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12회에 걸쳐 성곡미술관에서
현대미술의 이해라는 제목의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첫 주의 주제는 현대미술의 징후:천사의 날개를 그릴 수 없었던
크루베와 사실주의 미술이었는데요
미리 예습을 한 내용과 맞추어가면서 들은 첫 강의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미술사의 한 시기로만 알고 그다지 친숙하게 그림을 일부러
찾아가면서 보던 화가들은 아니었지요.
도미에,쿠루베,밀레,
오늘 강의에서 마네를 사실주의 화가에서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집에 와서 다시 찾아 읽은
오페라 거리의 화가들이란 책에서도 보니 마네를
사실주의 범주에 넣고 쿠루베와는 다른 의미로
사실주의 화가이면서 급진적인 생각을 화폭에 담은 화가
그래서 모던,혹은 모더니즘이라고 하면 마네에서부터
출발한다는 말을 적어놓았더군요.
모더니즘이란 정의에서 오늘 강의는 시작되었습니다.
모더니즘,포스트 모더니즘,그리고 contemporary (당대
혹은 동시대미술)이 세가지 미술의 경향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전통적인 의미의 art와 지금 현장에서이루어지고
있는 미술이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설명이 제겐
귀한 정보가 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회화와 조각이 아트의 범주에서 중요했다면
이제는 사진과 영상을 포함한 시각적인 모든것을 포함하는
visual culture라는 개념이 더 어울린다는 것
미술이 죽었다라는 말의 의미는 그러므로 회화와 조각
위주의 사고에 던지는 말일 뿐이며 시각문화란 점에서의
art는 오히려 더 다양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1860년대 이미 시대를 앞서서 생각하고 그렸던 사실주의 화가들인
쿠루베와 마네에서 1950년대까지의그림을 주로
모더니즘이라고 한다면
그 이후 6.70년대를 풍미했던 미술현상은
모더니즘을 계승하거나 반대하기도 하고 혹은
그 세계를 떠난 작품활동을 하기도 하는 postmodernism이라고
분류되고 있으며,8.90년대의 작품은 그 이전의 작품경향과는
또 다르지만 아직 미술사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그래서 당대미술이라고 불리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군요.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 시기의 작품들도
카테고리가 정해지면서 미술사의 한 시기로 규정되겠지요?

쿠르베의 자화상인데요 상처입은 남자로 분한 자화상이네요.
그의 이력을 읽어보니 그의 아버지가 부농이라고 씌여있더군요.
부농이란 표현은 주목할 만한 것인데요
벌써 농촌에서도 자본가적인 역량을 지닌 부농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서
이 면이 나중에 그의 그림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나에
대한 설명이 많이 있더군요.
아버지는 아들이 법학을 하길 바랐다고 하는데
파리로 간 아들은 역시 법에서 멀어져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시대순으로 그림을 정리한 싸이트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는 중인데요 이번에는 첼리스트로 분한 자화상입니다.

이 세 그림중에서 마지막 그림이 1848-49년대에 그려진
그림인데 수업중에 강사가 이 그림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면서
사실주의자로서의 자의식이 엿보이는 그림같지 않은가
하고 코멘트를 하더군요.

이 그림이 당대에 악명을 떨치던 오르낭의 매장이란
작품인데요
언젠가 오르세에서 이 그림을 보면서도 왜 이렇게
화제가 된 작품인가 ,감을 잡지 못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파리의 미술계는 아카데미가 대표하는 관학파가
주름을 잡고 있었고 그들이 심사위원인 살롱전에 참가해서
상을 받지 못한 화가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시기였지요.
그런데 관학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그림은 우선 역사화
인물화,풍경화,이런 식으로 등급이 매겨져 있었고
그림에서도 무엇을 우선으로 할 것인가가 미리 규정되어 있었는데
쿠르베가 역사화에나 알맞을 커다란 캔버스에 자신의
친척 장례식을 표현한 것자체가 충격이었다고 하더군요.
마치 프리즈처럼 늘어선 사람들이 실제로
쿠르베의 식구들,그가 살던 고향의 사람들을 모델로 그렸고
앞에 파여 있는 무덤이 그림을 바라보던 부르조아지에겐
마치 그들의 삶을 매장하려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라는 말을 들으면서 아하,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다시 바라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물레를 잣다가 지쳐서 잠이 든 여자
이런 노동하는 사람들이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것
노동을 미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재현하게 된 것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소재였다고 하더군요.
그림을 보러오고 그림을 사서 집에 걸어놓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현실에서는 갖기 힘든 일종의 아름다운
환타지였다면 아무래도 현실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것은
돈을 들여서 일부러 사게 되지 않겠지요?

화가의 스튜디오란 제목의 이 그림에 a real allegory란 말이
붙어있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집에 와서 다시 찾아본 책에서 이 부분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놓았더군요.
오르낭의 매장과 더불어 쿠루베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작인데요
이 그림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더군요.
가운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우리가 보는 쪽에서 오른쪽으로는 그를 지지하고
그와 생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답니다.
당시에 문학계에서 새로 대두하는 사실주의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를 보내던 보들레르,그리고 사상적으로
쿠르베에게 영향을 주었던 푸르동도 그려져 있다고 하네요.
왼쪽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인물군이 등장을 하는데
당시의 황제 나폴레옹,유대인 복장의 인물 (당시의 높은 지위에
있었던 인물이라고 하는데 기억은 나지 않네요)등
신원을 알 수 있는 인물들을 비롯하여 당시의 다양한
신분을 보여주는 왼쪽 구성원들을 통하여
당시 변화하고 있는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다고요.
그리고 그림을 자세히 보면 매달려 있는 인물이 보이지요?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에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네요.
그리고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림의 상단부에 보면
화가의작품들이 흐릿하게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마치 그것을 보고 있으려니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서
모티브를 따왔나 하는 생각을 혼자서 하게 되는군요.
당대를 휘어잡고 화가들의 생각을 규제하는 기성의 화단에
대하여 아니다라고 대들 수 있었던 힘,그런 힘으로
아카데미가 원하지 않는 그림을 그려서 입상이 되지 않으면
스스로 천막을 치고 작품을 전시하는 뱃장으로
그는 후배화가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하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강사는 사실주의는 기성체제에 대한 아방가륻드라고
규정할 수 있다는 말을 하더군요.
아방 가르드하면 무조건 다다이즘을 떠올리던 제겐
참 신선한 내용의 강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쿠루베의 그림을 미술관에서 보게 되면
조금은 달라진 눈으로 새롭게 보게 되겠구나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너무 늦은 시간에 정리를 시작하여서 도저히 한 번에
다 하루 수업에 대해서 복습을 하긴 어렵겠네요.
그래도 일단 시작을 하고 나니
강사의 설명에 제가 읽은 내용에 여러가지가 떠올라서
모자이크식의 복습이 되고 말았지만 그것으로 족하다,
혼자 만족하면서 첫 강의의 after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