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방학중에 아들의 학교는 일월 한 달 보충수업이
없습니다.그것은 달리 말하면 하루를 혼자서 조절하면서
보내야 한다는 것인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고는 하나
공부에 매진한 시간이 적은 아이로서는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요.
아침부터 가능하면 잔소리를 하지 않고 조용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만 늘 잘 통제되는 것은 아니라서
(그런 면에서 몸이 한없이 힘이 들때는 사실은 입시생인
아들의 하루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상태라 오히려
갈등이 적었던 셈인가요?) 마음이 힘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오늘 밤에도 집에 들어오니 불이 환한데 아이는 보이지 않아서
이상하다 ,그래도 혹시 하고 방문을 열어보니 벌써
피곤하고 집중이 되지 않아서 그냥 자려고 누웠다고 하네요.
이미 누운 아이를 깨워서 공부하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날,맥이 빠지면서
공연히 기분이 다운이 되는 느낌입니다.

제겐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말이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을 하는지라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하겠지만 사실은 다른 의무나
해야 할 일들에 비하면 공부하는 순간의 즐거움이나
새롭게 알게 되면서 느끼는 희열,책장 넘어가는 재미
한 단계 올라간 책을 읽으면서 외국어를 아는 묘미를
터득하던 순간들을 생각하게 되는군요) 말도 되지 않는
공상이지만 대신 할 수 있다면 오히려 좋으련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집에 들어올 때는 다른 일을 생각하고 들어왔지만
기분이 어지러워서 결국 우선 그림을 조금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싶어서 선택한 화가는 로버트 머더웰입니다.
아마 그의 그림속에서 동양적인 먹의 느낌이 번지는
그 기운을 맛보고 싶어서일까요?

요즘 이상하게 고등학교에 막 올라가게 된 남학생이나
고등학교 일학년인데 방황하고 있는 그런 남학생들과
수업으로 만나게 되는 일이 생기면서 아이들의 표정에서
너무나 낯이 익으면서도 마음아픈 그늘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만난 한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제가
말을 걸었습니다.
지금 엄마가 나를 끌고 왔어,그래서 불만이야 라는 얼굴이네
아이가 굳은 표정을 조금 풀면서 말을 하네요,어떻게
아세요?
내게도 고3 올라가는 아들이 있는데 그런 표정을 상당히
오래 보아서 잘 알거든,물론 마음까지 다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네 표정이 사나워서 엄마도 힘들겠고
너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겠다 싶다고 하니
벌써 그 아이의 엄마 목소리는 울음이 가득합니다.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서 이런 저런 도움을 주고
싶은데 아이는 관심이 없다고요.

주고 싶은 때와 받고 싶은 때가 딱 일치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는 것,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아이러니이기도 하고
그래서 사는 일이 예측불가능해서 새롭고 진기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도 예전에 비하면 그동안 단련이 되어 대응하는 태도가
많이 유연해진 셈이지만 그래도 아이에겐 아직도 모자란
엄마의 태도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미 아들을 키운 어른들이 그래도 공부 걱정할 정도면
고마운 줄 알라는 말을 가슴에 다시 한 번 새겨봅니다.
2월부터 보충수업이 시작되면 다시 새벽 6시에 일어나야
하는 일년이 시작되는 것이니 조금 늦게 일어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 지금이 고맙다고 생각하고 기운을 차려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