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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래미 이야기 2.

아라레 조회수 : 1,266
작성일 : 2004-01-26 09:39:02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했던가?

아버지의 권위가 집안에서 으뜸이었던 제 어릴적엔
우리끼리 하하호호 찧고 까불다가도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바퀴벌레들이 빛을 피해
사사삭 흩어지듯 각자의 방으로, 마당으로 나가거나
조용히 정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죠.

가족내에 화합되지 못하고 혼자 겉도는 그런
외로움을 그당시의 모든 아버지들은
가부장적 권위란 간판으로 숨기고 사셨던 듯 해요.
  
그러니 맛있는 밥상 앞에서도
대화는 커녕 숟가락 부딪는 소리라도 크게 날까봐
조심조심 밥을 먹었고
밥풀 하나라도 흘린다는건 상상도 못했어요.

쌀 미(米)자란 풀이해보면 위아래로
여덟 팔(八)자랑 열십(十)자랑 합쳐진거니
농부가 쌀을 생산해 내는데 88번의 손길과 정성이
닿아야 가능한거라며...

밥먹는 시간은 밥만 먹는게 아니라
우리에게 하시는 이런저런 잔소리를
같이 먹는 약간의 고욕의 시간이었는데

요새는 새벽에 아이들이 먼저 나가고
아버지들은 출근시간에 쫓겨 밥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한 식구가 밥상에 모이는 게 어려워져서
그런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지니
아이들의 버르장머리가 없어진다고 하는
걱정의 글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몸에 배인 습관 때문인지
저도 밥풀 흘린다거나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지 않는
사람을 보면 저도 모르게 잔소리를 하게 되는데

시댁 조카나, 우리집 조카나
요새 아이들은 밥 귀한줄 모르고
밥그릇에 밥풀을 덕지덕지 붙여놓은채 식사를
끝마치고 잔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네요. -_-^


그런데.....

지금 한창 자기가 숟가락질을 해야겠다고
콧김을 튕튕 내뿜으며 고집을 부리는
16개월 딸아이의 밥상을 보면... (-_-ㆀ)

돼지가 족발로 곤죽을 해놓고 파뒤집어놓은
꿀꿀이죽의 처참지경의 현장.(보다 더 합니다.)

아직까진 군기 잡을 나이가 아니기에
한숨을 내쉬며 여기저기 흘리고 짓씹은 밥풀을
'내 팔자야'해가며 휴지로 주워닦고
마저 남은 밥을 먹이려하면
꼭 마지막 한두숟갈은 거부를 합니다.
(밥을 적게 담아도 마찬가지...)

그 남은 밥찌꺼기들을 저는 차마 먹을 수는 없어서
그대로 음식쓰레기로 버리곤 하는데
(그나마 깨끗한 날은 제가 처리합니다. ㅠ.ㅠ)

친정엄마는 왜 밥을 아깝게 버리냐,
어미가 돼갔고 자식이 남긴밥 못먹느냐며
니가 못먹겠으면 내가 먹어야겠다..하시며
달라고 하십니다.

국에 만 밥풀은 탄력없이 팅팅 불어있고
질척한 김찌거기에 손가락을 푹푹 쑤셔넣기도 한...
거지 깡통에 넣어줘도 민망할 지경의
그 밥의 처참한 홀로코스트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이걸 어찌
드시겠다는 것인지.

때마침 콧물감기에 심하게 걸려
콧방울을 코끝에서 펑펑
터뜨리고 다니는 아기를
좀 편하게 해줄려고
스포이드식 콧물흡입기를 써서
콧물을 빼낼려고 하는데(코크린은 죽음으로 울고 반항함)
자기의 콧속에 어떠한
이물질의 삽입도 허용않기에

내가 직접 입으로 코를 빨아내서 뱉는 식으로
시술을 했었는데
친정엄마는 '드런뇬...'운운하시며
제가 콧물을 빨아먹는 것보다
그 밥을 먹는게 훨 낫다는 거시였습니다...

솔직히 나는 콧물을 먹은게 아닌뎅..
걍 가래뱉는 셈 치고 빨고 바로 뱉고.
애도 시원해하고 효과도 빠르고.
조그마한 아기의 코를(콧물말고 NOSE)
빤다는 건 또 얼마나
가슴떨리게 사랑스런 일인지... -ㅅ-

후유증으론 그 다음부터
딸래미도 어른들 코를 빨려고
입을 벌리고 다가선다는...

과연 어느쪽이 더 '드런 일'인지 잘 모르겠다며
외손녀의 남은 밥찌거기를
꿋꿋이 드시는 친정엄마와
버리자는 저와의 언쟁사이엔
밥의 소중함이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좀더 아가가 자라고 말귀를 알아들을 때가 된다면
저도 배운대로 밥상머리 잔소리를 하게되겠죠.
아버지의 무섭고 엄하셨던 말투가 아니라
좀더 상냥하고 자상한 톤으로
나긋나긋하게 가르치는 상상을 합니다.

넵... 단지 상상일 뿐입니다.
지금도 이구 이 웬수야,,,
하며 먹이는걸요. ㅠ.,ㅠ
IP : 210.117.xxx.164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키세스
    '04.1.26 9:51 AM (211.176.xxx.151)

    어머!!! 아라레님께 이런 면이...
    너무 헌신적인 엄마의 모습에 감동 받습니다.
    저는 그냥 이물질삽입에만 열중했었는데 ㅋㅋ

  • 2. 딸기짱
    '04.1.26 10:26 AM (211.224.xxx.249)

    ㅋㅋㅋㅋㅋㅋㅋ
    웃어도 되나요???
    나도 나중에 내 딸 코를 입으로 빨수 있을까???

  • 3. 백설공주
    '04.1.26 10:42 AM (211.205.xxx.13)

    저도 몇년전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지요
    작은 놈 눕혀놓고, 열심히 코를...
    그땐 하나도 안 더럽더라구요.
    코가 막혀 숨 못쉬는 것이 안스러워서 그만...
    주위에 있는 식구들은 모두 쓰러졌다는 뒷소식이
    있답니다
    아라레님 어떻게 그리 묘사를 잘하시나요?

  • 4. 무우꽃
    '04.1.26 11:04 AM (61.111.xxx.218)

    제목 보고 "누가 아침부터 날 열받게 해!" 하고 읽었다가 ....
    상상만 해도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나요.
    저 어렸을 때 종기가 무척 났는데, 어머니는 그 고름을 빨아주시기도 했는걸요.
    그나 저나 딸네미 말입니다. ㅋㅋㅋㅋ
    묘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려. 좋은 엄마 되겠어요. ㅋㅋㅋㅋㅋ

  • 5. 깜찌기 펭
    '04.1.26 3:06 PM (220.81.xxx.149)

    ㅋㅋㅋ
    상상중입니다.. ㅎㅎ

  • 6. 푸우
    '04.1.26 4:04 PM (211.109.xxx.53)

    밥상머리 교육,, 맞아요,,
    요즘은 아빠들이 엄마보다 더하던걸요,,
    우리 남편만 봐도,,,

  • 7. 사랑초
    '04.1.26 6:50 PM (211.204.xxx.66)

    상상의 도가니속에서 엄마와 아기를 봅니다. 세상에서 엄마보다 더한 사랑이 있을까여?!
    엄마가 보고싶네여....작년 여름휴가때 이후로 보지 못한 울엄마....

  • 8. 김혜경
    '04.1.26 11:36 PM (218.51.xxx.43)

    아라레님 이거 초치려고 하는 얘기는 아니구요...아이가 남긴 분유, 아이가 남긴 밥..그거 먹는 만큼 엄마 살이 찐다네요...잉여칼로리란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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