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전 수업을 조금 일찍 끝내고
카이스트에 붙은 권희자씨의 아들덕분에 우리들은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재작년에는 보람이의 ,작년에는 준범이의
그리고 올해는 동화의 대학입학으로 즐거운 점심이
이어지고 있는데 내년에 다시 승태가 제대로 시험을 치루어서
점심먹으러 갑시다 하고 한 턱을 자주 낼 수 있을까?
돌아오는 길에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중학교 이후로 몸은 크고 있으나 정신이 몸에 비해서
그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것 같은 아들을 지켜보느라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습니다.
아직도 좌충우돌상태이지만 어제 밤 아주 밝은 목소리로
모의고사 성적을 알려주려고 전화를 했더군요.
이제까지 본 시험중에서 국영수 성적이 가장 안정적인
점수여서 제 어깨가 갑자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보람이가 입시날 치룬 국영수성적이 생애에서 가장
잘 본 시험이었는데 혹시나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지요.
집에 와서 피아노 연습을 한 다음
새로 강의듣게 된 근대철학에서 근대성에 관한 이정우교수의
강의 하나를 듣고 낮잠과 그림보기중에서 고민하다가
런던미술수업에서 발견한 화가 김영배님의 그림을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사진인줄 착각했었는데요 알고보니
유화작업이라고 하더군요.독일에서 거주하면서 조용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화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우연히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화가를 소개받거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혹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제겐 런던미술수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이제는 기억을 믿을 수 없어서 책을 읽는 시간에 옆에
메모장을 놓고 메모했다가 시간이 있으면 찾아보곤 합니다.

그림을 보려고 앉으면서 전축에 올려놓은 음반이 바흐인데요
이 화가의 그림은 바흐의 곡과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언젠가 읽은 글에서 이 세상에 문제가 생겨서 모든 악보가
다 사라진다해도 바흐의 평균율만 남아있다면 다시
음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구절을 만났습니다.
그 때 평균율이란 무슨 음악이길래 저자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글을 쓸 수 있나 하고 궁금해했더랬지요.

어린 시절 우연히 듣게 된 클래식,제겐 베토벤이 클래식과의
처음 만남이었는데 브람스나 바흐는 참 어렵고 지루하다고
느꼈습니다.상당히 오랫동안
그러다가 카잘스의 책을 읽으면서 바흐가 누구길래
이 첼리스트는 매일 바흐연주,그것도 피아노 연주로
하루를 여는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친해지려고 무척 노력을 하던 중 나도
모르게 이제는 바흐를 듣는 일에서 매력을 느끼고 있지요.
올해는 이상하게 브람스와 자주 만나게 되었고
브람스의 매력을 막 발견하게 된 해입니다.
그러니 절대로라거나 이것만이 이런 식의 규정은 참 위험한
것이겠지요?

근대가 중세와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는
당위의 세계관을 버리게 되었다는 것,그 말을 들으면서
어렸을 때 우리는 민족중흥의 사명을 띄고 태어났다는 말에
대해서 느꼈던 반감이 생각나네요.
도덕적인 것이 무엇인가 요즘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서로 달라서 그런 다름과 다름이 만나서 부딪히고
닮으려고 하거나,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취하고 나머지는
나를 유지하려고 하거나,아니면 부서지는 아픔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나를 지켜보거나 그런 속에서
우리의 인생은 커가는 것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