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3월 23일은 제주로 입도한지 만 두돐이 되는 날입니다.
2월 중순경에 큰아들이 손녀딸을 낳았는 데
저희 나무토방(통나무황토집) 수리도 끝이 보이지 않고
저의 건강도 좋치를 않아 손녀딸 삼칠일 지나면 육지나들이 해야겠다... 하면서
3월 초순경 육지 다녀오는 길에 올해 여든 다섯이 되시는 시노모님을
모시고 제주로 내려 왔습니다.
내가 시집올 때 시어머님은 정말 너무도 고우셨는 데
이제 백발의 노모님이 되셨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정갈하시면서도 건강하시던 지
제 건강이 더 걱정스럽네요~~ㅎㅎㅎ
오래전부터 피부알레르기가 있어
염색을 하지 않으시지만, 백발의 모습을 보는 사람마다
멋지다고 합니다. 제가 봐도 멋지시구요~
2년 전, 노시모님을 떠나 바다건너
제주로 올때 장남내외가 얼마나 미우셨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그 불효에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한번 제주에 가시자고 해도 머리를 저으시기만 하시더니,
이번엔 어머님, 이번에 제가 서울 올라가면 제주도 오실래요? 하니
그러마...하시며 선듯 대답을 하십니다.
날씨가 많이 풀리긴 했지만
농갓집 실내는 바깥보다도 더 추워 걱정스러웠지만,
겨우내 기름 아끼느라 잘 틀지도 않았던
기름보일러 빵빵하게 틀어 드려야지 하며 모시고 내려 왔어요~
근데 생각보다도 더 추워하셔서 제주에 머무르신 일주일 내내
감기라도 드실까봐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 지
오히려 제가 병이 났답니다...ㅠㅠ
제주에 오셔서 계신 동안,
남편이 하루 휴가를 내어 차를 타고 선덕사, 법성사, 약천사를
다니며 해안도로 드라이브로 관광을 대신 했어요~
건강하시긴 해도 연세가 있으셔서 걷는 것도 많이 힘들어 하시더라구요!
언제 이렇게 늙으셨는 지 마음이 짜안 했습니다.
큰아들 낳았을 때,
서른 여섯에 혼자 되시어 육남매 키우시느라
내 새끼들은 이쁜 줄도 몰랐다 하시면서 울 큰아들넘을
매일 업고 마실다니시고,
작은넘 낳아 어머님께 맡기고 가게를 했으니,
내 두아들은 할머니가 키우셨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주에 내려 오셔서도 한시를 쉬지 않으시고
나무토방 마당 두루두루 잡초 뽑아 내시고
동네 어르신이 주신 무우 씻어 저리 무말랭이 만드시고....
또 쑥을 캐셔서 다듬어 주시어 쑥국도 끓여 먹었답니다.
아직까지는 건강에 큰 이상은 없으신데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오래 건강히 사셨으면 좋겠네요~
어머님께서 육지로 올라가신 던 날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어머님 집까지 모셔다 드렸어야 마음이 편했을텐데
공항 직원에게 비행기타는 곳까지 잘 모셔다 주시길
간절히 당부드려 잘 도착하셨다는 전화받을 동안의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답니다.
정말 나의 시어머님께서 지금처럼만 건강하시어서
또 제주엘 다녀 가시길 희망해 봅니다
그동안 심혈을 기우려 때빼고 광낸(?)
통나무황토집 이름을 이름그대로 "제주나무토방"라고 지었어요~
남원 하례리 동일주도로변에 서 있는
통나무황토집이 너무도 설렁해 보여서
제주의 돌담을 두르고 나니, 또 대문이 걸립니다.
나무 대문을 해서 달을까? 하고 목수를 불렀는 데
목수분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생각을 180도로 바꾸어 제주도의 전통 대문인
정낭을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제주전통 정낭을 세우기로 하고 나서
정낭을 취급하는 곳을 물색해 보니~
옛날 전통 방식으로 제주옛돌에 수공으로 만드는 것이 있고
기계로 깍아 만드는 것이 있더라구요~
물론 가격이 수공으로 하는 것이 두배나 비쌉니다.
많은 고민끝에 이왕 하는 것, 옛날 방식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 전에 골동품가게에 혹시 저렴히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찾아가 보았더니, 에궁....그 정낭도 옛골동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값이더군요~
그 이유는 옛날 돌처럼 좋은 것을 찾기도 힘들고
제주에서 아주 잘 사는 집은 정낭의 세개의 나무구멍이 아니고
4개의 구멍이랍니다. 그러니 이건 더 비싸더라구요~
맘같아서는 골동품 투자 한번 해봐?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 고가의 정낭을 밖에 세워놓고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어요~
갖고 있는 돈은 충분히 있는 데 말이죠~~~ㅎㅎㅎ
남편 축구회의 회원으로부터 수공업으로 정낭을
만드시는 분을 소개받아 정낭을 맞추었습니다.
맞춘 지 열흘이 되어서야 정낭으로 세울만한 돌을 찾았다고
연락이 왔고 일주일을 더 지나서야 드뎌 정낭이 완성되어
설치를 하러 오신답니다.
저도 얻어들은 이야기로만 정낭으로 알고 있는 데
원래 이름은 정주석이랍니다.
제일 먼저 정주석이 놓일 자리에 저런 받침대를 놓더군요~
두개의 정주석 받침대가 신중하게 놓여지고~
장정 4분이서 정주석 하나를 힘들여 옮깁니다.
굉장히 무거우니 누가 우리 나무토방의 대문은 못 떼어 갈 듯 해요~ㅋㅋ
힘들여 정주석 하나가 자리를 잡고
정주석 옮기시던 한 아저씨가 뿌듯하게 어루만져 보시네요~!
또 하나의 정주석이 힘들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두개의 놓여진 정주석의 중심을 잡아 주는 작업도 너무나
힘드는 작업이었습니다.ㅠㅠ
균형을 맞춘 정주석을 이제 세멘트를 개어 붙힙니다.
새로운 나의 인연이 되어 우뚝 서 있는 정주석이 늠름해 보이기 까정^^
이제 이 정주석은 우리 부부와 함께 나이들어 가며 세월의 흔적을 만들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주석 세개의 구멍에 끼울 통나무만 구하면 됩니다.
이 세개의 통나무를 정주목이라 한다네요~
그런데 정주석이 원래의 이름이라고 해도 정낭이라는 말이 더 정겹게 느껴 지네요!
이렇게 힘들게 우리 제주나무토방앞에 정낭이 서고 보니
시어머님께서도 기분이 좋으신 지 자식들이 보내드리는 용돈으로 모으신
쌈짓돈을 덥썩 내주십니다.
" 이 돌문은 내가 해주마"~~~하시면서요!
생각지도 않은 어머님의 선물(?)이 눈물겹게 고마웠습니다.
어머님...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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