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조금은 어중간한 시간에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전 날 식구들과 늦은 시간까지 놀게 되어서 아무래도 첫 비행기는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제주공항에 도착한 것이 거의 두 시 가까운 시간,공항구내식당에서 맛있는 해물된장찌개로 점심을 먹고나니
이번 여행에서 먹거리 걱정은 필요없겠구나 하는 행복한 생각이 들었고
미리 연락해둔 택시가 도착해서 세화의 집까지 오는 도중
바뀌는 풍경에 눈길을 두느라 연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네요.아,바람이 불고 있구나,그것도 센 바람이
낯선 곳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나네요.
드디어 세화의 집에 짐을 풀고 간단히 인사를 마친 다음
오늘 남은 시간 어디를 가는 것이 좋은가 상의했더니 안주인께서 김영갑갤러리에 가보는 것이 어떤가
권해주었습니다.
김영갑,이런 낯선 이름을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납니다.
언젠가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나다가 이상하게 눈길이 가서 사진전이란 곳을 처음 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 근방 미술관을 주로 무료로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 미술관 나들이를 하던 시절
사진전이 입장료가 7000원이어서 망서렸지요.
당시에는 사진전이라곤 가본 적이 없어서,그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진작가의 전시라
조금 비싼 것은 아닌가 ,들어가서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앞섰고요.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직 사진에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
혼자서 망서리다가 그래도 혹시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사진에 관심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들어선 전시장,
그 때의 놀라움은 지금도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를 찍은 사진들,갑자기 제 안의 감성이 눈을 깨는 것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도 발길을 재촉해서 나가게 되지 않는 묘한 감동을 받고
밖으로 나가다보니 그 섬에 내가 있었네란 책을 판매하고 있더군요.

사들고 와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책속의 사진을 여러 번 본 다음 책을 가능하면 여러 사람들과 돌려서 보았습니다.
그 사진작가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영갑갤러리에 관한 것을 알게 되어 사이버상에서 들어가 사진을 보기도 하고
언젠가 그 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기도 했지만
일년에 딱 한 번 연말에 여행이 가능한 제겐 우선순위에 밀려 늘 마음만 제주도에 있었습니다.
그 사이 사진작가가 루게릭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제주도에 다녀온 사람들의 입으로 김영갑갤러리에 관한 마음 따뜻한 소식도 연달아 듣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제주도에 가면 꼭 가보라는 말도 듣고요.
세화의 집 바깥 주인께서 차로 원래는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시기로 했는데
선물처럼 그 곳 갤러리 앞까지 계속 가셨습니다.
갤러리,자주 보던 풍광을 실물로 처음 대하던 날,바람이 어찌나 불어대는지 신기했습니다.
시간이 넉넉하지 못해서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그 다음 넉넉하게 주변을 둘러보아야지 싶었지요.
안에 들어서니 잔잔하고 못 들어보던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가니 일종의 아트 숍처럼 꾸며진 공간에 볼 거리가 많아서 본전시를 보기 이전에
이것 저것 눈길을 주게 됩니다.
제가 구해서 보았던 책말고도 작품집이 잘 꾸려서 책으로 만들어졌고
카드로 꾸며진 작품집,포스터로 만들어진 것,3단포스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달력도 만들어져 있고요.
제주올레에서 처음 알게 된 이름 손세실리아 그녀의 시집도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힐링가든이라고 제가 제주도에 간다고 하자 청재설헌을 소개해준 분 덕분에 블로그에 들어가서
알게 된 분의 책이 있네요.
미국에 마샤 튜더가 있듯이 제주도에는 김주덕씨가 있었구나,이 곳에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첫 공간에서 매력을 느끼게 되어 서성거리는 이상한 경험을 한 날
2009년 일년을 이 풍광과 더불어 지내고 싶어서 칼렌더를 구했습니다.
드디어 안에 들어가니 사진작가가 이어도라고 칭하던 풍광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눈길을 확 끌어당기는
사진앞에서 한동안 눈길을 뗄 수가 없는 사진 한 장을 만났습니다.
다른 사진을 보다가 다시 그 곳에 돌아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 사진이었지요.
서울에서 본 사진들도 있었지만 새로운 사진들도 많아서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사진과 인사를 나누고
한 방에 꾸려진 사진작가의 모습들도 만났습니다.
충만한 시간,잊기 어려운 시간,그렇게 둘러보고 나서 방명록에 글을 남기는 희안한 일도 하고
밖으로 나오니 바람은 심하지만
아직도 피어있는 꽃들이 신기해서 구경을 합니다.지난 겨울 스페인에서 사진을 찍은 이후에 처음으로
카메라를 꺼내서 이 곳 저 곳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곳곳에 놓여있는 작은 조각도,돌모양을 유지하면서 형상을 만든 여러가지 형태도 좋았습니다.
돌아가기 전에 한 번은 더 오고 싶은 곳이었지요.
나가는 길에 젊은 부부가 아이를 안고 나서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표선리 수협앞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어디로 가는가 물었더니 마침 본인들도 그 곳으로 가는 길이라고
차에 함께 타라고 선선히 권하네요,
덕분에 차로 이동하는 중에 이야기를 하다보니 젊은 남자분이 바로 김영갑갤러리의 직원이라더군요.
이왈종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는가 물어보니 잘 모르는 화가인 모양이더군요.
제주 사람이 이왈종을 모르는구나 더구나 갤러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의아한 생각이 들다가
그럴 수도 있지 싶어서 아쉽지만 다른 곳에 물어야지 하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내서 문의를 하더군요.
그런 작은 친절이 놀랍습니다,어째 제주에서의 일주일이 풍성한 시간이 될 것 같은 좋은 예감입니다.
시립미술관에 가면 작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한 기분이었지요.

자가용을 얻어탄 덕분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표선리 수협앞,저녁을 먹기엔 너무 이르고
그렇다고 들어가기 적당한 카페도 없고 고민하던 중 만난 반가운 얼굴,아까 데려다주신 그 아저씨가
그 자리에 있으면서 아는 척을 하는 겁니다,아니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와계신 것인가 했더니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태우려고 그대로 계셨다고 하네요.
저녁 간단히 먹고 일행과 들어오면서 보는 저녁하늘이 굉장합니다.
하늘이 내려앉는 느낌,하늘에 구름이 만들어내는 광경이 그림이 따로 없구나 싶었습니다.


집에 들어오니 겨우 여섯시가 넘은 시간,평소라면 이 시간이 수업할 시간인데
마루에 들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졸음이 몰려옵니다.
겨우 일곱시에 잠드는 희안한 경험을 한 날,아홉시가 넘은 시간에 눈이 떠졌습니다.
마루에 나와보니 다 잠들어 있네요.
그런데 유감스럽게 컴퓨터가 다운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이 환한 불빛에 잠이 깰까봐 따뜻한 부엌에 들어가서 들고온 김탁환의 소설 혜초를 읽었습니다.
이상하게 오래전에 산 소설인데 잘 읽히지 않아서 제주도에 가면 읽어야지 하고 미루어두었던 소설인데요
마치 마술처럼 새롭게 읽히는 것이 신기하네요.
그래서 소설속으로 몰입해 들어가서 오래 전 혜초스님이 오천축국에 가서 겪었던 경험속으로 들어간 밤
밖에서 덜컹거리는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읽는 소설속의 주인공중 한 명의 이름이 오름이라니
이것도 무슨 이상한 인연인고 하는 신기한 생각이 드네요.

새벽에 늘 듣던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평소라면 아들을 깨워야 하는 새벽 6시,개운한 몸으로 일어났습니다.
이제 인터넷이 다시 된다는 소리에 마루로 나와서 글을 쓰고 있는 중
안주인의 놀라운 노래솜씨로 오래 전 들었던 추억의 노래들이 귀에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제주도에서의 첫 날이 즐겁게 끝나고 다시 새로운 날이 시작되려고 하는 중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