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람이의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어제밤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싱숭생숭하면서 그동안 그 아이가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어려서부터 남달라서 (특출하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 제겐 참 어려운 딸이었습니다.
손을 쓰는 일을 좋아하지만 창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미술 전공은 마다하고, 어느 시기엔 미용사를 어느 시기엔 구두 디자이너를
이런 식으로 꿈이 여러차례 바뀌기도 하고, 학교 공부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고 그저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 하던 시절도 있었고
깻잎 머리에 엄마 모르게 귀도 뚫고 다니기도 하고, 뭔가 불만에 가득한 눈초리로 도서관을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선생님, 저 무섭게 생긴 언니 누군가요? 이런 질문을 받기도 했던 시절들, 이제는 한갖 에피소드로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참 아픈 기억들이 많았습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3월 말이 되면 이제 한국을 떠나게 되는 딸, 한 집에서 살던 시절과는 다른 모녀관계가 되겠지요?
서로 갈등을 넘어서 조금은 깊은 이야기가 가능한 사이가 되었는데 멀리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고,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격려하면서 아이의 성장을 돕는 엄마였더라면 하는 후회도 생기지만 이미 지나간 세월은 다시 잡을 수 없으니
털어버려야 한다는 ㄴ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출생, 입학, 졸업, 취직, 결혼, 출산, 이런 식으로 모두가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태어나서 주기적으로 겪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꽃처럼 빛나기도 하고 혹은 오히려 고통이 되기도 하고, 전화위복이 되기도 하고, 하나로 묶어서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인생이 존재하겠지요?
모든 일이 잘 되길 바란다는 인사를 받을 때는 그런 인사가 고맙긴 하지만 참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살면서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은 너무나 희박한 확률이니까요.
대신 먼 길을 떠나는 아이에게 자신 앞에 닥치는 문제들에 대해서 일희일비하지 말고 조금은 거리를 두고, 잘 지낼 수 있길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므로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어울려서 살 수 있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몫인 인생에도
애정을 품고 살아갈 수 있길, 이런 저런 말들을 하고 싶기도 하고, 마음속으로 빌어주고 싶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아도 그것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어리석음은 피해야겠지요?
지난 주, 이번 주, 대학문을 나서는 수없이 많은 젊음이 있겠지요?
그들이 나서게 되는 학교문, 그 안에서도 늘 편한 법은 아니었겠지만 앞으로는 학생이란 신분을 벗어나서 살아가게 될 세상은
학교에 비하면 바람부는 들판이 될 확률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해 줄 수 있는 어른들의 역할이란 역시 곁에서 지켜보는 것, 힘들다고
투정할 때 받아주는 것, 그리고 사는 일이 힘들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성장하는
삶에 동행하는 것, 그런 역할이 가능하길 조용히 기도하는 밤입니다.
모마의 디자인실에서 본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골랐습니다.사진을 고르다보니 언젠가 다시 한 번 보람이랑 뉴욕에 갈 날이 있을까
다시 꿈꾸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