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했을 때 , 선생님이 주신 책이 시노자키였습니다.
바이올린 교본이라곤 스즈키란 이름밖에 들은 적이 없었는데 어, 이건 다른 책인가 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작을 했지요. 4줄 중에서 마지막 줄까지 어느 정도 손가락의 자리를 익힐 정도 되자 스즈키 교본을 구해 오라고
하시더군요. 시노자키도 아직 마무리 못했는데 두 권을 나가는 것은 조금 무리가 아닌가 싶어서 책 구입을
계속 미루고 있다가 목요일 함께 공부하는 신 숙씨로부터 1권을 받았습니다. 이미 끝났다고 빌려주더라고요.
그런데 책을 펼쳐보고 깜짝 놀랐지요. 처음부터 #이 세 개나 붙은 악보가 나오는 겁니다.
당황해서 순간 책을 덮었지요. 아니 이렇게 복잡한 곡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들이 과연 어떻게 연습할 수
있을까? 혼자 잔뜩 의문을 품은 채 레슨을 받으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운지법을 배운 상태에서 선생님이 반음의 처리에 대해서 몇 마디 도와주시고 시범을 보여주시니
갑자기 악보가 살아서 제게 말을 거는 느낌이더라고요. 생각보다 재미있고 ,오히려 시노자키보다 연습할 때의
탄력도 있어서 요즘은 바이올린을 꺼내면 스즈키를 먼저 연습하게 되네요.
새로 악보를 보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거나 연습에 꾀가 날 때 ,연습하기 전에 들어가보는 곳이
바이올린 친구되기란 재미있는 이름의 네이버 카페입니다.
그, 곳에는 전공자뿐만 아니라 지금 막 연습을 시작한 사람들, 오래 전 배우다가 그만두고, 다시 바이올린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 레슨에 관한 즐거움, 어려움등이 재미있는 일화와 더불어 올라와 있고
각 지역마다 모여서 연습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있더라고요. 장소를 구해서 모여, 각자가 연습한 곡을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무대라고 생각하고 연주하는 것,제가 파악한 모임은 그런 것인데요, 일산에 그런
소모임이 있다손 치더라도 아직은 무리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소모임이 같은 악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이유로
모여서 꾸려지고 있다는 것이 참 신선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네요.

사실 오늘은 오전내내 4교시 수업을 하는 목요일, 마지막 수업 끝나고 함께 먹은 점심에다 후곡마을에
새로 생긴 민우회 생협에 가입하고 장보느라 피곤하기도 해서 하루 연습을 빼먹을까 유혹을 느꼈지만
낮잠을 자면서 틀어놓은 바이올린 연주와 바이올린 친구되기에 들어가서 읽어본 글이 자극이 되어
조금이라도 연습을 하게 되는 것이 재미있네요. 어제 악보 볼 때 어렵다고 느낀 부분을 다시 마음먹고
연습해보니 조금은 개선되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요.

스즈키 방식을 접하면서 아하 이런 원리라면 베네주엘라 청소년 오케스트라, 아니 그 전 단계의 어린 아이들이
모여서 악보 보는 기본을 배운 다음 처음부터 합주가 가능한 비밀을 알겠구나 싶었습니다.
모르는 세계를 밖에서 들여다보면 그것이 마치 비밀스러운 것처럼 우리의 접근을 막는 느낌이 듭니다.
그 곳에서는 특별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은
그러나 누군가 그 문을 여는 열쇠를 열어주거나 여는 방식을 보여주기만 해도 그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게
되는 것. 그것을 요즘 자주 느끼게 되네요. 비밀을 보여준다고 그것이 바로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르는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끌 수만 있어도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더라고요.

스즈키 방식을 어른들과 함께 하는 외국어 공부에도 대입해서 저도 제 나름의 방식을 개발하고, 언어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줄 수 있길,길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볼
수 있길 하는 새로운 꿈도 조금씩 영글어 가고 있습니다.
수요일 모임에서 꼭 필요한 구문을 설명하는 책을 한 권 함께 보고 있는 중인데 이상하게 오늘 함께 읽는
영어책에 바로 그 책에서 본 구문들이 여러 번 되풀이해서 나오더군요. 설명을 하고 있는 중에 바라보니
초록별님이 환하게 웃으면서 아, 나 이것 알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잡혔습니다.
그 때의 기쁨이라니,

수요일 멤버들이 제게 열어주고 있는 요리의 세계를 고맙게 받으면서 저도 역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좀 더 즐거운 방식을 연구하게 되네요. 교학상장이란 부채의 글귀를 매일 한 번씩 바라보는 것도
이런 에너지의 밑걸음이 되고 있습니다.

스즈키 방식으로 연습한 다음 조금 쉬면서 고른 그림은 칸딘스키인데요,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곡과
잘 어울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