 다 끝나지 않았으니
나머지 그림을 보면서 복습을 해야 할 모양입니다.

마네는 인생의 여러 시기마다 그에게 강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을 만났다고 하네요,
초기엔 보들레르와 올랭피아의 모델인 빅토르 뫼링
(불어라 정확한 이름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중기에는 에밀 졸라와 베르트 모리조라고 하는데
그녀는 모델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인상주의 화가였지요.
그녀의 권고로 일시적이지만 마네는 야외로 나가서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그 때 모네와의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 시기의 그림이 가장 인상파들과 가까운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로 인해 에밀 졸라와는 인연이 멀어지게 되었다고요.



선상 스튜디오에서 부인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네,그를 그린 마네의 작품입니다.

프레임안에 인물이나 사물이 다 들어가지 않고
중간에서 짤려버리는 것,이것이 정말 혁명적인 변화였다고
하네요.
인물이 바짝 앞에 나와 앉아 있어서
그림을 보는 우리와의 거리가 느껴지지 않아서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어쩐지 더 가깝게 바라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는 묘한 그림입니다.
그리고 배 뒤로 보이는 물색깔을 이리 저리 바라보게 되는
그런 그림이기도 하네요.

생 라자르역이라고 제목이 붙어 있지만
역자체 보다는 역앞에 서 있는 두 사람,한 여자는
조금 지친 듯한 표정으로 우리 앞을 바라보지만
어린 아이는 오히려 호기심에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어린 아이보다 그 아이의 옷이 주인공인 것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다시 바라보게 되는 그림입니다.
마네에게는 사람과 사물사이의 위계질서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하네요.
색으로 표현하는 대상일 뿐 그림에서 심리적인 ,혹은
감정적인 표현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마네.그 말이 바로 이런 그림에서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앞에 서 있는 아직은 다 자라지 않은 아이가
바로 마네의 아들인데 무슨 사연인지 아이에게
엄마 성을 붙이고 남동생으로 키웠다고 하네요.
나중에는 아들인 것을 인정했다고 하니 참 특이한 일이네
다시 그 아이를 바라보게 됩니다.

멕시코의 황제로 보내졌다가 나중에 멕시코 혁명이후에
총살형을 당한 막시밀리안 황제인데요
그의 총살형을 다룬 그림이 고야의 그림과의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러나 고야의 그림에서는 흰 옷입은 남자가
마치 순교하는 듯한 느낌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반면
이 그림에서는 일체의 감정이 배제된 느낌이 들어서
두 화가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그림입니다.

마네하면 올랭피아,풀밭위의 점심등이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저는 마네의 정물화에 끌리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도 눈길이 가는 자주 바라보게 되는 그림이지요.
장영주가 인터뷰하는 내용이 나오는군요.
누구의 연주를 좋아하는가 하고 물으니
오이스트라흐의 따뜻한 음을 정말 좋아한다고 하네요.
하이페츠의 소리,오이스트라흐의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서 갑자기 그들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