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에서 카톨릭신자들이
많은 나라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스페인의 경우 카톨릭이
아직도 국교라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세고비아에 가는 길에 들른 두 곳,그 중에서 한 곳은
프라도 누에보,누에보는 어쩐지 new랑 닮아보인다고 생각했더니
역시 그렇다고 하고요,프라도라니 박물관 프라도하고
같은 말이네 하고 생각하는데 프라도는 벌판이라고 하네요.
그러니 새로운 벌판이란 소리인데 이 곳이 성모님의 발현지라고
지점장님이 설명을 합니다.그는 카톨릭 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아이가 심한 아토피라서 고생을 했는데
루르드에서 가져온 물을 마시고 아토피가 낳았다고
기적의 샘물에 대한 이야기를 심각하게 하더군요.
제겐 아직도 낯선 세계이지만 장미 향을 통해서 이 곳에서도
성모님의 자취를 느꼈다고 하는 이야기속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믿는 자에게 복이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그것이 자신에게 체화되지 않은 사람에겐 역시
미스테리의 세계로구나,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을 복된 자라고
해야 하나,갑자기 여행하러 왔다가 더 큰 문제에 부닥친
느낌이었습니다.
함께 간 캐롤님이 은근히 권하더군요.
아마 교리 받았던 이야기를 해서일까요?
아무에게나 권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슬쩍 권하는
마음이 고맙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가능하면 촬영은 하지 말라는 주의를 듣고서 주춤하고 있었더니
성모발현의 현장이 그렇고 다른 곳은 허용이 된다고 하네요.
새로운 벌판이란 이름에 걸맞게 상당히 넓은 곳에
기이하게 생긴 나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크리스마스,그래도 이 장소는 상당히 한가한 느낌이었습니다.
두 수녀님이 나란히 앉아서 정담을 나누고 있고
다른 한 명의 여자분이 와서 기도를 하고 있더군요.
그녀의 간절한 표정속에서 무엇을 빌고 있는 것일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저도 아직도 마음을 못 잡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아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에 덧붙여 제 마음속의 불안함을
내려놓고 살 수 있는 지혜가 생기길 기도하기도 했지요.
아빌라로 가는 길에 살라망카라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어라,살라망카라? 그 곳은 스페인에 대학이 들어선 곳이라서
기억하고 있는 장소라서 물어보았습니다.여기서 먼가요?
물론 나라가 크다보니 바로 옆에 있을 듯한 고장이라도
상당히 가야 한다고 하네요.
그러니 그냥 마음속으로만 그려보게 됩니다.
살라망카 대학에서 위원회가 열려서 콜럼버스의 계획이
과연 가능한가 토론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살라망카란 표지판을 본 덕분에 옆자리에서 운전하는 지점장님이랑
갑자기 대화가 활발해졌습니다.
역사적 지식을 잘 아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 참
즐겁다는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특이한 건축물이 눈에 보여서
대화를 중단할 지경이었습니다,앗 이게 뭐지?

무어인의 성곽이라고 하네요.
전혀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을
보고 있으니 스페인이 왜 다른 유럽과는 다르다고 이야기된는가
실감이 납니다.

오랫만에 잡아보는 카메라라서 그런지 넓게 퍼진 공간에 대해선
어떻게 앵글을 맞추어야 할지 난감합니다.
그러니 집에 와서 정리하던 도중의 사진을 보고 실망이
여간 아닙니다.그래도 사진찍으러 간 것이 아니니
다시 바라보면서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고 있는 중이지요.

이 곳이 바로 아빌라,성녀 테레사가 태어난 곳에
세워진 성당이 있는 곳입니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가 청빈으로 알려졌다면 아빌라의
테레사는 기도의 사람으로 알려졌다고 하네요.
가끔 종교서적을 읽다가 만난 이름이긴 해도 제겐
개인적으로 찾아보고 싶다고 할 만큼의 관심있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태어나서 살았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1515년생이라면 스페인의 한창 세계로 뻗어나가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더군요.
아버지가 귀족이었다고 하니 어려서부터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겠지요? 물질적으로는
그런데 일곱살 어린 나이에 순교자들에 대한 글을 읽고
갑자기 무어인의 나라를 찾아서 떠나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니
뭔가 다른 어린아이였었구나,그런데 그런 마음을 먹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 이제 주변에 무어인이 사는 것도 아닌데
마을을 보니 그들의 흔적은 건물에 새겨져있고
주변사람들로부터 그들에 대해서 들었던 것일까?
갑자기 저 혼자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혼자
웃기도 했습니다.
성당은 닫혀있어서 그 앞에서 설명을 듣다가
눈에 띄는 십자가 모양이 있어서 한 장 찍어보았습니다.
이 곳을 저같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카톨릭 신자가 왔더라면 많이 다른 느낌으로 바라보고
느끼고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건물 벽에 걸린 문장과 글씨가 인상적이어서 찍어보았습니다.
스페인 곳곳에서 만나는 이 문양은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도의
결합을 상징하는 문양이겠지요?
가기 전 약 2개월동안 스페인어를 발음하는 법을 배웠지만
사실은 그 곳에 있었던 일주일간이 더 효과적으로
언어에 눈 뜬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 현장에서 살면서 익히는 언어란 얼마나 힘이 센가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피카소 미술관에 갔을 때쯤에는 제목을 보면
어느 정도 해석이 되는 경지?에 올라 신기하더군요.
자꾸 물어보는 바람에 아마 퍽 귀찮았을 우리의 가이드님
그런데도 전혀 내색을 않고 대답을 해주더군요.
그러더니 제가 미리 스페인어를 공부한 줄 몰랐던 탓에
퍽이나 언어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오해를 하더라고요.
물론 이실직고를 했지만,그래도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마다 언어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제겐
글씨를 통해서 언어를 익히는 방식이 맞는구나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성당앞을 나와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 마을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일행입니다.


위 사진은 당시에도 있던 무어인의 건축이 살아있는
마을을 잡은 것이고 왼쪽 끝에 작게 보이는 건축물이 바로
아래 사진에 찍힌 마치 그리스 신전같은 곳인데요
이 곳이 이 지역에 오는 천주교의 주교등 성녀를 만나러오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종의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고 하네요.
이 곳을 떠나기 전에 갑자기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라망카를 보지 못한 아쉬움,거기에서 조금 더 나가서
현지에서 우리를 가이드할 사람하고 미리 접촉을 해서
꼼꼼하게 일정을 조정하는 지혜를 발휘했더라면
조금은 다른 일정이 될 수도 있었겠구나,덜렁대는 성격그대로
현장에서 조정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다음 여행을 준비할 때는 이런 문제를 이미 한 번 생각해보았으니
조금은 달라질까? 그 때도 역시 지나고 나서 후회할까?
두고 볼 일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