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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의 다섯째날-마라토너에게 경배를

| 조회수 : 1,546 | 추천수 : 129
작성일 : 2008-12-29 19:20:34


오늘 처음으로 혼자서 올레길을 걷는 날입니다,큰엉해안이 아름답다는 5코스 (처음에는 크넝해안이라고

잘 못 알아들어서 이상한 이름이네,도대체 무슨 소린가? 의아해했었는데 알고 보니 큰 엉해안이라고 소개되었네요)를 남원포구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버스에서 내리니 딱 믿고 왔던 5코스의 전구간을 표시한 인터넷에서 받아놓은 종이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순간 당황하였지만 그래도 며칠간 젊고 씩씩한 젊은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생긴 감각으로

우선 길거리에서 남원포구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손짓하는 곳으로 따라가다보니 반가운 올레 표시가 나오네요.

그냥 반갑다는 말로는 다 고마움을 표현하기 어렵겠지요?





여러 사람에게 들었던 해안의 아름다움은 그저 빈 말이 아니었습니다.

카메라의 피사체로 찍고 싶은 곳을 찍으면서 눈으로는 계속 바다를 바라보면서 걸어가다보니

이 곳은 혼자서 이렇게 찬찬히 생각도 하면서 다니기에 참 적합한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큰엉해안에 대한 설명이 붙어있는 곳에 정자가 있네요.

정자에 오르자 조금 쉬어가고 싶어집니다.

가방에 들어있는 것은 전래동화 일본어판 한 권 밖에 없어서 책을 꺼내놓고 조그맣게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마침 오늘이 원래는 일본어 수업이 있는 날이라 혼자서 공부하는 기분이 나기도 하고

오랫동안 걷느라 피곤한 발에게 휴식도 줄 겸 한동안 소리를 못듣고 글도 읽지 않았던 시간을 보충도 할겸

읽는 일이 즐겁더군요.

그리고 나서 일본어수업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문자로 보내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인사도 했지요.

문자를 보내자 마자 답장이 오는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놀랍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날이었습니다.




한없이 이어지는 해안,그런데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서 전혀 지루하지 않은 길을 걸어다녔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아니 아직도 피었나? 아니면 너무 일찍 피었나 싶은 꽃들이 많아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꽃이름을 잘 모르는 저로서는 일단 사진을 정리하고 나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이름을 알아보고 싶어지네요.

같은 나라안에 있어도 이 곳은 참 다르구나 싶은 것이 길거리에 늘어선 식물들에서 먼저 받은 인상이었고

상당한 규모의 귤재배농원들이 계속 보여서 제주도민들의 수입규모는 상당한 수준이 아닐까 혼자

짐작을 하기도 해보았습니다.



15km 걷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가벼운 거리일지 모르나 제겐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는 길이네요.

갑자기 마라토너들은 어떻게 42.195km를 뛸 수 있는 것일까,프로라면 모르지만 아마츄어 마라토너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로구나,경배의 대상이로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걸으면서

어제 밤 세화의 집에 들어와서 보니 새끼발가락 바로 옆의 발톱이 중간에서 상당히 금이 가 있었습니다.

어찌하나 걱정을 하니 현주씨가 아침에 덧버선을 하나 더 신고 나가보라고 알려주었지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덧신을 하나 더 신고 나갔더니 정말 발이 많이 편해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일상생활의 지혜가 많이 모자라는 제게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많이 도움이 되네요.

발가락은 편해졌지만 그래도 발바닥은 점점 아파옵니다.

포기하고 길거리로 나가서 버스를 타고 서귀포 시내에 나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한 커플이 지나가면서

아침에 본 분이군요.올레꾼이세요? 이렇게 말을 겁니다.

그러자 공연히 여기서 포기하고 말면 곤란할 것 같은 마음이 불끈 들어서 저도 함께 인사하고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긴 길을 걷는데 아무리 해도 공중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어찌하나 고민하다가 마침 길가의 집에서

김장을 하고 있는 여자분을 보았습니다.급하면 용감해지는 법,공손히 물었지요.

길거리를 걷고 있는 중인데 잠시 화장실을 써도 될까요?

남원포구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중이라고 하니 그 분이 놀라면서 들어오라고 하네요.

덕분에 낯모르는 사람집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새로운 경험도 한 날,여행이란 이렇게 저렇게

자기도 모르게 예상밖의 일을 하면서 지낼 수 있는 귀한 시간,재미있는 시간이란 것을 느낀 날이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쇠소깍이란 마지막 목적지에 닿았을 때는 발바닥을 움직이는 것이 곤란한 지경이어서

결국 피로를 풀기 위해 초콜렛을 하나 사먹고 아들이 부탁한 제주도산 초콜렛도 구하고 나서

조금만 쉬어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아주머니가 어디서부터 걸어오길래 그렇게 지쳐있는가 물어보네요.

남원포구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더군요.

사실 저도 올레길에 대해서 몰랐더라면 이렇게 무모하게? 보이는 일을 벌이지는 않았겠지요?

절뚝이면서 걸어오다가 이것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의 제 삶에 어떤 힘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집밖으로 나가는 일에 어려움을 덜 느끼게 되겠지 싶긴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면 어찌 될 지 장담할 순 없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씩이라도 조금씩 걸어보겠노라고.



쇠소깍에서 나와서 민박집의 일행들과 표선리에서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들어오기로 해서

버스정류장을 찾아가는 길,얼마나 그 길이 멀게 느껴지는지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그런데 일단 버스를 타고 밖을 내다보니 그렇게 멀게 느껴지던 길이 순식간에 휙휙 지나가는 허망함이란.

그래도 차창밖으로 내다보던 곳을 내가 걸어서 왔던 길이구나 하는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역시 걸은 보람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냥 버스로 휙휙 다녔더라면 풍경에 대한 애틋한 정을 그렇게 깊게 느끼지는 못했었겠지요?

버스에서 내려 저녁을 먹으면서 들어보니 새로 온 두 멤버중 한 사람이 어느 날 42km를 걸은 적이 있다고 하네요.

그저 입이 딱 벌어져서 마라토너에게 경배를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경배를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 그림은 영국 화가 터너의 작품인데요,오늘 코스중에 공사하고 있는 곳을 지날때의 일이 생각나네요.

걷기 어려운 길에 간단하게 걸쳐져 놓인 나무판 하나 그것이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걷다가 어디로 갈까 망서릴때마다 나타난 올레의 길잡이 리본이나 길거리에 표시된 표지판이

바로 그런 다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에겐 길잡이 역할이지만 그것을 표시하기 위해 그 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어떤 길을 만들어나갈까

고민하고 실천했을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네요.큰 소리로

어디로 갈지 몰라서 망서리다가 차를 고치고 있는 청년들에게 쇠소깍으로 가려면 어찌 해야 하나

물어보니 그 둘이 서로 의견이 갈리더군요.

이 길로 가면 길이 없다고 하는 한 청년,그러자 다른 한 청년이 말을 합니다.아니야 길이 생겼데

길이 생기다니?

길이 생긴 것이 아니라 갈 수 있게 길표시를 했다는데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장면을 보면서 제주도 사람들에게도 아직 올레에 대한 인식이 더 퍼져야 하겠는 걸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민박집으로 돌아와서 다섯째날의 기록을 다 마치고 나도 아직 일곱시,처음 올레길을 걷고 와서는

일곱시면 저절로 잠이 들던 것에 비하면 그 사이 체력이 많이 좋아져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정도의

체력이 된 모양입니다,놀랍네요,사람의 적응력이

이제 가야 할 날이 다가오니 이제야 올레길의 참 맛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으니

그것이 아쉽지만 아무래도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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