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일본의 회사 동료가 놀러와서 합류하기로 했다는 보람이, 오늘 아침 일찍 서울역에 간다고 떠났습니다.
떠나는 것을 보고 잠깐 잠이 들었는데 전화소리에 잠을 깼지요. 거기까지는 일상이라 별 다른 일이 아니었는데
전화 목소리가 모르는 남자더라고요. 전화 잘 못 걸었다고 하려는 순간
지윤이가 지금 크게 다쳐서 데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윤이는 보람이의 호적상의 이름이지요. ) 그 때는 놀라서 그렇다면
그 아이의 다른 이름은 뭐냐고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럴리가 없다고 지금 기차를 타고 있을 시간이라고 하니
그렇다면 직접 확인하라고 하면서 전화를 바꾸었는데 그 속에서 보람이가 울면서 하소연을 합니다.
엄마, 어떤 아저씨들이 나만 끌고 왔어. 실랑이 하다가 다쳐서 너무 아파, 엄마 빨리 데리러 와
흐느끼면서 우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바로 딸의 목소리네요. 그 순간의 놀라움, 당황함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보람아 잠깐 기다려 ,잠깐만 전화기 들고 있어 부탁을 한 다음
휴대폰을 찾아서 동생에게 연락을 했지요. 내가 이 전화 받는 동안 보람이에게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보라고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전화기를 잡으니 이미 전화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그 순간의 공포라니, 보이스 피싱에 대해서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것은 늘 강건너의 일이었지요. 그러니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아는 것일까 오늘 많은 생각을 하느라 진정이 되지 않네요.
전화가 끊긴 그 순간, 고민하다가 혹시나 해서 보람이 번호로 연락을 하니 통화중입니다. 동생과 통화가 된 것일까? 아니면?
머릿속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 긴장해서 몸은 오그라드는 느낌이었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나 판단이 되지 않아서
숨이 막히는 기분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애를 끓고 있을 때 갑자기 제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보람이 목소리인데
엄마, 나야, 나 다치지 않았어. 지금 기차안이라고 멀쩡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참았던 울음이 나와서
울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지요. 그런 일 당했다면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적당한 정보를 섞어서 통화했을거라고
엄마 딸이 그렇게 멍청한 것 같냐고 농담하는 아이 말을 들으면서 과연 실제 그런 일을 당하면 그렇게 이성적으로 대처가 가능할까
과연?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더군요.
상황이 종료되었어도 그 남자의 목소리, 보람이라고 울면서 호소하던 그 목소리가 귀에 맴돌아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쉽지
않네요. 트라우마라고 읽었던 그 단어가 실제 어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에겐 얼마나 생생하게 마음속에서 되풀이 될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되고요.
목소리, 그 목소리는 분명히 보람이의 목소리였는데 어떻게 그런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 아니면 당황해서 보람이 목소리라고
착각을 했는가, 머릿속에서 계속 울리는 목소리때문에 정신이 없던 순간이 지나고 나니 개인정보가 이렇게 버젓이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무서움에 놀라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다 큰 아이의 문제로 전화가 와도 이 정도로 놀라서 허둥대는데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에게 이런 전화가 온다면 그 때는
얼마나 놀랄까, 그래서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생각은 거기까지 번지고 있네요.
하루가 통째로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날이라서 여러가지 구상을 했지만 (어제 밤 잡들기 전) 오늘 하루는 아무래도 생각대로 되기는
어려울 듯 하네요. 그래도 일단은 처음보다는 많이 진정이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저처럼 아이 이름을 대면서 다쳤다고 하는 전화를 받으시는 분이 있다면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현명하게 대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