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버트 루케틱 / 각본 카렌 맥컬라 러츠, 커스틴 스미스 / 출연 리즈 위더스푼, 루크 윌슨, 셀마 블레어, 빅터 가버, (특별출연)라퀠 웰치 / 2001년 / MGM / 러닝타임 97분
이 영화 나온지도 벌써... 근 10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먼저 헐리웃의 행복한 영화들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무척 재미있게 본 사랑스런 영화였습니다.
더군다나 핑크색조의 화사하고 밝은 분위기를 계속해서 우려내는 주인공 엘 우즈(리즈 위더스푼)는 보면 볼수록 귀엽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죠.
영화에서 그려지고 있는 하버드의 분위기는 대체로 어둡고 우중충합니다.
그에 반해 우리의 주인공 엘 우즈는 얼마나 밝고 화사한지..!

(가장 인상깊고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남들은 다 시커먼 IBM노트북을 갖고 다니는데...엘만 오렌지색 애플 노트북이라니~ ^^;;
일반적으로 이 영화에 대한 시각은, 금발은, 금발머리 아가씨는 멍청하고 일종의 '된장녀'라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있는 미국사회의 차별적 선입견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데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래서 뭐?
금발에 대한 편견을 없애달라는 주문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버드 대학교 정문에 큼지막하게 써있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기 위함인지...!?
여기서 잠깐,
하버드 정문에 써있다는 위의 인용구에 대한 삼천포를 한마디만 해보죠.
물론 제가 하버드에 직접 가서 본 건 아닙니다.
실제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다만 어디선가 줏어들었을 뿐이지만 매우 의미심장한 이야기라...
옛날 옛적에, 웬 노인이 하버드 대학교를 찾았답니다.
학교 문 앞에서 직원에게 학교의 총장님을 만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으나 당시 그 직원은 노인의 허름한 행색을 보고는 속으로 무시하고 계속 노인을 기다리게만 했다는군요.
그 노인은 결국 하버드 총장을 만나지 못했고 자신의 전 재산을 학교에 기부하려는 뜻을 펼치지 못해 자신이 직접 하버드에 필적할만한 학교를 설립했는데 그 학교가 바로 오늘날의 스탠퍼드 대학교라는 이야깁니다.
미국서 살고 있는 친구를 통해 들은 얘기로는 현재 미국내에서는 소위 '아이비 리그'까지 통털어 명문 대학이라고 이름난 대학들 중, 하버드보다는 스탠퍼드를 더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과연 하버드로써는 그런 문구를 인용해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을법한 얘기죠.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아무튼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는 영화의 여러가지 평들 혹은 감상들은 뭐 여기저기 많은 정보들이 있으니 여기서는 그런 시시껄렁한 얘기들은 좀 내려두고 다른 관점에서 보고자 합니다.
뭐...거창하게 '전제비평'씩이나 저같은 사람이 정곡을 찔러 얘기하긴 어렵고 그저 남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본다는 얘깁니다.
일단 주인공 엘 우즈는 흰 피부와 금발에 푸른눈을 가진 전형적인 미국의 WASP 계급입니다.
영화 초반부,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하겠다는 딸의 말에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남자친구 때문에 그런줄도 모르고 도데체 뭐가 부족해서 그런 골치아픈델 가려느냐고 의아해 합니다.
법대란 지루하고 못생기고 심각한 사람들만 가는 데지 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립니다.
그녀의 집을 척 보면... 과연 그런말을 할만큼 번지르르한 부잣집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주인공 엘이 자기 소개서를 하버드에 보낸 내용은 문서가 아닌 비디오 테이프였고 내용 말미에 이 비디오를 감독한 사람은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이라는 말까지 당당하게 밝힙니다.
하여간 이 주인공 엘의 부모와 비슷한 말을 하던 사람들이 몇백년전에도 있었습니다.
루이 14세~16세 시절의 프랑스 사회가 딱 그랬죠.
그저 핏줄을 잘 타고났다는 이유 한가지 만으로 당시 프랑스의 귀족계급은 모든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고 평민으로서 사회에서의 성공이란 열심히 공부를 해서 법률가, 은행가, 의사, 상인 등으로 돈을 모아 자산가가 되는 길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가장 성공한 평민계급으로 성 안에서 사는 사람들, 즉 '부르주아'계급이었고 이들 부르주아 계급이 평민들을 선동해서 프랑스 대혁명이란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켰던 것이기도 합니다.
당시 귀족계급은 귀족 체면에 어찌 천박하게 의사나 법률가나 은행가를 하겠는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랬던 귀족계급은 대혁명 기간동안 모두 죽임을 당하거나 혁명세력 편에 서거나 쫄딱 망해버리고 새로이 부르주아 계급이 사회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산업혁명 이후로 몇번의 사회변혁을 더 거치는 동안 그들은 예전의 귀족계급보다 더 지독한 자본 귀족이 되어 평민층인 노동자들을 쉴새없이 착취하는 바람에 결국 칼 마르크스까지 등장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계급의 갈등을 이렇듯 화사하고 귀엽게 포장해서 약간의 뒤틀림과 계급 이동의 눈속임을 통해 은연중에 사회계층간 갈등을 흐릿하게 물타기해 보여줍니다.
오늘날 소위 선진국들 중에 귀족적 학벌로 사회의 계층 이동을 가능케 하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요?
영국과 그들의 영향을 받은 미국과 그들을 본받은 일본... 이 세나라 정도...!?
그리고 그들 나라를 뭣 빠지게 쫓아가는 우리 나라가 사교육 시장을 비대하게 키워 놓으면서까지 명문대학에 대한 환상과 그 이후의 진로에 대한 사회 계층간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상류층 사회는 별로 시덥쟎은 반응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굳이 아이비리그를 나오지 않아도 대대로 물려받은 자산가 집안은 걱정없이 큰소리 떵떵치며 살고 있고 대대로 아이비 리그를 나온 집안은 소위 사교계에서의 체면 때문에 또 자식들을 그렇게 귀족적 사고방식으로 키우고...
다 좋습니다.
그네들 나라, 그네들 사회에서야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짓을 하며 살든말든... 다 좋은데... 당장 내 나라, 내가 몸담고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마치 광기에 사로잡힌듯 그네들 귀족적 가치관에 목을 매고 어디 홀린듯 쫓아가는 이 미친 광풍을 볼때마다 더욱 눈꼴 사나워진다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2000년대를 살아가는, 저같은 서민 부모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1990년, 로빈 윌리암스가 주연했었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역시 그 영화를 무척 재밌게, 또한 당시에 감동적으로 봤었고 좋은 기억들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부분 그 영화에 대한 생각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 영화 개봉 당시 우리나라는 전교조가 막 출범하던 시기였었고 누군가가 개봉관인 피카디리 극장앞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어놨었던 걸 본 기억이 납니다.
"전교조의 진정성을 알릴만한 최고의 작품"
그러나, 지금 이 영화 '금발이 너무해'에 비춰 볼때 '죽은 시인의 사회'는 바로 하버드 전 단계의 귀족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부르주아 귀족 계급의 자식들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자식들을 상류층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얘기죠.
아마도 그 글귀를 적어넣은 사람은 그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값비싼 사립 고등학교가 어떤 덴지를, 또한 어떤 집의 자식들이 가서 공부하는 덴지를 전혀 모르고 그런 아이러니한 실수를 저질렀던 것 같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 개봉 이후 2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어떻게 변했습니까?
특목고, 자사고, 영어유치원, ....
바로 그 꼴로 브레이크없이 치달았던 결과인 것입니다.
그 영화의 키팅선생, 결국 학교에서 쫓겨나지만... 그의 가르침이란게 뭐였나요?
상류층 자제들이 다니는 비싼 사립학교 학생들이 더욱 풍부한 감성을 갖고 공부하도록, 다양한 정서함양에 열심히 노력은 기울이지만 정작 사회의 불평등 해소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즉, 20세기의 新귀족계급의 자제들이 더욱 풍부한 감성으로 좋은 학벌을 얻도록 도울뿐이란 것입니다.
금발이 너무해,
노골적으로 사회계층간의 갈등을 다루는 작품보다 이렇게 아닌듯 물타기하는 수법으로 계층간의 갈등을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로 만드는 시도가 훨씬 위험한 흉기로 비쳐지는 것은, 앞으로도 점점 더 이 계층간 갈등은 심화될 전조로 보이는 것은 제 개인의 비약 심한 망상일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영화 개봉이 이후 미국 사회는 부시 정권을 8년간이나 지지하며 소문난 국제깡패로 군림하다가 결국 신자유주의의 막장까지 보며 사회적 계층의 거리가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나라 현 대통령과 그의 지지기반 정치권.
그 극단적 신자유주의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난 삽질정권.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너무 암울합니다.
P.S.
출연자들중 주인공 엘 우즈에게 결국 프로포즈하게 된다는 에멋 리치먼드역의 루크 윌슨은 영화 '미녀삼총사'에서 카메론 디아즈를 좋아하던 그 멍청한 웨이터역할을 하던 사람인데... 이 영화에선 확 달라진 모습입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주인공 엘 우즈의 지도 교수이자 보스톤 최고의 변호사, 칼라한 교수로 호연한 빅터 가버는 영화 '타이타닉'에서 타이타닉호의 설계자 역할로 나왔던 그 아저씨군요.
마지막으로 엘 우즈가 변호하게 된 밴더마크의 후처, 그녀의 정적이기도 한 밴더마크의 전처로 나온 배우는 1960년대 최고의 글래머 스타였던 라퀠 웰치... 영화 '쇼섕크 탈출'에도 그녀의 글래머러스한 포스터가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의 감방에 큼지막하게 걸려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