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위한다면 아침에 앉아서 있는 시간을 줄이고
벌떡 일어나 나가서 산책을 하거나 조금 더 빠른 속도로
걷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물론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아침의 제 몸은 마치 식물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자리에 뿌리박혀 있는 식물,그러나 생기가 조금 모자란.
보람이 선생님에게 드리고 싶어서 구한 책과 음반이 있었는데
보람이가 선생님은 음악을 별로 좋아하시는 것 같지 않으니
책만 보내고 음반은 우리집에서 듣자고 하네요.
그래?
그래서 아침에 뜯어서 새로 듣고 있는 요요 마의 음악이
소파에 앉아 있으니 뒤에서도 소리가 울려 아주
기분좋은 아침이 되고 있습니다.
일요일 오전에 미처 다 못 읽었던 김승희 윤석남의 여성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있는 중에
13월의 13일,12월의 12일이란 재미있는 제목의 글이 있었습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13월의 13일과 현실에서 우리를 짓누르는
12월의 12일, 어느 하나만으로도 인생은 살기가 어렵겠지요?
제게 있어서 금요일은 13월의 13일이 되어서
현실의 시간을 위한 거름이 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12월의 12일이 그렇게 무거운 짐으로
내리누르는 시간은 아니고 그 시간자체도
하루 하루가 새로움을 일구는 시간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참 고마운 인생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제 밤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영화를 하나 빌려 보았습니다.
이제는 많이 늙어서 눈가가 자글자글하지만
그래도 역시 메릴 스트립이네 하고 바라보았던 그 영화에서
주인공 여자의 방에 걸린 1954년 작 마크 로스코의 그림과
남자 주인공이 일하는 회사에 있던 (아마 미술품 경매하는 곳이
아닐까 싶던데요) 로스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집에 걸린 포스터를 바라보다가
그림을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리움에서 열린 로스코전에서 그의 그림을 원화로 보고 나서
그런지 이제는 인터넷상에서 보는 그림을 넘어서
그 색으로 들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금동대향로를 직접 보고 나니 도판에서보는 향로의 느낌이
다른 것도 바로 그런 현상의 일환이겠지요?


새벽에 일어나 졸리는 눈으로 아이를 깨우고
그 사이에 몸 운동을 하고는
조금 맑아진 정신으로 감사 편지를 썼습니다.
보람이의 3학년 일년 동안에 힘을 주시고
아이에게 종교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모범으로 도와주신
담임선생님에게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쓰는 편지라
저도 아주 기쁜 마음으로 쓰게 되었지요.
3학년 일년의 인연으로 끝나지 않고 그 아이의 앞으로의
성장도 지켜보시고 힘을 주시길 바라는 글을 쓰다가
마지막으로 이번에 이어서 그 학교에 가는 아들에게도
그런 에너지를 주실 수 있길 부탁드렸지요.
보람이는 졸업하기가 싫다는 말을 가끔 합니다.
그만큼 갈수록 학교가는 일이 좋았다고 하네요.
처음 들어가서 전학가고 싶다고
어떤 때는 검정고시를 하고 싶다고
사실은 나는 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엄마의 뒷받침이 가능한지
몰라서 그냥 외고에 간 것이라고
또 어떤 때는 친구들이 너무 공부만 하고 모두 다
법대,의대만 이야기하니 숨이 막혀서
함께 있는 것이 괴롭다고
참으로 많은 사연을 안고 다니던 일학년의 그 아이가
생각납니다.

또 어떤 때는 여기서는 어학을 아무리해도 극복하기 어려우니
유학을 가고 싶다고도 하였지요.
다섯 개 언어를 하고 싶다고 그래서 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가지 언어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섯 가지 언어를 꿈꾸다니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모르겠다고요.

그런 저런 고비를 다 넘기고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루러
학교에 간 아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크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것들을 차례로 다 겪고
이제는 졸업을 하게되는 아이
더 큰 세상에 나가서 주눅들지 않고
너무 오버하지도 말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여행을 떠날 수 있길
기도하는 심정이 되네요.
어제 밤 보람이가 물어봅니다.
엄마,디카 나에게 주고 엄마가 새로 사는 것은 어때?
왜?
내가 사려고 하니 너무 비싼 것 같고
그냥 선물로 그 것 받고 엄마가 사면 좋을 것 같다고 하네요.
원래는 제가 디카 바꾸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엄마 것 네가 대학가서 받고
엄마가 조금 성능이 좋은 것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었거든요.
자신은 슬림한 것으로 사고 싶다고요.

사실은 졸업기념으로 일본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니
제가 주는 선물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인데
이렇게 말하니 마음이 흔들려서
아침에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금방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니
마음에 담아두고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네요.
화실에 가는 날,
무엇을 그려보게 될 지 설레는 마음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