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스프리 섬
<시어詩語> 풀이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루카>복음 15장 18절을 인용하여 시어詩語로 활용.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
외 椳: 박과에 속한 한해살이 덩굴풀
이니스프리 섬
이니스프리 섬: 여름 풍경
방금 물감을 풀어 그려낸 수채화처럼 맑고, 신선하고, 시원스럽구나!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는 예이츠가 23살 때 런던에 살면서 고향인 아일랜드의
<슬라이고Sligo>를 그리워하며 쓴 시로 알려졌지요. 그곳에는 <길Gill>이라고
하는 평화가 고요히 감도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고, 그 호수 안에 ‘이니스프리’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시인은 그 섬을 도시생활에 지친 문명인의 정신적인 해갈을
위한 안식처이자 이제라도 돌아가서 살고 싶어 하는 ‘이상향理想鄕’으로 동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객지에서 늘 마음 한 구석에 갖게 되는 향수어린 시인의 그런
심상心象을 절제된 언어로 풍경화 그리듯 쓰고 있네요.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
동방의 한 도시에서 어느 때 읽어도 그 정서적인 공감은 결코 다를 수 없는, 서양
시인의 <귀거래사歸去來辭>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니스프리 섬’은 호수 한 가운데에 앉아있는 자그마하고 예쁜 섬으로, 처음에 이
시를 알게 되었을 때는 시인이 들려주는 이국 섬의 얼굴이 궁금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천리안千里眼’을 통해 바로 검색해 볼 수 있는 호시절!......
서양인이 썼는데도 동양적 내면의 영상미와 정감을 함축하고 있고, 문명의 소음과
공해에 찌든 도시인의 귀향처歸鄕處를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언어로 정제해놓은,
마치 <선시禪詩>의 청정한 기운이 느껴지는 서정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공의 차별을 넘어 이질감 없이 그 <시詩 정신>에 충분히 공감하게 되고, 자연에
대한 관상觀想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니 말이지요.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 ”
최첨단의 문명 속에 생활하는 현대인들, 특히 도시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현실’에서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며, 진실한 사랑을
그리워하듯 늘 피로에 지친 몸과 정신을 어딘가에 머물러 푹 쉬고 싶어 합니다.
“자연과 멀어지면 질병에 가까워진다.” 《괴테》의 말처럼 자연은 하늘이 내린
의사로서 실질적인 소통관계에 놓여 있을 때만이 사람은 건강함을 유지하고,
일상화된 온갖 ‘인위人爲’에서 물러나 ‘자연스러울 때’ 진정한 평안에 들게 됩니다.
하여,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이니스프리’를 꿈꾸고 살아가는, 살아가게 되는,
그리고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자들이기도 하지요.
무채색의 풍경이 일상화된 도시 생활에서 생존 경쟁과 인간관계에 시달리며 살아
가다 보면, 날이 갈수록 무엇인가를 잃어져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 합니다.
사람들과 분망한 생활로부터 풀려나 홀로 침묵의 명상 속에 몰입해 ‘자신을 관조’
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야 비로소 회복될 수 있는 것!.......
또한, 문명화에 길들여진 인간의 <눈> 역시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색을 보게 될
때 다시금 시각의 영성(靈性, spirituality)을 되찾게 됩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에 둘러싸여 있어도 결코 행복을 인식할 수
없기에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소망은 채울 수 없는 욕망이 아닐까 싶네요.
이니스프리 섬
프랑스의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는,
“현재는 배고픔이 세계적인 문제인 것처럼, 앞으로는
피로(疲勞, 스트레스)가 세계적인 문제가 된다.”
이미 1970년에 쓴 그의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다가올 미래를 전망하고 있는데
현대인들에게 요구되는 힐링healing이나 정신의 휴식처로써 이 ‘이니스프리’가
피로에 겹쳐 탈진되고, 무력해진 삶의 재생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겠지요.
자기 일에 성취한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광의 자리에 별장을 짓거나 전원에 주택을
마련한다든가 혹은 <템플 스테이temple stay>와 휴가 여행을 떠나는 것도
자신의 ‘이니스프리’를 찾아가는 이탈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경향의 일부
사람들은 <성> 혹은 <마약>과 같은 환각제를 통해 탐닉의 세계에 빠져들어, 자아
自我가 분열되는 자기 파괴적인 불행을 스스로 자초하기도 하지요.
독일의 저명한 가톨릭 신학자인 카알 라너에 의하면 “시인은 자기의 말을 통해서
사물들을 해방시키고, 시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빛 속으로 들어가게끔
말하는 위력을 지녔다.”고 합니다. “이니스프리의 호도”를 읽으며 잠시나마 자신
의 올가미에서 해방을 맛보거나 선의의 이탈을 꿈꾸게 되는 현대인은, 정서적으로
‘자아 상실’이 더욱 염려되고 불안정해진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요.
세상의 소음과 인간관계의 번잡함을 떠나 스스로 선택한 고독 속에서 자신을 바로
보며, 마음속 목소리로 내밀하게 질문하는 시간이 현대인에게 각별히 요구됩니다.
.............. 나는 누구이며 무엇 하는 존재인가? ..............
‘이니스프리’라는 변방에 있는 작고 외롭던 섬은, 시인에 의해 세계적인 지명도를
얻게 되었고, 예이츠는 청량한 시를 인류에게 남겨 놓은 문학적 공로로 인해
“Inventas qui vitam excoluere per artes. 창작 예술로 인생을 향상시킨 사람”
(영국 작가 헨리 필딩의 소설 <톰 존스>에 나오는 라틴어 격언인데 노벨 문학상
메달에도 씌어 있다고 함)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56년~1939년)
아일랜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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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시 낭송: “ The Lake Isle of Innisfree ”
http://www.youtube.com/watch?v=RfYGF7Pkh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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