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의 일입니다.
불어 수업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자리에 누우면 아무래도 운동하러 가기 어려울 것 같아서 바로 집을 나섰습니다.
문제는 걸어가는 길에 mp3에 담은 강유원의 일리아스 강의를 들었던 것인데요
내용이 재미있어서 계속 걸어가면서 듣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는 것, (시간 날 때마다 길거리에서 틈틈이 듣고 있는 중인데
문제는 걸어다니는 거리가 짧다보니 호흡이 길지 못하다는 것인데요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 MP3라서 집에서 일부러 귀에 꽂고
듣게 되지는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 그래서 걷다가 지치면 운동하러 가야지 하고 나선 길인데 아무래도 멈추게 되지
않았지요.
이렇게 재미있는 강의를 듣게 되니 이것도 운동만큼이나 필요한 일이지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길을 걷다가
보람이 방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필요하다고 느낀 카세트 구입을 위해서 하이마트에 들르기도 하고, 제대로 강의를 들으려면
아무래도 일리아스의 완역본이 필요할 것 같아서 서점에도 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날이 되겠군 싶었지만 이미 마음은 일리아스의 세계로 진입을 한 상태가 되었지요.
이 녹음 파일은 동대문구 정보화 도서관에서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한 번에 2시간씩 40주에 걸쳐서 12권의 고전을 강의한 내용이라고
하더군요. 우연히 함께 공부하는 동휘가 이 파일을 들으면서 고전을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파일을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지요.
그런데 제 MP3안에 외국어 파일이 너무 많아서 12권을 다 넣는 것은 용량이 모자라다고 우선 일리아스와 안티고네 두 가지 파일을
넣어서 전해주더라고요. 한가지 더 고마운 것은 동휘의 어머니인 조 혜숙씨가 파일을 돌려주면서 제게 사랑의 선물이라고
책과 세계, 그리고 인문고전강의 두 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책과 세계는 얇은 문고본이라 바로 읽고는 마침 한의원에서 그 책을 끝까지 몬 날이라서 제게 침을 놓아주시는 한의사님께
선물했지요. 선물의 릴레이가 되는 책이 되었습니다. 다 읽고는 서가에 그냥 두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읽을 기회를 주라고 부탁을 했지요.
인문고전읽기의 12권을 강의 파일과 더불어 함께 공부하면 도움이 크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강의를 들으면서 요약판이 아니라 제대로 된 완역본을 읽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게 하고 실제로 서점에 가게 만드는 강사의
힘에 대해서 생각한 날이었습니다 .
12권을 끝까지 읽어내려면 누군가와 더불어서 강독을 시작해야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울리는 전화를 받았는데요 반가운 목소리는 목요일 수업을 함께 하던 진숙씨였습니다.
개학이 되어서도 한참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던 중인데 마침 먼저 연락을 해왔습니다.
알고 보니 너무나 반갑고 고마운 전화였는데요, 마침 2주간 정도 외국 여행을 하게 되었노라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네요.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에 가게 되었다는 그녀에게 그렇다면 독일어로 된 아이들을 위한 음악가 책이나 화가 책을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것 말고도 더 이야기해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스페인어나 불어로 된 책도 좋으니 그런 계통으로 구해주면 좋겠다고 ,그리고 피나 바우쉬의 동영상이 있다면
그것도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아, 이런 전화는 얼마나 마음이 담긴 전화인가 놀랍더군요. 사실 여행 다녀오고 나서 여행지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인데 미리 전화해서 선물로 무엇을 원하는가 묻고 그것 말고 더 부탁해도 된다고 하다니
마음에 깊은 감동을 느낀 날이었습니다.나는 어떤가 스스로에게 물어본 날이기도 했고요.
일리아스 강의에 마음을 뺏기고 길거리에서 강의를 듣게 된 사연도, 오늘 걸려온 전화의 주인공도 그러고 보니
82cook를 통한 인연이네요. 사람이 마음을 열고 타인과 만나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이 바로 현실에서
맛보게 되는 기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날들입니다.
인문고전 강의를 가이드 삼아 12권의 책을 읽다보면 반드시!! 라고 할 정도로 분명히 샛길로 빠지게 되고 책의 목록은 더 길어지겠지요?
그런 샛길에서 누구와 만나고 어떤 책과 만나게 될지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지만 틀림없이 더 좋은 방향으로
새로운 상황과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밤이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