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일과 3일 이틀간에 걸쳐
서오릉을 관람하며 걷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능까지의 공개는
조선왕조의 제19대 숙종과 그의 계비 인현왕후와 인원왕후의 능인
명릉인지라 간밤에 겨울비가 촉촉히 내린 어제 아침
일찌감치 촬영차 다녀 왔습니다.
왕릉에 세워진 석물들을 하나 하나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여 사진과 함께 석물의 설명도 찾아 적어 보았으니
부족한대로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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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릉은 19대 숙종과 그의 첫 번째 계비인 인현왕후, 두 번째 계비인 인원왕후 세 사람을 모신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이 쌍릉으로 나란히 조영되고, 인원왕후의 능은 다른편 언덕에 단릉 형식으로 모셔져 동원이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보통 우상좌하의 원칙에 따라 동원이강릉의 오른쪽 언덕을 왕이 차지하는 일반적인 왕릉과 달리 명릉에서 가장 낮은 서열의 인원왕후의 능이 가장 높은 자리인 오른쪽 언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부장품을 줄이고 석물 치수도 실물 크기에 가깝게 하는 등 간소한 제도로 조영하였는데, 이는 조선 능제의 분수령을 이루게 되었다. 8각 장명등도 4각으로 바뀌었으며, 능침에는 병풍석을 두르지 않았다. |
숙종의 계비였던 인현왕후가 1701년(숙종 27) 승하하자 숙종은 능호를 명릉이라 하여 현재의 위치에 능을 조영하였다. 조영 당시 능의 오른쪽을 비워두라는 우허제(右虛制)를 전교하였다.
1720년(숙종 46) 60세의 나이로 승하한 숙종은 생전에 바라던 대로 인현왕후의 오른쪽 빈자리에 잠들게 되었다. 사후 부군인 숙종의 곁에 묻히기를 소원하여 인현왕후와 숙종이 잠든 명릉에서 약 400보 떨어진 언덕에 자신의 능지를 미리 잡아두었다.
영조는 미리 정해둔 자리를 두고 지금의 자리에 그녀를 모셨다. 인원왕후가 정해둔 자리에 능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넓은 소나무 숲을 벌채하는 등 막대한 인력과 국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연으로 인원왕후는 생전에 소원했던 것보다 숙종과 더 가까운 곳에 묻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숙종의 능보다 높은 자리인 오른쪽 언덕에 잠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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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
홍전문(紅箭門)·홍문(紅門)이라고도 한다.
9m 이상의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박아 놓고, 가운데에는 태극 문양이 있다.
배위:
홍살문 옆에 위치하며 임금이 능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선조들께
절을 올리고 참도를 걸어 정자각으로 가서 제사를 모신다.
참도: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박석으로 깔려있는 이 길을 참도라 하는 데
가장 높은 길은 신들이 다닌다 하여 신도,
그 아래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닌다 하여 어도라 부른다.
정자각:
한자 정(丁)자 와 같은 모양의 전각으로 왕릉의 제사는 이곳에서 지낸다.
비각:
왕릉의 비석이 모셔져 있다.
바라보는 쪽에서 왼쪽이 조선조 제19대 숙종의 왕릉이고 오른쪽이 인원왕후의 능이다.
왼쪽으로의 숙종의 능
오른쪽으로의 숙종의 제1계비 인현왕후의 능
석물의 무인상과 문인상:
무인상은 병권은 최고권력자인 왕과 왕비에게만 있기 때문에 왕릉에만 세워진다 한다.
장명등:묘역에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쫓는 등.
석등은 사찰뿐만 아니라 능묘 앞에 세워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기능을 갖고 있다.
고려 말에 처음 보이는데, 공민왕 현릉(玄陵)의 장명등 이후 왕릉에는 반드시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일품 이상의 재상의 묘역에만 세울 수 있었으므로,
매장된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는 표시물이 되기도 했다.
초기에는 불을 밝힐 수 있는 장명등의 화창(火窓) 부분에 실제로 기름 등잔을 놓아
묘역을 밝히는 기능을 했으나, 점차 형식적인 장식물이 되었다.
망주석:무덤의 시설형식에 따라 묘주(墓主)의 사회 신분을 나타내는데,
무덤을 지키는 수호 신앙과 기념적인 기능을 가진 석조물이다
혼유석:상석(床石) 뒤쪽 무덤 앞에 놓은 직사각형의 돌로, 영혼이 나와서 놀도록 설치하는 것이라 한다
석호와 석양: 능을 옹호하는 석물로써 한쪽 한쌍씩 양쪽에 자리하고 있다.
숙종릉에서 바라본 숙종의 제2계비인 인원왕후의 능이다.
곡장 뒷편에서 바라본 인원왕후의 능
무인상을 가깝게 담아 보았다.
표정이 참 재미있어 보인다.
인원왕후의 능을 정면에서 바라다 보았다.
석등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제주의 오름처럼 사초지의 능선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흐린 날이어서 빛과 함께 담을 수 없어 안타깝고 정말 아쉬었다.
집주위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리고 나니 볼것도... 담을 것도 이리 많은 것을^^
서오릉은 특히 소나무가 많아서 운치가 한결 있어 보인다.
능으로 오르던 반대편쪽의 정자각에서 바라본 숙종왕릉
서삼릉에 비해 너른 능안이 한적하기도 하고 나무도 많아 흠잡을 곳이 없었지만
능입구가 너무 길가까이에 있어서 바로 담장 밖으로 차도와 음식점들이 있어서
경건한 맛이 떨어지는 듯 하여 못내 아쉬웠다.
긴 세월이 흘러 그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길옆으로
역사는 흐른다....는 여운을 간직한 채 낙엽은 어김없이 떨어져 뒹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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