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많은 자료를 준비해 오신 동호회 회원님덕에
유익하고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글과 사진은 동호회 회원님이 올리신 것을 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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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기행 글은 제목이 “홀로걷는.......”이 아니고
“둘이걷는 서울 도성(都城) 탐사기행”으로 바꾸었습니다. ㅎㅎ
동행인이 한분 생겼기 때문 이지요....
지하철 6호선 “버티고개역“에서 만나
도성(都城) 을 향하여 접근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고개가 바로 “버티고개”로
“남소문터”라고 알고 있기에 찾아 가려는 것입니다.

“버티고개”는 한남동 쪽에서 장충동 국립극장(해오름극장)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입니다.
양쪽의 절토된 것을 감안하면...당시에는 꽤 높은 고갯길이라 생각 됩니다.
이 길은 최초 성곽을 쌓을 때는 없었었는데 ...
그후 “한강진”으로 들어오는 물량이 많아짐에 따라
세조 3년(1957년)에 한강진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지름길인
이곳을 택하여 고갯길을 만들고 도성문을 내었답니다.
당시 통행이 잦지 않고 한적한 고갯길 이었나 봅니다.
그런 탓으로 도적들이 자주 나타나서 약탈과 살인등
불미스런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여 순라를 돌았다고 합니다.
순라를 돌때 번도! 번도! 라고 외치며 도적들을 쫓고는 하였는데....
그 번도! 라는 말이 - 번치-번티-버티가 되어
지금 “버티고개”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곳을 찾아 갔더니 “남소문터”라는 표지석이 있었습니다.
다소 높은곳의 나무 밑이라 찾기는 쉽지 않지요...

이 고갯마루에는 물맛이 좋은 약수터가 있었는바
오고가는 사람은 물론 아랫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즐겨 마셨기에
“약수동”이란 동네 이름을 남긴 채 지금은 없답니다.
남소문을 건설 할 당시 이곳의 치안문제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던중
때 맞추어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懿敬世子)가 죽었는바..
이는 동남쪽에 성문을 내어 상서롭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라는
음양가(陰陽家)의 잇단 상소를 받아들여
예종 원년에 성문 이름도 옳게 얻지 못하고 철거해 버리고 말았답니다.
길을 따라 걷다가 자유연맹 안으로 들어가 뒷산으로 올라 갑니다.
멀리 신라호텔이 보이고 약 1.6km의 성곽이 보입니다.

중간에 암문이 하나 있는데...
이곳 주변의 성곽을 둘러 보면....
몇 번에 걸쳐 보수를 한 흔적이 역역합니다.
600년 역사를 한눈에 보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인지 시대별 성곽의 축성기법이 잘 설명되어진 안내 간판이 있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 “금호로”의 큰길을 만나며 성곽의 모습은 끝납니다.
신라호텔 쪽으로 뒤돌아본 성곽의 단면 모습입니다.

“금호로”를 건너 맞은편 신당동 성당 길로 접어 듭니다.
물론 이 길에는 성곽의 흔적은 없으나
“광희문”방향으로의 성곽이 이어졌던 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