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12주간에 걸쳐서 듣게 되는 2학기
현대미술특강,무엇을 새롭게 만날 것인지 기대가 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준비하는 마음으로 첫 강의라고 적혀있는
쿠르베에 대해서 읽고 그림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주의를 연 선구자,내게 천사를 보여다오,그러면 그릴 수
있으니까란 인용구로 유명한 화가이지요.
그는 오르낭출신으로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났다고 하네요.
집에서는 그가 법을 공부하길 바래서 파리로 유학을 보냈지만
다른 화가들처럼 역시 그는 법공부가 잘 맞지 않았겠지요?
파리에서 스투디오에 다니다 그 곳에서 가르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박물관에 가서 그림을 보거나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당시 아카데미즘이 추구하던 미술의 경향을 싫어한 그는
자연을 제대로 재현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꾸준히 추구하면서 많은 뒤따르는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고 합니다.
더구나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적인 사고를 했던 그는
농민을 화폭에 담는다고 해도 밀레의 그림에서 보이는
이상화된 그림이 아니라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게 되지요.
그러니 화가의 인생관,혹은 가치관이 작품속에서 어떻게
녹아들게 되는지,그가 살았던 시대에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었는지,그런 사회,경제적 변화가 화가에게 무엇을 사고하게
만들었는지 등을 생각해보는 것도 그림을 보는 일중에
상당히 중요한 관점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가치관 자체가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모르고 작품을 보게 되는 경우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겠지요?
그가 살았던 시기에 1848년의 혁명이
그리고 1871년의 파리 코뮨이 있었고 이 시기에 그가
관여한 일로 인해 6개월간의 감옥살이와 벌금형을 받았고
벌금을 갚을 여력이 없어서 결국은 스위스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으니
쿠르베 개인에게 그 사회의 변화는 큰 인생의 전환을
가져온 셈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쿠르베의 그림은 미술책의 도판에 나온 것을
제외하곤 일부러 찾아보는 경우가 별로 없었네요.
오르세 미술관에 갔을 때 그의 대작을 보면서도
별 감흥이 생기지 않아서 그가 미술사에서 중요한 화가인지는
몰라도 제 개인적으로는 인연이 별로 없는 화가로군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런데 지금 찾아서 보는 화가의 그림은 인상이 달라서
바짝 다가서서 바라보게 됩니다.


아,이 그림 하고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학교 미술책에서 이 그림을
처음 만난 것 같은 기억이 납니다.
오래전이라 기억을 다 믿을 수 없어서 만난 것 같은이란
불투명한 말을 쓸 수 밖엔 없지만요
작품의 제목이 크루베씨 안녕하세요? 라고 번역이 되었었지요
아마?


같은 지역을 그린 모양인데 구도에 따라서 다른 기분이
드는 것이 신기하네요.


친척의 장례식때문에 고향에 갔다가 그 고장 사람들의
모습을 대형 캔버스에 담아놓은 이 그림이
당시의 미술계에 일으켰을 파문을 상상하게 되네요.
역사화나 신화 이렇게 거창한 주제만이 대형 캔버스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누구나 믿었던 시기에
한 지역의 주민들을 떡 하니 주인공으로 삼아서 그림에
등장시킨 쿠르베,이 그림으로 그는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게 되고 realism의 역사가 씌여진다고 하네요.
오늘 일차 예습은 이정도로 마치고
밤에 집에 들어오면 다시 찬찬히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