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업끝나고 집으로 걸어오다가
혹시나 해서 들러본 집현전에 반가운 책이 여러 권
들어왔습니다.
지난 금요일 큰 서점에 가서 메모했던 책들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뒤적거리다가
미술문화에서 번역해서 내놓은 어떻게 이해할까?
고딕,인상주의 ,아르누보 이렇게 세 권을 골라서
계산대에 올려놓고
혹시나 하고 한 번 더 서가를 뒤적여서 보는데
표정이 있는 역사 시리즈중에서
새로 나온 책이 한 권 보이더군요.
조선의 선비와 일본의 사무라이
어라,이것이야말로 요즘 일본드라마보면서 궁금하던 점
그리고 후쿠자와 유키치를 읽다가 궁금하던 것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르누보를 한 권 슬며시 빼고 그 책을 넣어서
사들고 들어왔습니다.
평소라면 집에서는 가능하면 책을 읽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호기심에 피아노 연습이나
그림보기,혹은 글쓰기,아니면 다운받아놓은 드라마보기
다 제쳐두고 책장을 슬며시 넘겨보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궁금해하던 여러가지에 대한 해답이
이 책에 많이 녹아들어가 있어서 참 즐거운 책읽기가 된
하루였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이 책을 집중적으로 읽다보니
오늘 하루가 다 지났고
결국은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네요.
덕분에 오늘 수업하는 아이들하고
조선과 일본의 선비,사무라이,그들이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은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읽다가 문득 책표지로 다시 넘어갔습니다.
처음 살 때 저자가 일본인이라고 읽었는데
번역자 이름을 본 기억이 나지 않아서요.
어라,그러면 이 저자가 한국어로 이 책을 썼단 말인가?
놀라서 뒤적여보니
한국에 귀화한 일본인으로 지금 세종대학교에서
교양학부 강의를 맡고 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내공을 언제
쌓았단 말인가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합니다.
박노자의 글을 읽을 때에도 그가 한국이나 동아시아
역사에 대해서 박식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아주 유려하게 구사하는 한국어에 기가 질리는 경험을 했는데
이 저자도 외국인의 한국어라고 느껴지지 않아서 놀랐고
그 다음 한국사를 관통하는 나름의 시각과
임진왜란때 일본에 끌려간 강항이 그곳에서
성리학을 전한 이야기
그가 성혼의 제자이기때문에 이황을 기본으로 했지만
절충적인 성리학을 전달해주었고
그것이 에도막부의 기본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여져서
우리가 아는 사무라이와는 달리 성리학적인
소양을 기른 사무라이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급무사였던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버지가 한학자였다는
자서전에서의 언급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그리고 공명의 갈림길이란 영화를 볼 때
무사의 어린 자식이 논어를 배운 배경이 바로 이런 것이었네
그렇다면 내가 이해한 사무라이에 대한 것은
얼마나 왜곡된 것이었던가
그리고 신선조를 보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미토번에 대한 것이 이번에 책을 통해서
정리가 제대로 되었습니다.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막연해서 힘들었던 일본사읽기에
한줄기 빛이 비친 기분이라고 할까요?
더구나 성리학의 역사에서 이,기 논쟁에 대한 것을
너무 과도하지 않은 범위내에서 정리를 잘 해놓아서
그것도 좋았고요.
역시 배움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
가렵지만 어찌할 수 없어서 찜찜하던 것을
확 걷어내는 기분을 만끽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