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마지막 시험인 보람이가 오늘도 아침에 일찍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하네요.그래서 아침밥먹는
것 지켜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방에 들어가
그 아이의 침대에 누워서 나갈 준비하는 것 지켜보면서
이야기도 하다가 잠이 깨어버렸습니다.
아직 아홉시가 덜 된 시간이어서 피아노치기엔 곤란해서
인터넷을 켜고 들어오니 카루소님이 올려놓으신
쇼팽의 녹턴이 저를 반깁니다.
음악을 듣느라 누워있다가 갑자기 휘슬러의 녹턴이
보고 싶어집니다.

음악과 그림이 어울려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침
그 속으로 보람이의 목소리가 떠오르네요.
엄마,나는 프랑스나 핀란드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으면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아니 이건 무슨 소린가 싶어서 물어보니
지금의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겁니다.
네 어린 시절도 그렇게 불쌍하다고 불행하다고 느꼈니?
그건 아닌데 지금은 갈수록 어린 나이에 아이들을
공부,공부로 몰아대는 상황이라고 대답하네요.
그렇다면 너는 그렇게 키우지 않으면 되지 않니?
그건 어렵다고 생각한다고,그러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되느냐고
오히려 제게 물어보네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를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여대생들이 느낄 법한 불안이 제게도 전달이
되었습니다.

아침신문에서 대조되는 기사 둘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영화에서 보고 모방범죄를 저지른 묻지마 살인
다른 하나는 시각장애를 딛고 귀로 공부해서 사법고시에
붙은 사람의 이야기였지요.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가
보람이가 제게 말을 겁니다.
엄마,나도 고시공부하다가 저렇게 피폐해지면 어떻하지?
글쎄,너는 고시공부를 그렇게 피폐해질 정도로 할 사람이
절대 아니니 안심하고,혹시 그런 이상한 징조가 보이면
사는 것이 먼저니까 엄마가 그만두게 할테니까 안심하라고
(아직 위밍업단계로 시작할까 말까 준비중인 아이에겐
너무 이른 고민인데도) 이상한 대화를 한 아침이기도 하네요.


사법고시에 붙은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것,그가 시력이 나빠졌을 때
느꼈을 절망,소리로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했어도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까,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언제가 단편드라마로 본 일본드라마 손끝으로 빚은 사랑이
생각나는군요.
저는 제목만 보고는 당연히 도예가의 삶과 사랑을 다룬
작품일 것이라고 추측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실화에 기초한 그 이야기는 전맹이라고 해서
소리도 들리지 않고 눈도 보이지 않게 된 한 남자를
손가락 점자로 돕다가 (손가락 점자는 당사자의 손가락에
점자를 통해 통역을 하는 자원봉사였습니다.) 결혼하게 된
부부의 이야기였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논문이 인정되어
도쿄 대학의 부교수가 된 그 남자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유머가 풍부하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저렇게
유머러스한 말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이란
얼마나 놀라운가 감동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드라마가 끝나고 실제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실제로 강연중에 보여준 그 두 사람의 모습도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생노병사의 한 과정을 겪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녹턴을 듣고 녹턴을 보려고 들어온
시간,이상하게 생각이 더 깊은 곳으로 자꾸 흘러가는
조금은 무거운 아침이 되어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