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카푸치노 마시는데
시골 홀로계신 시어머님생각 났다
인터넷사진 펌하여 어머님께 보낸 그림문자

어머님, 남편가게에 커피머신 들여놨어요
한잔 뽑아 어머님께 올려요 맛나게드시구 오래오래 건강하셔요~
첫째며느리 올림
그러구나니 ...
오래전 돌아가신 울엄마 생각~ ~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 불쌍한 울엄마!!
다른 그누구아닌.. 울엄마에게 젤먼저!! 이 한잔, 바치고픈데

당신의 부드러움, 따스한 품 ~ ~
이 못난딸에게, 세상 작은물질로도 당신의 사랑, 나타내 보이시는데
이 아름다운 꽃 봄속에
정작 당신모습은 어디서든 볼수 없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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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올리는 편지 00/01/17 01:57 (하불동 참회수기란에 올렸던것)
하늘에 계신 나의 어머니 ..
정녕코 다시 보고 불러 보고 싶은 그 이름
꿈 속의 임보다 더 간절히 보고픈
울 엄마 ~
~ ~
엄마가 부인 암 말기를 선고받았던 고딩 때부터
그 후로 완치 재발의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난 후..
6년에 걸친 오랜 동안의 지병 생활로 인해 더 이상 엄마의 아픔이
특별하게 생각되어지지 않던.. 나중의 마지막 1년여 동안
더없이 불충했던 이 딸자식은
거동치 못하고 홀로 누워만 있어야 하는 엄마의 몸을, 씻겨 드린 적이 없었어요.
더욱이, 소 대변을 받아 낸 적은 ... 더더욱 한번도 없었지요.
우리의 단칸방에 오랜 동안 배어 스민 그 암모니아 냄새는
나의 불충함이 스며들어 풍기는 것이었을 텐데도
비록, 날 낳아 주신 하나 뿐인 엄마였을지라도 ..
그 혈연보다 더 강하게 작용한 .. 귀찮고 더럽다는 패역한 이기심으로..
엄마 ~
하지만 .. 요, 딸이었을지언정..
엄마의 신성한 부분을 다 보아야 하는 데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거예요.
항상 속에 눈물을 간직하며 다녔던 그 때 ..
우리의 비극적인 가정의 종말이 함축되어 있는 그 극명한 상황 앞에서
한시라도 잠시 머물렀다간.. 전 더 이상 저를 숨기지 못하고..
마지막만을 기다리며 무력하게 누워 계신 엄마 앞에서
한없이 목을 놓아 울 것만 같았어요.......
( 그러면 괴로워 고통스러운 엄마도 같이 울거 아니겠어요? )
엄마... 너무 죄송해요... ..
하늘에 계셔 굽어보고 있을 엄마 앞에서.. 이 불충했던 딸 자식이..
여전히 세상 속에서 몸 굴리며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이 더 없이, 죄송한 데...
그래서 제가 죽음에 이르도록까지 큰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일곱번에 걸친 대수술을 5년여에 걸쳐 받아야했을 적에도..
건강했던 몸을 스스로 망쳤단 사실에 대해.. 제가 믿는 하나님보다는
하늘에 계셔, 지금 이 땅에서 사죄할수 없는 엄마에게
제일로 죄스러웠던 마음이 ~ ~ ~
비록, 가진 돈이 없어 다소 불편한 생활이었을지라도
장애가진 이들도 많은 세상에.. 우리를더 없이 건강히 낳아 주셨던 부모님 ~
그거 하나면.. 더 바랄 게 없는 것이었는데...
우린 왜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냐고..
그렇지 않아도 힘겨웠던 엄마의 삶에
불평만 해 댔던 절, 용서 해 주세요 ~ ~
∞ ∞ ∞
언젠가, 학창 시절..
우연히도 제 가방을 열어 보았던 엄마
그리고, 저의 도둑질한 증거가 숨김없이 드러났던 날.. 에
엄마는 저를 때리시면서 .. 마구마구 우셨지요...
아버지로부터의 온갖 핍박에도 견디며 사셨던 이유는.. 당신의 말씀대로..
그나마 자식들에게 거는 한 가닥 기대 때문이었을 텐데
제일 큰자식이 그런 몹쓸 짓을 하고 다닌 다는 것을 알게 된 엄마의 마음은
.. 오죽 하였을까요....
그래요 엄마.
전 아주 오랫동안.. 엄마가 병을 얻어 돌아가시게 된 게
가정을 등졌었던 아버지 탓이라 생각했었는데... 아 그것만은 아니었어요,
저 역시, 예외 없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자식이라도 바르게 자라기를 기대하셨던 엄마에게
저대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그렇지 않아도 힘겨웠던 엄마의삶에
남의 것을 훔치는 짓거리로, 엄마의 생명을 감하게 한 일에
결국, 일조를 하고 만 것이었구나 ..아주 나중에야 깨달아 알게 되었던 것을..
엄마 .. 제발 이 못난딸자식, 용서해 주십시요 ~
우리는 한 가족이었으면서도.. 왜 고슴도치같이
서로에게 찔리는 가시였을까요..
∞ ∞ ∞
그리구 또 몇 년이 지나 .. 제가 취직을 하고 나서
첫 월급을 탔을 때.. 금 몇 돈 인가로
엄마 반지를 선물해 드렸던 적이 있었잖아요..
엄마는 그게 무척 마음에 흡족하셨었는지
이따금 만나는 친구 분들에게 자랑삼아 말씀하시곤 했었는데...
그러던 얼마가 지나서..
직장에서 전세자금으로 대출 받은 채무를 갚기가 너무 힘겹다는 제 불평에 ..
저는 급기야 엄마의 그 반지라도 빼서 팔아 갚아야 겠다고..
.. 해서는 안될 제의를 하고야 말았어요. 아무리 버거웠어도 그렇지..
선물해 드린 반지를 다시 빼 돈을 갚아야했다니.. !
아아,너무 너무 .........
아아아 ..
~ ~ ~
이제는.. 그럭저럭 그 보다 더 값나가는 반지를 해 드릴 수 있게 되었건만
쥐어짜면.. 남들처럼 금강산 구경이라도 시켜 드릴 수 있게 되었지만
묘자리가 있어 지정된 자리에서나마 엄마를 불러 볼 수도 없는 ..
그래서 정말, 온 땅의 기운 속에 편재해 있어 구만리 어디선가 이 불효녀를 부르며
.. 떠돌고 계실 것만 같은 .. 울 엄마의 가엾은.. 영혼아 ~
∞ ∞ ∞
( 엄마와 보냈던 마지막 해의 어버이 날 .. )
치료비가 없어, 더 이상의 병원 치료를 할 수 없었던 ....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마지막까지 집에서 계셨어야 했던 엄마..
- 죽어 가는 생명 앞에서 우리가 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던
암담한 현실 속에서.. 그저 할 일없이 묵묵히 보고만 있었어야만 했던
그 기막힌 날들 속에 - 어버이날을 며칠 앞두고.. 이웃의 어느 분인가가..
작년에 팔다 남은 거라면서 시장에 나가 한번 팔아 보라고
카네이션 가득 든 상자를 우리 남매에게 넘겨 주셨었잖아요.
( 생화가 차츰시장에 선 보였을 무렵이었는데..
그 종이로 만든 모조 꽃은 우리 어린애들 눈에도
색깔이 바랜 채, 한물 간 모습이 확연했지만..
한푼이 아쉬운 우리 형편에 그런걸 가릴 형편 아니었었지요 )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동생들과 함께 집 근처의 시장 길목에 나가
어버이 전날.. 상자에 담겨 있는 꽃들을 길 앞에 놓고, 지나는 행인들에게
꽃 사가시라고 ~ 창피해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외쳤었던 일...
근데.. 어두컴컴해 질 무렵.. 엄마가 궁금하셨던지
아픈 몸을 이끌고 저희들 곁으로 오셨었었잖아요
노상에 쭈그리고 앉아 소리치는 나와 동생들곁에
아픈 육신으로나마.. 같이 있었주었던 엄마 ..
그러나, 어버이날 전야 그 늦은 밤까지 시장바닥에서 소리친 결과는?
겨우,
두 송이 ~
~ ~ ~
그런 일이 있은..
다음해에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그렇게 맞이한 그 해의 어버이날부터.. 거리에서 보이는 카네이션은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기억을 떠올리는 꽃이 되고 말았어요..
그 후.. 매년 어버이날이 되풀이 될 때마다 또.. 울 자식들 눈을..
토끼처럼 붉어지게 하는 ... 꽃이 되었지요
토끼 눈이 정상으로 돌아 온 지는 얼마 안 되었어요..
목욕탕에서 홀로 오신 할머니의 등을 .. 엄마인 것같이 밀어 드리고..
버스 정거장에서 낯설어 하며 두리번거리는 노인 분들에 이르기까지 ..
글쎄.. 엄마가 살아 계셨어도 제게 그런 마음이 생겼을까요..
∞ ∞ ∞
그리구 ..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의 일...
말씀하시는 게 힘에 부치면서도 ..
(그제 사 돌아와 엄마의 수발을 들었던 ) 아버지에게,
겨우 20 초반인 나를, 시집 보내야 한다고,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출근하는 제 뒷모습에 대고
소리치듯 말씀하셨던 거 기억하세요?
21살의 나이에 무슨 시집이람 ~
전 그걸 그 당시 이해를 못했기에, 그렇지 않아도 온통 우울한 상황에..
엄마가 나중엔.. 별 이상한 소리까지 한다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툴툴댔던 것, 기억하세요?
~ ~ ~
그 말씀이 가장 와 닿았던 때가 ..
아주 나중에 결혼을 하고 .. 아이를 낳았을 때 .. !
아 ~ 비로소 엄마가 날 낳으신 출산의 고통을 비슷하게나마 알게 되었는데..
정작, 이 딸에게 미역국 끓여 줄 우리 엄마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철몰랐던 제가 그만,
딸을 생각했던.. 엄마의 마지막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버럭, 역정을 내고 말았다는 사실에 ..
옛날의 그 청개구리 동화 이야기가..
그렇게 어렸을 적 날울게 하더니..
결국, 훗날의 제 얘기가 되어서였을까요 ..
∞ ∞ ∞
그 청개구리는 비 올 적마다, 떠내려간 냇가의 엄마 무덤에서 울었지만
이 못난 딸은 그나마 어디에서 용서를 구해야 할지도 몰라 ..
죄송 합니다 라고 .. 정말 잘못 했습니다.. 라고 ..
그래요.. 하필, 이 사이버 세계를 의지 해, 가상 공간에다 대고
.. 당신께, 용 서 를 빕 니 다 ...
혹, 바라옵기는..
당신의 혼이 떠도는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제가 쏟아 놓은 참회의 파장이 조금이라도 수신이 된다면...
지상에 하나밖에 없는 ..
이제는 돌아 와 다시 엄마 앞에서 편히 잠들고 픈 내 딸의 기도 소리를
멀리서 들었노라고 .. 이제사 내 딸의 마음 다 알았으니 용서하노라고 ..
점점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 엄마의 웃음 띤 모습으로..
어느 날 저의 꿈속에.. 살짝 오셨다 가시면 안 될까요??
전심으로 기도하면 닿을 수 있다던데..
그게닿을 수 없는 만큼 멀리 계신 건 아니시지요??
그것이..
보이는 것을 믿는 것처럼 헛된 것이라 해도..
엄마 포근한 품속에 안긴 아가의 느낌까지를 구하여도...
촉을 바라는 어리석음이기에 안 되는 것이라고..
사람들 말은.. 상관없으시지요?
위에 계신 엄마 역시, 저하고 같을테니...
아, 너무나도 간절히 보고 픈
~ 엄 마아야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