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대학입학이 확정된 (그것도 한예종 미술이론과를
별 준비도 없이 철썩 붙은) 아이덕분에 월요일,화요일
같은 사람과 다른 멤버로 밥을 먹었습니다.
오늘은 셋이서 오래 앉아서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그렇게 오래 지난지도 모르고 한자리에
앉아있었는데요,서로 오래 알아와서 그런지 조금 더
깊숙한 이야기가 가능한 자리였습니다.
일하는 여자로 사는 것,전업주부로 사는 것,파트 타임으로
일하면서 주부로 사는 것,이런 여러가지 형태의 삶에
대해서,수명이 길어진 시대에 후반부 인생을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커가는 딸들의 인생에서
부모가 어떤 태도로 그 아이들의 삶을 지켜보고 개입하고
어디까지 물러서 있어야 하는가 그런 문제들을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자리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everymonth에 들어가보니
마침 캘리님이 올려놓은 프란츠 마르크,마케,칸딘스키
그리고 들로네의 그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마침 올라온 마케의 그림이 제가 그림의 목소리에서 만난
바로 그 그림이라 더 좋았던 시간,간단한 리플을 달면서
밤에 들어오면 마케의 그림을 더 보아야지 싶었지요.

오늘은 밤에 새롭게 함께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 한 아이는 어학원의 숨가쁜 레벨업에 치여서
손톱을 물어뜯는 현상을 보여서 결국 엄마가 이러다가는
아이에게 정신적으로 치명적인 고통을 줄 것같아서
어학원을 그만두고 조금 다른 방식으로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소개받아서 왔다고 인사를 하더군요.
이야기하던중 엄마의 눈에 맺히는 눈물을 보면서
아들문제로 고민하다가 울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다양한 책을 늘어놓고 설명을 하면서 무엇부터 읽어보고
싶은가 물으니 남학생인 그 아이가 모짜르트에 관한 책을
먼저 골랐습니다.
피아노 치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는 아이에게 선생님도
피아노를 배우는 중인데 어렵지만 재미있다고
앞으로 음반을 빌려줄수 있으니 좋아하는 작곡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오라고 권했습니다.
처음에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던 아이가 피아노 이야기에
얼굴의 표정이 부드러워지는 시간,참 신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돌아가고 나서 이번 외고입시에서 실패한
두 아이를 데리고 온 학부형과 아이를 만났지요.
두 아이는 아무런 표정이 없이 앉아있길래
어머니들을 밖으로 나가도록 부탁한 다음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그 아이들이 원하는 공부는
탭스 시험을 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원한다는 것이어서
왜 그 시험을 보고 싶은가,그러기 위해서 이제까지
무슨 공부를 해왔는가,시험을 본 적은 있는가
그 공부를 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무엇이 필요한 지
이야기를 다 한 뒤 어머니들과 대화를 시작했는데
이과를 지망하는 두 아이에게 왜 탭스가 필요한가
물었더니 수시의 비교과에 쓸 한 줄의 이력때문에
최소한 700점,잘하면 750점의 성적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급하게 문제풀이식의 수업을 원하면 곤란하고
일년,이년 정도 느긋하게 천천히 독해의 기초부터 다지면서
공부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가 번져서 한참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오늘은 상담을 하는
일이 수월하고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가끔은 과연 이 사람은 아이를 로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마음이 콱 막히는 사람을 만나서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거든요.

언어를 전쟁에 나서는 것처럼이 아니라
정말 즐겁게 배우고 익혀서 평생 쓸 수 있는 도구로
삼는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날,집에 와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더불어
마케를 보고 있으려니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리는 느낌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