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신호등 놈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놈이 깃발을 흔들면 시간은 멈추는 것이다
놈 앞에선 흰 도화지를 펴들거나
초원의 누우 떼를 그리워하지 말라
거리에서 초록은 삼세번 죽었다
놈은 사이비교의 교주다
놈을 기리기 위해 나무들이 산을 떠났고
집들은 고향을 버렸다
당신의 딸은 아버지를 버릴 것이다
놈 앞에선 누구나 놈의 사열병이 된다
2분 동안 나는 놈에게 예를 다했다
다시 2분을 두번 경배하는 동안
그 사이 나의 길은 얼마나 멀어졌는지
어둠의 눈쌀은 어찌나 차겁던지
내게 유일한 대항력이 있다면 이 도시를 떠나는 것
그러나 어디로 간단 말인가
초록 들판의 신앙을 아직도 믿는가
그대여
우리 다시는 정각에 만날 수 없으리
- 윤 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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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te:
네거리를 대여섯 군데 지나야 집에 당도할 수 있다.
그때마다 음주단속 경관처럼 눈을 부라리고 있는 붉은 신호등과 만나게 된다.
정확하게 2분 간은 그 앞에서 신호등이 요하는 예를 표시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이 시대에 그만한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또 있단 말인가.
그 눈초리 앞에서'고향의 푸른 잔디'를 틀어놓고 있는 나는 참 얼마나 고리타분한가.
붉은색은 공포와 두려움의 표상이다. 그리고 까닭 모르는 분노를 야기케 한다.
이 시대 도시인이라는 존재가 어쩌면 투우장에 끌려나온 소와 같지 않을까.
붉은 보자기에게 자유의지를 맡겨야 하는 소....
오늘도 당신은 투우장에 끌려나와 얼마나 찔림을 당했는가.
도시의 그 어디에도 초원은 남아 있지 않다. 그리하여 누우떼도 없다.
불, 피, 경적, 굉음... 붉은 눈알의 마녀들,
도시인으로써 오늘 나의 초라함이 그것들의 은총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