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니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셨어요.
복잡한 격정 가정사의 생존자인 나에게 아빠는 감사하면서도 밀어내고 싶은 대상입니다.
아빠는 힘든 가정 생활에서 유일하게 마음 둘 대상으로 나를 대하며 늘 눈으로 날 쫓는 분이었고
나의 모든걸 공유받고 싶어하셨죠.
저는 그것을 때로는 얍삽하게 이용했고
그 나머지는 그런 아빠의 관심을 성가신 걸로, 또는 목죄임으로 대하며 어깨 위 비듬 털듯이 떨궈내기 바쁜 깍쟁이 막내였습니다.
그런 아빠가 아프십니다.
평생 뭘 한번도 해드린 적이 없다는 생각에 병실은 가능한만큼 지키기로 했습니다.
첫 날입니다.
전원 과정의 피로로 힘드실까 하여 죽을 신청했어요.
보통 이렇게 유기의 느낌으로 뚜껑 덮어서 따끈하게 옵니다.
밥은 잘 넘어가라 그러는지 살짝 질게 나오고요. 우리집 반찬보다 훨씬 균형적으로잘나오더라고요.
식사량이 점차 줄고 있어서 누룽밥을 시켰어요.훌훌 떠드리게.
아빠는 이제 물 한모금도 혼자 못마시게 되셨어요.
이 날은 볶음 우동이 있었어요. 거의 못드셔서 제가 다 먹었어요.
전날 드시고 싶다하여 소갈비 포장해 왔는데 몇 점 제대로 드시지도 못한 것,
이 날 다시 데펴 올렸어요.
아빠가 좋아하시는 복숭아를 깍아드렸어요.
입원실 창틈으로 햇살이 잠깐이지만 예뻐서 기분이 좋았어요.
참 신기하죠. 호스피스에도 찰나이지만 희노애락이 다 있답니다.
입원 초반엔 초밥,게장,갈비,곰탕,냉면 다 주문하셔서 사다 날랐는데
이젠 아무 요청이 없으십니다.
해외에서 형님보러 오신 작은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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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사람이 없는 시간이 길어진 아빠의 멍이가 여기저기 분변을 남긴다는 비극적 소식이 들려오네요. 더위 한 풀 꺽인 날 병원 정원에서 도킹했어요.
환우와 가족을 위한 작은 음악회.
자꾸 환자와 사랑해 하트 날리라고 해서 저는 뒤쪽으로 숨었습니다.
기도하고 돌봐주시는 수녀님과 복지사님. 그 뒤로 보이는 소원나무에 달린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들.
아빠는 이제 다시 아기가 되어가십니다.
꽃무늬 잠옷을 입고 애착베개와 동무하고 주위의 도움으로 하루 하루 시간을 이어갑니다.
아빠가 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처음 이 땅에 올때와도 비슷하게.
며칠 전엔 저를 빤히 보시다가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누구지?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
입원하시고 난 다음에야 저는 처음으로 아빠 손을 잡아보고
얼굴과 머리를 쓸어주고 미소띤 얼굴로 아빠를 대해봅니다.
아빠가 나를 통제하려는 의지를 조금만 내비쳐도 손을 뿌리치기 일쑤였던 저에요.
어느 저녁, 꿈결인지... 아빠의 눈커풀 사이에 눈물이 맺혀있어요.
"아빠 왜요?"
"고마워서...미국 사람들한테 고마워."
"왜,,미국사람한테,,뭐가 그리도 고마워요?"
"모든 게 다.. 내가 거기서 큰 수술을 받았던 모양이야."
(여행으로 잠깐 가신게 다이지만...)
"알았어요. 내가 전해줄께. 뭐라고 전할까?"
"뭘 머라그래. 땡큐 베리 마치지."
"알았어요. 땡큐 베리마치라고 전할게.
(이참에 하지 않으면 못하는 말이라 지른다) 아빠 나도 고마워요.
나한테 잘해주신거 알아요. 아빠 덕분에 내가 공부도 하고 잘 지냈어요."
섬망이 점점 심해지는 아빠, 무슨 뜻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질끈 감은 눈커풀 사이로 눈물 방울이 주르륵 흐르기에
훔쳐드렸습니다.
처음엔 그동안 놓친 시간이 아쉽고 죄책감도 들어 불시에 눈물이 솟았지만
지금은 이 시간 자체가 마지막이 주는 선물인가도 싶습니다.
이제 아빠는 식사를 수액으로 대체했어요.
음식물이 조금씩 넘어가 기도를 자극해서 호흡이 곤란해져서요.
이제는 아빠의 쌕쌕 거리는 숨소리에 묻혀 아빠 입가에 귀를 갖다대도
한마디를 알아듣기 어려운 형편이에요.
이런 상황에서도 저는 저를 버리지 못해 못보고 안하는것 투성입니다.
기저귀 가는것도 못보고, 가래썩션도 못보고, 옷갈아입히는 것도 전부 요양보호사님이 해주십니다.
침상에서 양치를 시키고 나서 양칫물을 버릴때도 눈을 질끈 감고 겨우해요.
병원에 드라이아이스 처럼 낮게깔린 조용하지만 차가운 기류, 침구에 배어있는 환자의 노인 냄새,
소변을 뚜루룩 따르고 통을 부시는 등 온갖 처지할 때 나는 소리, 쇠잔해져가는 옆 침상 환자의 상태가 문자 그대로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곤두선 내 감각을 자극합니다.
나는 끝까지 내가 제일 중하구나...
알고 보면 착하다는 허황된 자아를 이번 기회에 다 따라버립니다.
점점 적막해져가는 병실. 점점 더 잠에 많은 시간을 뺏기는 환자들.
꺼져가는 촛불의 촛농이 매일매일 똑똑 떨어지는걸 봐야만 하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지만,
아빠도 처음 가는 길이라 외롭고 두려우실 것 같아요.
내가 이번에 피한다면.... 그 다음의 나를 마주하긴 더 어려울 것이 뻔해, 시간 속에 몸을 맡깁니다.
병실에 걸린 십자가에요.
신은 우리에게 삶을 예습복습할 기회를 많이 주십니다.
애들 키우며 복습이구나 했는데,
이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위태롭게 걸쳐있는 아빠 곁에서 죽음을 미리 배우는 것 같아요.
내가 잘살기만을 바라셨던 아빠,
이젠 아빠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이 화와 원망이 아닌 연민과 감사라는게 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