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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패는 놈은 무자비하게 짓밟아야 한다
은하 조회수 : 1,122
작성일 : 2009-04-12 08:30:00
우리 옆집 아주머니 결혼 10년 만에 앞 이빨을 모두 번쩍번쩍한 보철물로 바꿨다. 웃을 때면 입에서 찬란한 광채가 난다. 남편의 과도한 사랑(?)의 흔적이다.
내가 초등하교 2학년 때 윗집에 사는 30살 먹은 노총각에게 아가씨가 시집을 왔다. 그 아주머니가 바로 결혼 10년 만에 앞 이빨을 모두 광채 나는 보철물로 바꾼 주인공 아주머니다.
좋게 예기하면 <한없이 착한 사람>이고 비판적 시각에서 보자면 <한없이 멍청한 사람>이다.
아주머니에 대한 옆집 아저씨의 주먹질은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부터였다. 당시는 내가 어렸을 때였기 때문에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었고 기억도 없지만 결혼을 나서 언젠가부터 마을 입구에서 시작되는 아저씨의 고성방가와 집에 들어서면서 시작되는 살림 깨부수는 소리, 아주머니에 대한 폭언, 그리고 주먹질......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아저씨가 술을 먹고 행패와 난동을 부린 다음 날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면 눈 주위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볼과 입은 마치 내가 벌에 쏘였을 때 나타나는 모습을 하고 있건만,,,,,,그 정도로 맞았으면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아주머니의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쩌다 가끔 '아야야야...'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아주머니에 가해지는 아저씨의 폭행은 4~5일을 주기로 계속되었다. 그러다보니 얼굴에 멍과 부기가 가시기 전에 또 다시 폭행이 가해지고 얼굴은 늘 멍과 벌 쏘인 모습을 달고 살았다.
그 아저씨는 떡대도 좋고 완력도 세서 아주머니에게 가해지는 아저씨의 폭행을 저지할 수 없었다. 아저씨가 두려워서 동네에서 누구도 아주머니에게 가해지는 아저씨의 저지하거나 나무라지 못했다.
우리 집은 아저씨네 집과 울타리도 없이 아저씨네 집의 벽이 울타리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4~5일을 주기로 행해지는 아저씨의 고성방가와 아주머니에게 가해지는 폭행의 두려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야 했다. 어린 나이지만 그 아저씨를 '패죽이고 싶은' 마음을 항시 달고 살았다. 하지만 아저씨의 떡대와 완력은 어린 나에게는 몸서리쳐지는 공포였다.
우리 아버지는 집에서는 호랑이, 남들 앞에서는 '끽'소리도 못하는, 엄마 말에 의하면 '암사내'였다. 거기에다 요즘 말로 하면 '마마보이'.
예전에는 상이군인들이 마을로 동냥을 다녔다. 손에 쇠갈쿠리를 달고 동냥을 다녔는데 동냥을 주지 않으면 눈을 부라리고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우리 엄마가 시집을 와서 새색시 일 때 상이군인들이 오자 우리 아버지는 장독대로 숨어버리더란다. 그런 아버지이니 옆집 아저씨의 그러한 만행에 대해서 입이나 뻥끗할 수 있었겠는가.
도대체 아저씨는 무슨 이유 때문에 그토록 아주머니에게 폭행을 가했던 것일까? 소문에 의하면 그 아주머니가 애기를 낳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당시에는 그런가? 생각했었는데 크면서 생각해보니 애를 못 낳아서 팬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하도 무지막지하게 패니까 그것이 애를 낳지 못했던 주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6~7년 후에 그 아주머니 3남매를 낳았다. 물론 그 아주머니가 임신하고 애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도 아주머니에 대한 아저씨의 폭행은 계속되었다. 그런 것을 보니 반드시 폭행이 애를 못 낳았던 이유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아주머니가 임신을 하고 애를 낳고 하는 과정에서 아저씨의 폭행이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주머니에 대한 아저씨의 폭행은 계속되었다.
임신한 아주머니를 아저씨가 폭행할 때면 우리 어머니는 '저러다 애 죽지' 하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 뿐만 아니라 '오래 살지 못 하겠다'는 말씀을 자주하셨다. 내가 생각할 때도 엄마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그 아주머니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피하라'고. 항상 술을 먹고 술 깰 때까지 폭행과 난동이 이어지니 술 깰 때까지 피해 있다고 술 깨면 집에 들어가라고 해도 그 아주머니는 한사코 비명소리도 지르지 않으면서 아저씨의 폭행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피했다가는 그것을 빌미로 더욱더 가혹하고 자주 폭력이 가해질 것이 두려워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커 갈수록 아저씨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들고 대신 '패쥑이고' 싶은 마음은 더 강렬해지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중 3이 되니까 '한 번 붙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나한 관계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만으로도 오감땡감이었다. 대학진학이야 애시당초 꿈도 꿀 수 없었고, 진학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다. 공고나 상고로 진학하면 '공부 못하는 애' 취급당하는 것이 '쪽팔려'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대학 진학하지 않을 거면 공부 필요 없잖여? 혀서 건달생활을 시작했다.
아주머니가 애를 낳고부터는 아저씨의 고성방가가 시작되면 아주머니가 피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애들한테까지 폭행이 가해질까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 집으로 피하라고 했지만 아주머니는 뒷동산으로 피했다. 아마도 다른 집으로 패했다가 아저씨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피신했던 집에 아저씨의 해코지가 자행될 것이 염려되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아주머니가 애들 데리고 피하면 아저씨는 동네방네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아주머니에게 온갖 욕을 퍼부으면서 찾으러 다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다른 집에는 행패를 가하지 않는 점 이었다.
따뜻한 계절이면 아주머니가 애들 데리고 동네 뒷동산으로 피신해도 견딜만 하겠지만 한겨울에 애들 데리고 뒷동산으로 피신한다는 것이 얼마나 춥고 힘들겠는가. 그런 아주머니와 애들이 안쓰러워 추운계절에는 마을 사람들이 몰래몰래 집으로 피신시켰다. 그것이 계속되다 보니 그 아저씨 술 먹고 집에 들어와 아줌마가 없으면 갈만한 집들을 찾아가서는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도 가끔 와서 아주머니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린 모양이다. 물론 내가 없을 때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더군다나 건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아저씨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한 동네이고, 시골 마을의 위계질서라는 것이 강하기 때문에 어른을 차마 때릴 수 없어 '주먹이 울었다'
고2 가을 무렵으로 기억된다. 토요일, 집에 일찍 귀가하여 쉬고 있는데 아저씨의 고성방가가 시작되고 아주머니가 집에 없으니 아주머니를 찾아 나선 모양이고 우리 집까지 찾아들었다.
취한 몰골로 우리 집에 들어와서는 "야이 씨발년아 빨리 나와"라고 소리쳤다. '옳거니, 너 오늘 잘 걸렀다. 오늘이 너의 제삿날이다". 나는 드디어 벼르고 별렀던 '응징'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아저씨, 아주마 안 오셨는데요"
"뭐여? 숨긴 것 다 알고 있어. 빨랑 내놔 씹새꺄"
"아저씨 주둥아리가 시쿵창이네, 어디 와서 행패야"
"뭐여?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좆만한 새끼가 어른한테 엥기는 거야?"
그러면서 아저씨는 달려들어 내 멱살을 움켜쥐더니 나의 귓쌈을 갈기는 것이 아닌가?
'옳거니 너 오늘 제대로 걸려들었다'
"이런 개자석이 누구에게 행패야"
나는 나의 멱살을 움켜쥔 아저씨의 손목을 비틀어 뒤로 돌려 꺾고는 주먹으로 옆구리를 내리 찍었다. 그리고는 발로 오금쟁이를 내리 밟아버렸다. 별수 있나, 고꾸라진 놈의 옆구리를 발로 제기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고꾸라져진 상태로 나에게 발길질을 당하면서 "어린놈이 감히 어른 패" 발악발악 악을 썼다.
"어른? 개좆나발 부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 개자석아, 넌 개만도 못한 놈이야. 미친개야.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최고의 약이지" 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짓밟아 버렸다.
건달생활의 철칙은 <밟을 때 확실히 밟아라. 설 밟게 되면 되래 밟힐 수 있다"
나는 쓰러져 버르적거리는 놈을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놈의 머리 뒤로 손을 돌려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한 손으로는 놈의 귀뺨을 찰싹찰싹 갈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 동안 이놈이 행했던 제 마누라에 대한 만행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계속해서 귀뺨을 찰싹찰싹 갈겼다. 한 100대쯤 갈겼을까. 그 놈의 어머니, 그러니까 그 아주머니의 시어머니가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고래고래 외장을 따기 시작했다.
"아이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 죽이네" 하면서 고래고래 왜장을 따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 아가리 닥쳐! 이 개자석이 10년 동안 그토록 무지막지하게, 앞 이빨이 다 부러지도록 두들겨 팰 때 할머니는 뭐 하셨댜? 왜 이 개자석이 아주머니 팰 때는 게거품 안 물었던 겨?"
"이런 망할놈의 새꺄,. 우리 아들이 지 마누라를 패건 말건 니가 뭔 상관여"
"상관? 이 망할놈의 할망구야. 아래 윗집이 상관이 아녀? 개새끼를 두들겨 패도 말려야 하거늘 하물며 옆집 사람인데 어떻게 남일 수 있어. 그리고 왜 우리 집에 와서 행패야"
나도 할망구에게 악을 썼다.
그러자 할망구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서는 막대기를 들고 나와 나에게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이런 미친 할망구가..' 나는 할망구가 휘두르는 막대기를 빼앗아 들고는 그 것으로 그놈을 내리 조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할망구는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밖으로 내달으면서 '동네 사람들! 아이고 저 망할 놈이 우리 아들 죽이네...'외장을 따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쓰러져 널부러진 놈을 일으켜 앉히고는 다짐을 강제했다.
"너 앞으로,니 마누라 한번만 더 두들겨 패면 그 때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너의 뼈다귀를 바수어 놓을 테니 그리 알아. 알았지?"
그러자 놈은 희미하게
"알았어."하는게 아닌가.
"이런 개자석이.....알았어? 내가 니 친구냐? 알았습니다. 복창한다. 실시"
그러자 놈은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로
"알았습니다"
그것으로 게임 끝.
그 후, 재개발로 동네가 헐려 뿔뿔이 흩어질 때까지 아저씨의 아주머니에 대한 폭행은 쫑.
IP : 121.159.xxx.71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통쾌
'09.4.12 8:59 AM (211.109.xxx.18)이야,,,
통쾌하긴 하지만, 이거 누구 이야긴고??
잘 패줬습니다.
장작 패듯이 패줬고만요,2. ㅎㅎ
'09.4.12 9:19 AM (219.251.xxx.54)예전에 친구놈 이야기입니다.
애도 배운것도 별로없고 그저 백수건달입니다.
헌데 지 마누라 잡기를 쥐잡듯하였습니다.
심심하면 두두려 패고 쫒아내고 도체 어찌 저리 사는지 안 쓰러웠습니다.
쥐도 도망갈곳을 두고 쫒으라 했던가요.
어느날부터인가 이 여자 친구가 두두려 패면
집안 살림 다 부셔버리고 야구방망이 그냥 휘두르고
약 먹고 죽어버린다고 약 먹어버리고...
그러기를 몇번 반복하니 이친구 이제 마누라만 보면 경끼가 드나봅니다.
100m 전방에 마누라 보이면 얼굴이 희멀덕해집니다.
부들부들 떠는게 오히려 정반대로 안쓰러울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처음에 좀 잘하지 싶더군요.
지금도 찍소리 못하고 살더군요.3. .
'09.4.12 10:45 AM (211.243.xxx.231)길방쇠 맞구먼 뭘.
입질이 안오니 낚싯대를 좀 바꿔 보시려구?4. 푸하하하
'09.4.12 10:58 AM (112.148.xxx.150)난~~지난여름 길방쇠가 한일을 다 알고있다....캬캬캬캬캬
5. phua
'09.4.12 11:33 AM (218.237.xxx.119)어쩐지 낯 익은 닉과 아이피...
조횟수 늘리려고 나름 노력은 하시네요....6. .
'09.4.12 12:23 PM (118.176.xxx.139)근데 글은 참 재밌게 쓰셨는데요. 실환지 모르겠지만 재밌었어요. 통쾌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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