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박물관이 문을 여는 날이 아니라서 25일 하루는 천천히 동네도 둘러보고, 보람이 친구가 오면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이미 뉴욕에서 몇 달 살아서 지리를 잘 아는 그 아이와 더불어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온다는 시간이 10시 30분, 그러니 그 전 시간에 센트럴 파크에 가보자고 나선 길이었는데요 길거리에서 uno라는 단어를
본 순간 사진기를 들이댔습니다. 엄마 그것은 왜 찍는거야? 건물이 좋아서가 아니고 스페인어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대답하고 나니 못말리는 사람이구나 역시 나는 하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 포스터의 경우에도 포스터 전체보다는 그 위에 씌여진 글씨와 내용이 궁금해서 찍어본 것인데요 그때만 해도 아폴로 극장이
뭐지? 하고 그냥 넘겼습니다. 알고 보니 역사적으로 유명한 극장이라는 것을 나중에 두 아이를 통해서 듣고 실제로 그 곳앞에까지
가보기도 했지요. 그러고 나니 포스터를 사진으로 다시 보자 아하 하고 눈에 잡히는 글씨였습니다. 그러니 글씨란 그저 모든 글씨가
눈에 같은 무게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란 것을 이 때도 다시 한 번 체험하게 되었답니다.
제가 묵었던 동네를 지나다가 보니 말콤 엑스와 마틴 루터 킹의 이름이 붙은 건물, 도로명, 그리고 동네의 초등학교는 흑인 역사에서
중요한 여성인 수저너 트루쓰의 이름이 붙어있었습니다 .그들이 지나간 인물이 아니라 살아서 흑인들의 삶속에 들어와 숨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지나다니면서 자꾸 보다 보니 나중에 책을 고를때에도 당연히 그들의 이야기를 골라서 구해 오게 되기도 했지요.
24일에는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그저 지나치기만 했다면 25일 처음으로 안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걸었습니다.
나중에 버스타고 지나다니다 보니 우리가 처음 걸었던 것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더라고요. 뮤지움 마일을 지나가는 내내 길게 이어지는
공원을 보고 놀라서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는데 실제로 그 안에 자주 들어갈 기회는 별로 없어서 아쉽네요.
작년에 다녀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뉴욕이 얼마나 추운가 귀가 아프도록 들어서 사실은 공원에서 산책을 즐거거나 책을 들고 가서
벤치에 앉아서 읽는다거나 하는 호사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날씨가 너무 좋았고 공원의 푸른색도 여기 저기 많이
눈에 띄었지요. 그리고 이렇게 예쁜 색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어서 얼마나 반갑던지요!!
도심에서 산다는 것은 삶의 리듬이 자신의 페이스보다는 사회의 바삐 돌아가는 페이스를 따라가기 쉬운 법이라 지칠 확률이 아주
높을텐데 뉴욕커에게는 센트럴 파크가 일종의 중화작용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날이었습니다.
물론 그 날이 크리스마스여서 휴일이었기 때문이었겠지만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사람들과 달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더라고요.
2011년에는 새로 시작한 운동과 악기 연습으로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사실 카메라를 들고 나갈 여유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이런 장면을 보니 저절로 접사기능을 찾아서
여러차례 찍어보게 되었습니다. 기술은 그 자체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로구나, 새로 시작하는 것이 조금 서툴더라도 이미 한 번
손에 익힌 감각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했고요.
이 공원에서 여름이면 무료로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진다고 그 진풍경에 대해서 많은 뉴욕 여행자들이 이런 저런 책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제겐 여름 여행이란 먼 나라 이야기라서 그저 꿈같은 이야기로 치부하고 말았지만 막상
이런 공간에 와보니 꼭 겨울 여행이어야만 하는가,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여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려해보면 좋지 않을까
처음으로 그런 궁리를 하게 되네요.절대 아니라고 절대 불가라고 미리 정해놓으면 그 자리에 다른 생각이 들어갈 기회조차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오늘이 쉬는 날이 아니라면 이렇게 여유 있게 공원에서 두 시간 정도 있을 마음의 여유가 있었겠나 싶으니
여행중에 뮤지움에 가지 못하는 날이 있는 것이 오히려 거꾸로 생각하면 축복이 되기도 하는구나 천천히 걸으면서 한 가지 사건의
이중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날이기도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