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요리교실이 있는 날입니다. 아침에 차로 함께 갈 지혜나무님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
후곡 성당앞의 정성들여 가꾼 화단에 빛이 만발하네요. 안나돌리님께 여러 번 설명을 들어도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고 무슨 소리인지 분명히 한글인데도 저장이 되지 않는 어리숙한 제게도 이 빛이
예사롭지 않아 보여서 빨리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잘 하는 것에는 손이 자꾸 가고, 못하는 것에서는 한없이 도망쳐 살아온 인생, 그것을 바꾸면서 살겠노라
마음 먹고 선언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하루 아침에 확 바뀌는 것이 아니란 것을 계속 느끼는 중입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도망가는 일을 멈추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한 달음에 몸이 ,손이 나가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지요.

카메라를 바꾼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아직 기본으로 찍는 것밖에는 익히지 못한 제가 한심하기도 하고
숙제로 A모드로 놓고 찍는 법을 익혀가겠노라 약속도 한 상태에서 벌써 아네모 모임이 금요일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정말 어떻게든 메뉴얼을 익히고 나가야 하는데 싶어서 아침에 챙겨넣었지요.
글로는 머리가 막혀도 누군가 읽고 보여주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show and tell이란 말이 떠오르네요. 학교 수업에서만이 아니라 메뉴얼에 서투른 사람들에겐 꼭 들어맞는
교수법이 아닌가 싶어서요.

저처럼 들어도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진의 기법을 설명해야 하는 스승의 입장은 얼마나 난감할까
요즘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프랑스어를 배울 때도 혹은 혼자서 책을 읽을 때도 저는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읽고 또 읽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어라, 이게 쉽게 들어오네, 그렇구나 ,그런데 그 전에는
참 막막했는데 많이 발전했구나 역시 배운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야 이렇게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나가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지레 겁먹고 역시 나는 이렇게 하면서 꼬리를 내릴 것이 분명하니까요.

성당 화단 앞에서의 딱 10분간이었는데 빛이 좋아서 이리 저리 다니면서 카메라를 눌렀고
집에 와서 확인하면서 미숙한 사진들을 걸러내고 나니, 이것은 아깝고 저것은 이래서 마음에 들고
이렇게 남은 사진들을 블로그에 저장을 하면서 그 10분이 준 즐거움을 되돌려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떤 사진작가는 중년층의 사진 열풍에 대해서 일종의 문화적 과시,혹은 문화적 소비라고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하지만 어떻습니까? 그런 것들도 자신을 위해서 제대로 쓰려고 노력하다보면 평소에 모르고
지나던 것들에 대해서 눈을 뜨는 귀한 시간도 되고 매번 변하는 상황에 대해서 기뻐하기도 좌절하기도
어떤 때는 제 자리에 맴돌고 있는 듯해서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러면서 카메라와 더불어 일상을 활기있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는 걸요!!


아직도 메뉴얼만 보면 한숨이 나오는 ,오리무중의 상황속에 있는 나라도 이렇게 단 10분간의 여유 시간에도
즐길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