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무섭고 조금 웃긴 이야기

키세스 조회수 : 1,135
작성일 : 2004-01-26 09:13:39
대학 4학년 때 먼저 취업해 다른 도시로 간 친구가 있었어요.

어느날, 월급 받은지 며칠되지도 않았는데 돈이 하나도 없다고 SOS를 치더군요.

부모님 반대하시는데도 부득부득 우겨서 가놓고 집에 손벌리기 민망하다고... -_-

그래서 제가 모아놓은 돈을 친구에게 보내주었다...고 하면 공상과학영화죠. ^^;

어느 일요일 엄마한테 몇푼 얻어 친구에게 갔지요.

그냥 부쳐도 될텐데 핑계대고 놀러간거죠.

위문금을 전달하고, 못다떤 수다 몰아서 떨고, 신나게 놀다 막차를 타고 왔지요.


시내버스 끊기지 않은 시간이라 다행이라면서 집으로 열심히 가고 있었어요.

우리 아파트 가는 길, 워낙 건전한 가게들만 있어서 그 시간대에는 다 문 닫고 가로등 불빛

이 없으면 암흑천지가 될 것 같더군요.


종종종, 걸어가다가 보니 문닫은 슈퍼 평상에 마스크를 쓴 키 큰 남자가 앉아있더군요.

힐끔 한번보고 키 커도 마른 남자는 싫어,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다다다다

눈앞에 식칼이 보이더니 제 목쪽으로 바싹... @.@

“소리 지르면 죽인다”

소리, 너무 지르고 싶었지만 아무소리, 정말 아무소리 안나오더군요.


슈퍼 옆 골목으로 질질 끌려갔습니다.

그 강도, 목에 칼을 바싹 들이대며 말했습니다.

“있는 거 다 내놔”

그순간,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생각도 들고,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되

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돈만 가져가시고 지갑은 돌려주시면 안돼요?”

잠깐 침묵...

“니가 돈 빼서 줘”

한손은 칼 들이대고 있고 한손은 제 어깨를 싸안고 있었으니 손이 없어서 고민됐나 보더라

구요. ^.^

지갑에 남은 만원 빼서 줬습니다.


다음 “반지 빼”

겁이 좀 덜나더군요.

그래서 “이건(민자지만 금방에서 맞춘 금이 제법 많이 들어간 반지)18K고

요건(진주 두개 달린 좀 있어보이나, 보세집에서 싸게 주고 산 반지)14K인데 돈이 안되거든요.

이거만 가져가세요.” 그랬어요.

그랬더니 “요거(진주반지)줘” 하더군요.

두개 달래도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ㅎㅎ


그래서 진주반지 빼서 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 *.*

강도는 갑자기 제 몸을 돌려 안으며 “소리내면 죽인다” 하더군요.

마치 나쁜짓하는 연인들처럼요. --;

머리를 마구 굴렸습니다.

‘강도야!!!하고 소리치면 저 사람이 구해줄까? 아닐 거야, 자기 도망가기도 바쁠걸’ 이런

결론을 얻고나니 두려워 지더군요.

‘나처럼 아름다운 아가씨(공주병, 주변 모든분들의 도움으로 극복했습니다. 특히 남편 -..-)

를 데려다 인신매매단에 넘기고...’ 이런 얼토당토 없는 생각에 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

이 간절했습니다.

‘저 사람이 지나가기 전에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텐데’ 안절부절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진주반지를 슬쩍 던지며 “반지를 흘렸어요”하니까 보물^^에 눈이 먼 강도가 쭈그려 앉더군요.

그 뒤로 다다다다 뛰어 우리집으로 휴~


집에오니 세상에나 칼을 손으로 막았었는지 손가락 등쪽에 피가 질질질...

살짝 비었는지 아프지는 않은데 피가, 피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엄마, 아빠한데 이야기 하고 엉엉엉 울고...

그 뒤로 사흘동안 집밖을 못나갔어요.


십여년 지난 지금도 누가 제 등뒤에서 뛰면 놀라서 홱 돌아봐서 뛰던 사람까지 놀래킵니다. ㅋㅋㅋ

너무 무서워서 지금까지 기억이 선명한데 시간이 지나니까 우습기도 하고 그 강도, 불쌍하

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가출한 청소년이 춥고 배고파서 한 짓 같은데 손씻고 착한 사람 되었는지도 걱정이구요.

그날 그 난리를 치고 얻은 수확이 돈 만원하고 돈 안되는 반지 하나였으니... -_-


제가 한 행동도 어찌 생각하면 용감하다싶다가, 어찌 생각하면 엉뚱한 것이 정말 무서운 강

도 만났으면 지금 이글 쓰고 있겠나싶네요.

이상으로 어리버리 초보강도와 콩알만한 간이 배밖에 나온 아가씨의 이야기였습니다. ^^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은 연인들이 안고 키스라도 하다가 자기를 보고 도망간 걸로 알

았을거예요. ㅋㅋ

살면서 이런 경험 해보신 분들, 별로 없을걸요. ^^

IP : 211.176.xxx.151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김혜경
    '04.1.26 9:16 AM (211.201.xxx.222)

    세상에...그런 상황에서도 침착을 잃지 않으셨다니...

  • 2. 아라레
    '04.1.26 9:19 AM (210.117.xxx.164)

    하나도 안웃겨요! 키세스님이 지금 글을 재밌게 쓰셔서 그렀지.
    큰 일 안당하신게 천만다행이네요. @.@
    정말 재치가 있으셔서 무사히 빠져나오신 거네요. 다행다행....

  • 3. 키세스
    '04.1.26 9:21 AM (211.176.xxx.151)

    샘니임~
    침착을 잃었으니 그런 행동을 했지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ㅋㅋ

  • 4. 아임오케이
    '04.1.26 9:29 AM (221.145.xxx.197)

    '돈은 가져가고 지갑은 돌려주시면 안돼요?"
    하하..압권입니다.

  • 5. 딸기짱
    '04.1.26 10:43 AM (211.224.xxx.249)

    키세스님 대단하세요....
    글고 진자 다행이예요..--;;

  • 6. 꾸득꾸득
    '04.1.26 12:44 PM (220.94.xxx.73)

    정말 하나도 안웃겨요..
    넘넘,,무서워요.
    그런일 제기 딩했다면 전,,아마,,, 말도 못하고 사시나무떨듯 떨기만 했을걸요...
    흐~~~아...

  • 7. 키세스
    '04.1.26 1:02 PM (211.176.xxx.151)

    엥 @.@
    명절 꿀꿀한 기분 털어내고 웃으라고 쓴 글인데 다들 무서워하네요.
    나의 정신세계에 문제가 있나?

    그래도 충격완화 많이 시켜서 웃기게 썼는데...
    좀 웃어주세요. ^^

  • 8. 깜찌기 펭
    '04.1.26 3:04 PM (220.81.xxx.149)

    이거 실화예요?
    헉-키세스님을 본 소감으로 충분히 이럴분입니다. 암~ -_-;
    침착함에 어떤 맨트를 해도 재치가 묻어나는 분이거든요. ^^

  • 9. 키세스
    '04.1.26 4:07 PM (211.176.xxx.151)

    불행히 실화예요. -_-
    제 얘기를 들은 어떤 사람이 자기는 세상을 너무 곱게 살아왔다고 하더군요.
    저도 집, 학교만 오가면서 정말 곱게 살았는데 흑흑흑
    이런 험한일을 당했어요.

    이 일이 이후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됐답니다.
    저, 비서를 오래했었다고 했잖아요.
    그게 밖에서 보기는 고운 일인데 실제로는 많은 곤란한 상황에 부딪치는 험한 일이거든요.
    모시는 임원을 최대한으로 보좌하려면 곤란한 일은 제가...
    제법 순간대처능력이 있어서 칭찬 많이 받았답니다.

    제가 모신 임원님들만 퇴직 안하셧어도 희망퇴직 당하지는 않았을텐데... 꺼이꺼이

  • 10. 푸우
    '04.1.26 4:33 PM (211.109.xxx.53)

    전 키세스님 얼굴과 목소리와 모든것을 종합하여 상상해보건대,,
    웃깁니다,,
    근데,, 저도 간은 진짜 큰데,, 그 상황이라면,,,??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280303 죄송..OSB입니다.초원의집. 2 초코초코 2004/01/27 879
280302 아이 하나 더 낳을까요? 19 부끄러워서 .. 2004/01/26 1,315
280301 <초원의 집 >한대요,OSB에서.. 5 초코초코 2004/01/26 885
280300 장금이를 보느라 포카혼타스 2004/01/26 892
280299 자연그대로에 익숙한 우리들 4 깜찌기 펭 2004/01/26 900
280298 강은교님의 새 산문집 - 사랑법 4 jasmin.. 2004/01/26 884
280297 행복한 비명일까여??? -후기 5 이쁜이 2004/01/26 1,192
280296 생전처음, 에스테틱 가다.. 3 딸하나.. 2004/01/26 1,469
280295 친정이란.... 3 익명으로.... 2004/01/26 1,462
280294 펌]김전일의 법칙 3 야옹냠냠 2004/01/26 880
280293 드뎌 어머님이 가셨다! 5 자유 2004/01/26 1,539
280292 아흐 고민꺼리를 만들었습니다 도와주세요~~ 4 제비꽃 2004/01/26 872
280291 용기를 내서 저도 글적어봅니다. 7 엄마곰 2004/01/26 1,183
280290 임신.. 음. 그 엄청난 화두.. 14 이번엔 익명.. 2004/01/26 1,598
280289 악처(惡妻)항변 10 주석엄마 2004/01/26 1,454
280288 인생이 무대에 올려진 연극이라면 김윤곤 2004/01/26 883
280287 명절에 임신7개월은 아무 문제도 안되네요.. 9 이종진 2004/01/26 1,298
280286 딸래미 이야기 2. 8 아라레 2004/01/26 1,266
280285 무섭고 조금 웃긴 이야기 10 키세스 2004/01/26 1,135
280284 두아이키우기 6 bhmom 2004/01/26 1,003
280283 며칠동안 생긴 일들.... 20 jasmin.. 2004/01/26 1,643
280282 앗 나으 실수 3 커피앤드 2004/01/25 981
280281 세월따라 친구도 변한다,, 11 푸우 2004/01/25 1,512
280280 심심해서 어슬렁거리다가... 19 빈수레 2004/01/25 1,385
280279 사특한 마누라의 결정판...절대 따라 하지는 마세요. 22 김새봄 2004/01/25 2,015
280278 삶을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 1 김윤곤 2004/01/25 899
280277 외로운 명절. 17 울고싶어.... 2004/01/25 1,329
280276 마음이 헛헛한 .. 5 둥이모친 2004/01/24 1,120
280275 촌아지매 코스트코 상경기...ㅎㅎ 7 촌아짐 2004/01/24 1,577
280274 대구코스트코는 어디... 5 bee 2004/01/24 8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