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스쳐지나가면서 읽은 글에서 부천에 사는 어떤 분이 내가 부천에서 이사를 못 떠나는 이유중의 하나가
부천필때문이라고 썼더군요.당시 저는 부천필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설마? 하고 의심을 했었습니다.
그리곤 까맣게 그 글을 잊고 있었는데 교향악 축제가 열린 첫 날 부천필의 멘델스죤을 들으러 갔지요.
마침 어제 표를 못 쓰게 된 미야님이 다른 사람에게 선물해달라고 해서 함께 일본어를 공부하는 송승은씨를
초대하여 둘이서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FM라디오를 틀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마침 세상의 모든 음악을 하는 시간이어서요.
평소라면 그 시간에 절대로 그 프로그램을 들을 수 없는 날인데 모르지만 마음에 스며드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야기나누는 시간,음악회 가기도 전에 마음은 음악으로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길이 막힐까봐 조금 일찍 출발해서 그럴까요?
한가한 도로에서 창밖으로 개나리의 향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밖은 이렇게 봄이 만개했는데
사실은 조금 쌀쌀한 날씨라니 부조화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들어가서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유를 부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다리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제가 고려하지 못한 것인데요
그래서 주차장을 옮겨다니느라 시간을 소비해서 잘 못하면 공연시간전에 도착하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음악회에 청하는 순간,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알아보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들었지만
아마 그런 복잡한 생각까지 했더라면 청하지 못했을 것이니 만약 첫 곡을 놓치면 다음 곡부터 들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히 먹었지요.
이런 부분에서 저는 제 자신이 많이 자신에게 너그러워졌다는 것을 느끼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중입니다.

공연장에 도착하기까지 주차요원들이 보여준 친절,마음속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것도 좋았지만 설령 음악을 한 곡 놓쳤다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만으로도
배불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부천필의 지휘자가 아파서 갑자기 바뀌게 되었다는 소식을 자리에 앉자마자 듣게 된 것인데
그렇다면 다른 지휘자가 단원들과 곡을 제대로 호흡맞추어 연습할 시간이 있었을까 순간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기우라고 안심하라는듯 첫 소절이 울려나오는 순간
안심이 되더군요.
켈리님이 everymonth에 미리 예습겸 올려놓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주앙은
음악의 화음을 맞추기 어려워 오케스트라 단원을 심사할 때 자주 쓰이는 곡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음악회에서 지루하게 느낄까봐 여러 번 듣고 간 곡인데
사이버상에서 들은 곡과 현장에서 연주되는 그 곡이 도저히 같은 곡이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연주는 생기에 넘쳤고 특히 관악기들의 어울림은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첫 곡이 끝나고 멘델스죤 바이얼린 협주곡의 협연이 시작되기 직전 협연자가 나오자
반갑게 맞이하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처음 들어보는 연주자인데 벌써 이렇게 열광하는 팬들이 많은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피천득님의 외손자라고 하네요.
스테판 제키브,새롭게 주목할 바이얼리니스트를 만난 밤이었습니다.
캘리님이 나중에 올려놓은 기록을 보니 그가 갖고 있는 바이얼린이 1704년산이라고요.
오랜 세월 그렇게 자주 집에서 듣던 이 곡이 연주회에서 마음을 뒤흔드는 멜로디로 들릴 줄은
생각을 못했었길래 정말 선물로 다가온 밤이었습니다.

익숙하다는 것이 어떤 곡을 새롭게 듣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 절대 아니란 것을 몸으로 실감한 날이기도 했고요.
익숙한 것이라고 방심하고 있던 곡을 완전히 새롭게 느끼도록 연주하는 것,그것이 실력있는 연주자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란 것,그래서 앞으로는 이미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곡들도 더 신선한 마음으로
기대할 수 있겠다싶더군요.
연주가 끝나자 열광적인 박수로 응답하는 청중들,덕분에 두 곡의 앵콜곡을 더 듣고 나니
인터미션이 왜 필요한지 알겠더군요.
다음 곡 교향곡을 제대로 들으려면 마음도 한 번 쉴 필요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마지막 곡 멘델스죤의 교향곡 이탈리아의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소감이 담긴 곡이라고 하는데요 평생 다른 작곡가에 비해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작곡가라서 그럴까요?
즐거움이 묻어나는 곡과 그것을 표현하는 연주자들,그들을 하나의 화음으로 이끌어내는 독특한
지휘자의 지휘봉이 어우러져 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4악장이 거의 끝나가자 끝나는 것이 아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몰두해서 음악을 듣던 시간의
느낌이 아침이 된 지금도 떠오르네요.

교향악단이 선사한 피가로의 결혼 서곡,그것도 역시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던 밤
돌아오는 길에 음악에 대한 이야기,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듣던 라디오의 음악까지
음악회에 가기전부터 음악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까지 내내 음악이 함께 한 아름다운 금요일밤이었습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한 사람에 대해서도 조금 더 다가가서 알게 된 날,
그 시간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