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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마음의 감기 주의보

| 조회수 : 1,933 | 추천수 : 168
작성일 : 2009-10-24 07:23:04
어제 대학에 다니는 지인의 큰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처음 전해들은 순간에는 몸이 얼어붙는 듯하더니 온종일 일이 손에 안잡히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여 뒤척였다. 남편도 심란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곁에서 같이 뒤척이느라 둘이 다 잠을 설치고 말았다.

내년이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밝은 미래를 개척해야 할 꿈많은 여대생이 무슨 이유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외지에 나가있는 아이의 생일상을 차려주려고 전화했다가 소식을 들은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져 내릴까. 아이의 인터넷 블로그에 가보니 슬픔에 겨운 친구들의 메세지들 속에 생전의 아이가 한껏 웃고 있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부모는 오죽할까. 아이의 부모에게는 감히 연락도 하지를 못했다. 아픈 마음에 행여나 위로랍시고 하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도 더 상처를 받을까 무서웠다.

우리 동네의 스탠포드 대학교 주변의 명문 고등학교인 Gunn High School 에서 학업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학생들이 철로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써 올해만도 4건이나 된다. 한국의 경우에도 학업 성적을 비관하고, 친구들의 놀림에 상처를 받고, 부모의 질책을 견디지 못하여 어린 나이에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무엇이 아이들을 이토록 뒤흔드는가. 사람은 희망이 있으면 산다는데, 무엇이 아이들의 희망을 빼앗아갔기에 이들이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삶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는 걸까. 끝없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내 마음을 두드리는 하루였다.

자살을 선택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이미 주변 사람들이 눈치를 챌만큼의 우울증 증세가 있게 마련이다. 자살하고 싶다는 말도 여러 번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농담으로라도 말을 한다고 한다. 죽고 싶은 만큼 살고 싶은 절박함이 있는 것은 우울증 환자들의 공통점이다. 나는 죽고 싶다 라고 말하는 것은 나도 나의 삶을 어쩔 수 없지만 살고 싶으니 누가 날 좀 도와달라는 간절한 호소라고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정신건강관리법에 5150조항이라고 해서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를 찾아온 내담자가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하면 내담자의 동의와 관계없이 바로 관계기관에 연락하여 72시간동안 격리하고 정신 감정을 받고 심리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자살 충동이 가라앉았다는 판단이 설 때에 돌려보내게 되어있다. 처음 상담을 시작할 때 미리 알려주는 공지 사항의 하나이기도 하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과잉진료인 것같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구해지는 생명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자살 충동은 대부분 쉽게 지나가는 충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1) 언제부터 그 생각이 들었는가
2) 어떤 방법으로 시행할지 방법을 마련해두었는가
3) 언제 시행할지 계획하였는가

이 질문에 막힘 없이 대답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조건 신고가 되어야 한다. 그만큼 시간을 촉박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질문에 과연 누가 제대로 답을 할 것인가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의 많은 경우에서 이 질문을 던지면 우울증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주저없이 대답을 한다. 답을 하면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대답을 하는 이들도 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맴돌고 있기에 죽을 마음을 먹었지만, 누군가 이 구덩이에서 건져내어주면 좋겠다는 구조 요청인 것이다.

한국 문화에서 죽고 싶다 라는 말은 그다지 충격적인 발언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죽고 싶다는 때로는 농담으로, 때로는 진심으로, 때로는 과장된 표현으로 우리의 생활의 일부가 된 언어표현이다. 그 때문에 누가 죽고 싶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다거나 당장 병원으로 데려갈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좀 쉬면 나아질 거다, 사는 게 다 그렇다, 나도 죽고 싶다..등등의 위로 아닌 위로로 구조해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처음 죽고 싶다라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이미 그 사람의 정신에는 빨간 불이 들어 온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나는 죽고 싶은데 살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 내가 죽지 않게 좀 도와달라는 말로 잘 해석해서 들어줘야 한다.

어제 소식을 들은 그 아이도 오래도록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주변 친구들도 이미 알고 있었고 부모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남이니까 쉽게 하는 말이겠지만 그 아픈 아이를 왜 외지에 두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내 마음이 먹먹해진다. 강제로라도 집으로 데려와서 치료를 받았으면 나아지지 않았을까. 물론 아이가 오려고 하지 않았을테지만 말이다. 그 아이의 인터넷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몇 몇 친구들은 아이의 심경을 알고 있었는지 네가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고 안타까워하는 사연들이 있었다. 조금만 더 주변에서 조심하며 살펴보았더라면 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사건이 이미 손 쓸 수 없이 벌어졌기 때문에 드는 생각일까. 인간은 한 사람이라도 자기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지난 겨울 수련회에서 그 언니를 만나 잘 따르던 큰 아이와 그 아이의 동생과 친구인 둘째가 소식을 듣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더 아파온다.

"엄마, 그 언니가 우울증이었대요. 믿어지지가 않아요. 얼마나 이쁘고 착한 언니였는데..."
"우울증은 마음을 잘 못 다스리는 못난 사람들이 걸리는 게 아니라 마음의 병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 병이 오면 자기 마음을 못 다스리는 게 당연한 거야. 누구라도 예외가 없이 무너지게 되는 거지. 그럴 때 옆에 있는 사람들이 한시라도 그냥 두지 말고 빨리 도움을 받도록 도와주는 게 큰 도움인 거야. 제 주변에도 누군가가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 친구가 있으면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엄마에게나 그 아이의 부모님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거야. 그 순간을 놓치면 정말로 큰 일이 날지도 모르거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듣는 아이들의 눈시울에 눈물 방울이 가득하다.

**아, 좋은 곳에 있을 것으로 믿을께. 얼마나 힘이 들었기에 그랬니. 누구에게 속을 다 털어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혼자서 많이 고민했나 보다. 엄마 아빠, 그리고 **는 너를 보내고 너무 많이 힘들어하는구나...정말로 막을 수가 없었을까.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동경미
    '09.10.24 2:26 PM

    greysnow님,
    어머니께서 완치가 되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가족들의 마음 고생이 상상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래도 가족들께서 따뜻한 사랑으로 지켜보아드려서 좋아지신 거지요.
    저도 우울증 걸린 사람들에게 마음을 강하게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종종 보면서 마음이 참 그랬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는 병은 병으로 생각하면서도 마음의 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러려니 하는 마음들이 많지요.
    저도 아주 가까운 주변에서 이번에 이런 일이 생기니까 마음이 너무나 울적해서 오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했어요. 내일은 장례식이라는데 마음이 아파서 어떻게 가야할지 모르겠네요. ㅠㅠ
    다 큰 딸을 어이없이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오죽할까요...

    제 글을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님도 좋은 주말 보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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