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 Gees - Holyday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각본, 감독 이명세 / 출연 박중훈, 안성기, 장동건 / 1999년작 / 러닝타임 115분
도입부터 심상치 않은 이 영화는 우선 놀라움부터 선사합니다.
이토록 창백한 흑백 화면으로 거의 하드코어에 가까운 음악과 함께 답답 무미건조한 현대의 일상, 도시의 일상에 범죄자와 이를 잡으려는 강력반 형사, 두 종족의 대립구도를 멋들어지게 이미지화 시켰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시작되었고...
칼라로 전환된 후에도 특유의 스타일과 이미지 라인은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긴박한 액션 씬에서는 스텝 프린팅으로 더욱 강조하되 유려함을 잃지 않고, 쫓는 자의 시각으로 보여지는 스테디 캠 촬영은 이명세 감독이 직접 찍었다고 하는데 관객으로 하여금 숨죽이고 동참하게 하는 솜씨는 성공적입니다.
영화사의 중요 홍보 이미지로써, 본 사람들마다 일치하는 의견으로 역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초입의 비오는 날 40 계단 살인 현장 시퀀스입니다.

70년대말~ 80년대초 미국을 위시한 전 세계 젊은이들로부터 디스코의 황제로 열렬한 인기를 구가했던 영국의 비지스(Bee Gee's)의 처절한 밸러드 트랙 "Holiday"가 전편에 흐르는 가운데 조용히 진행된 살인은 역시 스텝 프린팅으로 인해 적막과 고요속에서 더욱 처절하게 비쳐집니다.
영국의 일요일 오후는 슬픔과 서글픔으로, 외로움과 고독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영국은 성공회가 국교로 된 이후 단 한번도 일요일에 일을 한 노동자가 없다고 하는데요...(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거리의 모든 상점은 문을 닫고 그야말로 죽음의 도시로 변하는 것이 유럽의 중심이었던 런던의 익숙한 풍경이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또 예프스키도 이 악명 높은 런던의 일요일 오후를 저주하듯 글로 남겼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국의 가수가 휴일을 노래한다면 이토록 처절하고 서글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자면 너무 오버한 것인지...-_-;;;

이미지의 주인공인 안성기는 쫓기는 살인자 역을 멋지게 만들어 보여줍니다.
강하고 고독한 승부사의 모습으로...
철저히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진, 실질적인 주인공인 박중훈은 집요한 추적자로서의 이미지로 거칠고 지독한 모습으로 또한 멋들어지게 보여줍니다.
이 두 배우의 성공적인 캐릭터의 완성만으로도 영화는 빛을 발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돕니다.

영화는 박중훈의 입을 통해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이 갖고 있던 형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립니다.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하지. 또 용서는 목사가 하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거야...."
거칠게 육두문자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으며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비는 박중훈은 그렇게 강력반 형사를 연기합니다.
종반에 결국 살인자 안성기와 맞딱뜨려 둘이 대결하는 햇빛 아래서의 비오는 날 결투 씬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만치 명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유명한 시퀀스는 매트릭스의 세번째 이야기 "레볼루션"에서 이미 이 영화를 보고 감동받은 워쇼스키 형제가 오마쥬 형식으로 집어넣었다는 유명한 얘기가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정말인지 루머인지는 제가 확인을 안해봤습니다...;;;
그러나, 정말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떤가요... 이 멋진 장면은 헐리웃의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근래에 만들어진 액션씬중 단연 으뜸이라고 감히 단언할 정도로 멋진 장면입니다.
헐리웃이 전혀 부럽지 않은!
이 영화는 단적으로 말해 철저하게 이미지로 설명하는 영화이기에 그저 직접 보고 각자 느끼는 그 부분이 진정한 영화의 의미이자 힘이기 때문에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 글로써는 정확한 느낌을 도저히 표현 불가능한 그런 영화이기도 한 것이죠.
영화를 보기전에는 사실 마음에 안드는 점도 있었는데, 그것은 장동건과 최지우의 캐스팅이었습니다.
그러나, 감독의 역량은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기우를 모두 씻어주었습니다.
혼자서만 온갖 멋진 장면 역할 다 해낸 강력반 막내 형사 장동건은 이미지가 우선인 이 영화에서 그 잘생긴 얼굴을 시기적절하게 들이밀며 자기 몫 이상으로 호연했고 아무리 봐도 멍청하게 밖에 보이지 않는 최지우는 똑똑하고 냉철한 살인자, 안성기의 여자로서 그 푼수같은 얼굴이 잘 어울렸습니다.(개똥도 약에 쓰려면...;;;)
그렇게 이명세 감독은 제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장동건은 이 작품 이후 연기력이 진일보하여 그 당시의 이런 제 생각은 이제 그에게 조금은 미안할 정돕니다.)
그의 데뷔작 "개그맨"은 소위 저주받은 걸작입니다.
제가 처음 그 영화를 봤을 때, 그저 충격이었었습니다.
'야, 우리 나라에서도 드디어 이런 영화가 나오는구나....'
그러나 80년대의 관객들은 소위 "한국영화"라는 자기 비하적인 단어들을 사용하며 우리 나라 영화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벗기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층이 너무 두터웠는지(사실 그때의 한국영화들...많이들 그랬습니다.) 별볼일도 없는 레오 까라의 "퐁네프의 연인들"같은 그저그런 영화를 별 생각없이 쫓아다니는 지적 허영심에 가득찬 시대였는지 이 뛰어난 영화는 철저히 외면당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90년대의 시작과 함께 나온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보자면, 그는 멋지게 성공한 셈입니다.
"첫사랑"도 좋았고... 그러나 "지독한 사랑"은 재미 없었고 "남자는 괴로워"는 너무 괴로웠지만요...
"남자는 괴로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명세 감독을 우습게 보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영화는 그래도 나름의 철학과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작품입니다.
감독은 이 작품에서 버스터 키튼식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주려 한 것 같았는데 과연 우리 나라에 슬랩스틱으로 웃길 수 있는 코미디언이 있기나 할까요?
만일 이 영화에 아쉬운대로 짐 캐리나 로빈 윌리엄스 같은 배우만 한 사람 정도 있었어도 그렇게까지 괴로운 영화는 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물론 미스캐스팅도 있었습니다.
김혜수... 그 여자, 그 작품에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배우였는데요... 얼마전 "타짜" 정도에서만 좋은 기억이 남는 배웁니다.
그 외 다른 영화는... 이런말 해서 안됐지만 김혜수 존재 자체로 영화를 말아먹었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워스트 여배우 3인방은 김혜수, 고소영, 김희선...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어쨌거나 이 새로운 영화는 대단히 멋지고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또한 그 속에 거칠고 잔혹한 이미지도 보여집니다.
어떤 사람은 화면은 멋있는데 내용은 없다고 혹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미지로 말하는 영화입니다.
강한 인상이 남는 이미지의 단편들을 모아서 하나의 스토리보드처럼 이어가는 솜씨.
그동안 우리 영화계에 이토록 강하게 이미지로 만들어낸 영화는 일찌기 없었고, 지금도 이만한 영화가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꽤 많은 내용들을 1시간 40분여 속에 녹여낸 이미지 영화의 결정판이라 할만합니다.
이 영화의 최고의 장점이자 옥의 티같은 가장 거슬리는 치명적 단점 하나는 바로 음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앞서 밝혔듯이 음악은 특히나 이 영화에서 이미지의 느낌을 전달하는데 중요한 매개체가 됩니다.
물론 40계단 살인 장면의 "Holiday"는 뛰어난 선곡이었습니다.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표절에 관한 시빗거리입니다.
엔딩 크레딧 후에 원곡이 있는 경우, 누구의 어느 곡이라는 타이틀도 같이 올라 오는데 중요한 두 곡이 빠졌었습니다.
하나는 박중훈과 장동건, 두 콤비 형사가 "가물치"라는 별명의 용의자를 잡기 위해 잠복 근무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하모니카 단상입니다.
이 곡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작품 중 마카로니 웨스턴의 화려한 막을 사실상 선언했었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옛날옛적 서부에서 - Once Upon A Time In Western"에 나오는 곡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묘하게, 지나치게 닮았습니다.)
또 한 곡은 박중훈이 그의 동생집에 들어갔다 나와서 눈오는 놀이터에서 실수로 용의자를 총으로 쏘아 죽인 것을 자책하며 괴로와하는 장동건에게 장난을 치며 기분을 풀어주려는 장면에서 서글프게 울리는 신디사이저 곡인데 이 곡은 존 휴스턴 감독의 영화 "불의 전차 - Chariots Of Fire"에 나오는 곡입니다.
(역시나...지나치고 교묘하게 닮았습니다.)
전자의 작곡자는 너무도 유명한 엔니오 모리코네이고 후자의 작곡자는 세계 3대 키보디스트 중 한 사람인 반젤리스 파파다니시우입니다.
두 사람 다 우리 나라에서나 세계 어디에서나 영화 음악에 관한한 최고의 찬사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가증스럽게 본 건 바로 이 두 사람의 중요한 작품 클립을 교묘하게 표절했다는 의심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너무 쉽게, 들키게 말이죠.
우리 나라에서 표절이라고 정의하는 법률상의 기준은 같은 멜로디의 두 소절 이상의 진행입니다.
그런데 표절 곡에선 딱 한 소절만 베껴져서는 그것이 반복됩니다.
그 표절된 한 소절은 곡 전체의 느낌중에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는 부분이라는 점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이 잘 만들어진 영화가 절대로 걸작의 반열에는 들어설 수 없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미지를 만들어낸 솜씨는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지만 그 이미지를 표현하는 음악은 가증스럽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절반의 성공인 셈인데 결국 따지고 보면 실패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이미지로 말하는 영화에서 그 이미지를 전달하는 음악이 실패라면 당연히 그 이미지는 실패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참! 아깝다...는 생각 뿐입니다.
물론 이런 주장, 혹은 생각은 오직 저만의 주장, 혹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