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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게 차(車) 있는 즐거움~~

도란도란 조회수 : 1,043
작성일 : 2003-04-14 14:15:30
남편이 이곳 국립대로 임용되어서, 목포에 살게 된 지 8개월째입니다.
그동안 차를 '치명적인 흉기'라고 여겨서 '절대' 운전을 하지 않겠다던 남편이, 학교까지의 불편한 교통 여건과 승용차 뺨치게 비싼 대중교통비 때문에 결국 결심을 바꾸어 저와 함께 지난 3월, 드디어 면허를 땄답니다. 면허증 나온 날 바로 차 인수하고 그 다음날부터 운전을 시작했는데, 제 걱정과 달리 이젠 제법 능숙하기까지 한 코너링 실력을 보여주고 있답니다.
사실 차 없는 게 그토록 불편하다는 걸,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잘 몰랐었어요. 주로 지하철 타고 다니고 꼭 필요하면 아빠차, 친구차 어렵지 않게 얻어 탈 수 있었던 까닭에, 저 자신도 면허가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안해봤지요. 근데, 아기가 생기니까, 병원갈 때, 쇼핑갈 때, 하다못해 교회갈 때도 무척 불편하더군요. 매번 아빠한테 의지할 수도 없고, 택시타면 택시비 장난 아니게 들고... 그래도 버스, 지하철, 택시, 자전거... 온갖 교통수단에 의지해 버텨 왔는데, 이곳 목포에 와서는 더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어요. 아기 유치원때문에 매일 함께 출퇴근하는데, 택시를 자주 타다보니 한 주 교통비만 10만원 가까이 들더군요. 결국
굳은 결심을 하고 면허를 땄답니다. 면허증 받던 날, 우리 식구들 그동안 고생한 거 생각하면서 울 뻔했어요.
어쨌든 이런 우여곡절 끝에 우리 차를 갖게 되었는데, 왜 좀더 빨리 결심을 하지 않았던가 후회가 됩니다. 남편 스스로도 자신이 그렇게 운전을 좋아하게 될지 몰랐다고 말할 정도랍니다. 그덕에 거의 매주 전남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어요. 영암, 강진, 해남, 진도, 완도, 나주... 말로만 듣던, 지도에서만 보던 여러 곳을 다니며 구경하고 있습니다.
독천에서 영암까지 수킬로미터에 걸쳐 뻗어있는 벚꽃 가로수길을 지나가 보기도 하고, 雲霧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땅끝마을 전망대 위에서 바다가 아닌 제 마음 속을 들여다 보기도 했지요. 제법 화려한 정원이 잘 가꾸어진 해남의 우수영이나, 눈이 시리도록 하얗게 펼쳐진 나주의 배꽃 언덕, 비록 져가는 중이라 나뭇가지보다 흙 위에 더 많은 꽃잎이 누워 있던 해남의 보해 매실 농장 ... 정말이지 평생을 두고 마음에 새겨질 만한 많은 순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 중에서도 어제 갔던 강진의 다산초당과 백련사는 특별한 감회를 주었답니다. 지난 12월에도 갔었는데, 그때는 정말 힘든 길이었지요. 버스로 강진에 가서, 다시 버스로 다산초당까지... 남편이 아기를 캐리어로 짊어지고 초당에 올라갔다가, 다시 걸어서 백련사까지... 시간 맞춰 뛰어내려와 버스타고 강진 가서, 다시 버스타고 목포로 돌아왔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아기도 나중엔 지쳐서 캐리어 위에서 잠들고... 버스 터미널에서 차가운 겨울바람 맞으며 잠든 아기를 안고 있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근데 어제는 집에서 차 타고 약 1시간만에 백련사 도착해서, 오솔길로 걸어 올라가 그 맛있다는 백련사의 우전차 느긋하게 마시고, 산, 바다, 동백숲, 유채밭, 경내 실컷 구경했어요. 백련사 찻집 가보셨나요? 우전, 세작, 솔잎차만 파는데, 제대로 갖추어진 다구에 향긋한 찻내음까지 녹차 별로 즐기지 않는 저도 마시면 흐뭇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앉은뱅이 테이블에는 동백꽃 가지를 물 위에 띄워 놓았는데, 그 선연한 붉은 빛과 꾸밈없는 자연스러움 때문에 봄이 그대로 들어와 앉은 것 같더군요. 노란 유채 옆에, 긴 꽃대에 하얀 꽃망울을 단 녀석들이 줄지어 있어서, 하얀 유채도 있나 했더니 남편이 그건 무우라고 하더군요. 장아리라고 하는거요. 산도 흰색, 붉은색, 연두빛, 노랑빛이 뒤섞여 얼마나 아기자기하던지...  동백의 마지막 가는 길도 무지 장엄했구요. 제 눈이 감당 못할 즐거운 경치였답니다...
차 있는게 이렇게 즐거운 일인지 몰랐어요. 차 없이 하는 여행의 묘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저희 식구들에게는 그 묘미는 이제 충분한 것 같아요. '흉기' 아닌 '이기'로서 차가 가져다 줄 재미, 정말 기대됩니다.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즐거움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종종 글 올리겠습니다.
IP : 203.234.xxx.82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건이맘
    '03.4.14 2:21 PM (211.188.xxx.72)

    부러워서 숨넘어 가겠네여.
    전 면허딴지 십년..아직도 운전대만 잡으면 유체이탈되는 심각한..
    몸은 차속에..정신은 우주를 헤매이는것 마냥..혼이 쏙빠져여.
    연수도 받고 아빠랑 남편이랑 숱하게 다니지만..순간순간 맞닥뜨리는 위기..
    너무 괴롭네여.
    잘하셨어여. 아이데리고 대중교통 이용하기 너무 힘들죠.
    저도 하여튼..무슨 수를 써서라도..혼자 운전하는 재미를 좀 느낄수 있게
    더 노력해야죠..

  • 2. 정효정
    '03.4.14 7:22 PM (210.114.xxx.130)

    저랑 같네요.
    저도 부산살때는 버스..전철타고 다닐때는 몰랐는데...
    작은 도시로 이사를 오니까...너무 불편해요.
    버스가 다닐만한 거리가 못되니...버스기다리니 걷거나 대부분이 콜택시를 불러요.
    저도 하루에 한번 정도는 택시를 이용하는데...그래도 아직 아기가 없어서
    나은편인데...한 3년 택시만 타고 다니니까...그토록 운전하는것 자체를 싫어했
    는데...이제는 정말 운전면허따는것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아기도 없고...남편이 새차를 사려고 해서 남편차를 제가 이용할까해서요..
    운전면허딸려면...어떻게 해요? 비용등등...기타
    남편은 딴지 너무 오래되서 잘 모르겠다해요.
    참...저는 경상도 사람인데...삼천포로 시집오고..아무래도 가깝다보니 자주 가게
    되는데 전라도쪽이 너무 좋아요. 볼것도 많고...음식도 맛있고...
    저도 어제 광양 매실농원에 갔다왔어요.
    보성차밭도 좋았구요...그 근처 선운사? 가 있죠.
    혹 잘 아시면 소개해주세요. 그리고 인천에서 목포고속도로 뚫렸잖아요.
    한번 시간나면 끝과 끝을 가보고 싶네요.

  • 3. 김혜경
    '03.4.14 9:21 PM (211.178.xxx.70)

    정말 너무너무 부럽네요.

    전 1987년에 처음 차를 뽑았는데 초보시절에는 운전대 잡는 것이 무서워서 매일밤 울고...고 단계가 지나니까 차없이 어떻게 살았는지...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 4. 김새봄
    '03.4.15 9:31 AM (211.206.xxx.104)

    남편도 나도 아직까지 면허도 없는 원시인적인 우리부부에게
    수많은 주변사람들의 유혹과 협박과 설득이 있었지만
    도란도란님 글만큼 유혹적인 글은 없었네요.

    슬슬 면허를 따야 겠다는 생각이 들던것이 확고한 결심으로 바뀝니다.
    고게 언제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편이 하는 일이 요즘 너무 않되서 네가 걱정에서 이젠 우울로 바뀌었거든요)
    면허 꼭 따야 겠습니다.
    날씨가 따뜻해 지는만큼 남편일에도 화기가 돌아야 하는데.아휴..

  • 5. 도란도란
    '03.4.15 10:42 AM (203.234.xxx.82)

    효정님, 면허 따는 거 좀 귀찮긴 하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면허는 필기, 장내기능, 도로주행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받을 수 있어요.
    우선 운전전문학원에 등록부터 하시고, 지정해 주는 날짜와 시간에 맞춰서 시험보고 연습하고
    그러면 됩니다. 비용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하는데, 응시료까지 다 포함해서 70만원
    정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전문학원에서 안 하고, 시험장가서 따로 시험보면 좀더 저렴하게
    할 수도 있겠지요. 꼭 해보세요. 저같은 겁쟁이도 하는걸요.
    그리고 선운사는 늦겨울(2월말-3월초)과 가을철이 가장 좋아요. 겨울엔 동백 군락지가
    가을엔 단풍이 있어서 그렇지요. 삼천포에서 오는 길은 잘 모르겠습니다. 목포에서 갈 때는
    서해안 고속도로 타고 가다가 선운사 톨게이트에서 빠져나와 좌회전해서 약 13km정도 가면
    나오거든요. 근데 너무 관광지화되어 버려서 자연을 느끼기에 아쉬움이 많답니다. 저는
    선운사보다는 영암의 월출산을 추천하고 싶네요. 월출산 등반하고, 온천에서 목욕하고, 무위사랑 도갑사 둘러보고, 강진의 다산초당 백련사도 멀지 않으니까요... 한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 6. 사과국수
    '03.4.15 10:42 AM (211.193.xxx.35)

    저 이제 초보딱지 붙히구 다닌지?.. 언~ 2개월째랍니다.. ^^
    아직 제가사는 시 외는 나가보지못했구염.. 고속도로는 당근이구여.. 짐 문제는 주차랍니다..
    빽빽히 있는 차와 차사이에 주차할라믄?... 아니 그런곳에는 주차못해염.. 글구 에쿠스니그랜져니 그런차공포증있어염..엉엉~ 그런차 한번 긁으면?... 차팔구 보험회사에서 주는 돈가지구도 해결못해서 자기돈도 보태야 한데요.. 제 주위에 에쿠스긁은사람말로는요...허걱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차 끌고 다니는 제가 참으로~ 대견스럽고 기특해요..^^ 제 칭구들도 그러더라구요..
    전 남친통해 운전배웠는데.. 코스그려서 배우고요.. 항상 옆에 타서 가르치고.. 그러다가 면허증따고는 앞에서 에스코트하면서 안심하면서 끌고 다니게 되구요.. 이젠 남친없이 혼자서도 잘해요^^
    이런 남친없었으면?.. 운동신경둔한제가 어케 차를 끌고 다녔을지.. 남친에게 넘 고맙지요.. 이제 차와차사이주차잘하고 고속도로까지 나간다믄?... 더할나위없이.. 제자신이 더 기특할거같아여..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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