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수업에 오랫만에 참석한 박혜정씨로부터
빌린 음반인데요,처음 듣는 소프라노 inessa galante의
노래 14곡에 마지막으로는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를
오르간반주로 넣은 음반입니다.
낮 시간에는 음반을 들어볼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밤에 하루 일과가 다 끝난 다음에 듣기 시작했지요.
살짝 서너곡 맛만 보고 할 일을 한 다음 여유있을 때
더 들어야지 생각했지만 노래에 끌려서
다른 일을 뒤로 미루게 되네요.
분초를 다투는 일이 아니니 느긋하게 즐기자 싶어서
마음을 풀어놓고 음악을 즐기는 시간,역시 이런 시간엔
그림을 찾아보게 되겠지요?
오늘 저녁에 한예종 시험을 일주일 앞둔 여학생이
그림에 관한 책을 읽고 요약하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아이가 여러가지 사조를 정리한 글에 대한 코멘트를
한 다음,내일까지 무엇을 읽고 어떻게 정리할까 서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다음,시험에 합격해서 그 학교에
다니게 될 경우 선생님에게 다양한 정보를 달라고
그래서 새로운 시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니
그 아이 말이 걸작이더군요.
그러지 말고 선생님도 시험쳐서 다니시면 좋을텐데
그러게 그러면 좋은데 문제는 언제 시간을 내서 다닐까?
그것이 문제로군요.
그래서 시간을 못내니 사람들끼리 모여서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그림을 보러 다니기도 한단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 말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 그아이의 목소리가 제 안에서 맴돌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일어회화 시간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
3가지를 말해보라는 (회화주제를 정하는 책에서 한 장씩
복사해서 준비해서 말하는 시간이 있거든요) 과제가 있어서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던 중 제 차례가 왔을 때
우선 이야기하게 된 것이 새벽에 마루에 누워서
음악을 한 곡 걸어놓고 듣다가 서서히 몸이 깨는 시간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일본어로 이렇게 줄줄 자세하게 말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니 대강 의사소통이 되는 수준으로 말을
한 것이지만 그래도 말을 하면서 음악이 제 삶에 주는
의미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한 시간이었지요.
여러 가지 소중한 시간중에서 역시 미술관에서 그림을
직접 보는 순간의 즐거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 시간의 대화와 저녁시간 여학생과의 대화가 겹치면서
이상하게 큰 울림을 경험한 밤이었습니다.
물론 책을 읽는 순간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지요.
내일 철학시간에 제가 번역을 맡은 철학자가 홉스입니다.
사실 그는 철학자라기보다는 정치학에서 더 인용이 많이
되는 사람이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그에 대해서
공부를 한 느낌입니다.
감기로 그리고 마음속의 뭔가 풀리지 않는 문제로 고민이
많았을 때는 그냥 책만 번역해서 수업에 참가하려고 했지만
토요일부터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갑자기 공부할
의욕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주니어 클래식의 홉스 리바이어던을 주문해서
오늘 받았습니다.
왜 그 사람을 철학책에서 다루었는지,그의 철학이 어디에
맥을 대고 있는지,그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지
왜 그가 오해되고 있는지 이런 저런 글을 읽다보니
무작정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바로 자연상태인데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절대권력을 주권자에게 주는
사회를 계약에 의해서 만들라고 권한 철학자라는 단편적인
지식으로만 알던 홉스가 참 새롭게 다가오네요.
거의 십일간을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 당황스럽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일상의 소중함,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이
마음속에서 샘솟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낀 날들이었습니다.
한없이 잠자던 시간들,뒹글거리던 시간이 약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서일까요?
이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생기가 돌아온 것을 자축하는 의미로 고른 마티스의 그림들
그림과 어울린 노래들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