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나들이를 몇 주 쉬었습니다.
그리곤 아주 오랫만에 나가는 길,오늘 무엇을 만나게 될 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심정으로 나섰지요.
지난 번 마그리뜨 전시에 갔다가 늦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everymonth의 캘리님이 23일 호암아트홀에서 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공연실황을 찍어서
영화처럼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이 금요일에 있는데
2시에는 청교도,저녁 7시반에는 마술피리 공연이 있다고
알려주더군요.
청교도라 제목이 특이하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기회에 한 번 오페라를 볼까?
그런데 실황이지만 실제로 무대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디브이디 보는 식으로 보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 만족감을 줄 수 있을까 한 순간 고민했지만
그래도 음악회에 자주 다니는 켈리님의 안목을 믿고
2시공연은 일단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지요.
그리고 하루를 더 고민한 다음 이왕이면 나선 나들이에서
마저 저녁 공연도 보고 싶어서 두 공연 다 예약을 부탁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금요일 하루를 호암아트홀에서 다 보내는
아주 특이한 금요나들이를 하러 가는 상황인데
이상하게 몸이 피로하고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요즘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일본 드라마를 보는 중이라
아무래도 무리가 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제 그만해야지 하는 신호가 오지 않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한동안은 그런 상태가 지속될 모양입니다.
그래도 버스 속에서 푹 자서 그런지 호암아트홀에
들어갈 때쯤에는 몸 상태가 많이 회복이 되어서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잠이 보약인데 보약을 못 챙겨 먹으니
몸에게 미안스럽네요.
4시간 공연이라니,중간에 잠깐 쉬는 시간이 있다 해도
얼마나 몰입해서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기우였습니다.
막이 오르기 전에 10분정도 해설을 하는 분이 나와서
대강의 이야기를 합니다.
아하,이름만 듣던 벨칸토 창법의 오페라로군
그런데 벨리니라니 벨리니란 이름은 제겐 화가로서
더 익숙한 이름인데 작곡가 벨리니도 있었네요.
청교도란 제목은 찰스 일세와 그를 지지하는 왕당파와
크롬웰을 지도자로 하는 청교도파의 내전이 일어났던 시기가
배경이라고 하네요.
갑자기 그 이야기를 듣자 마자 공연에 대한 관심이
생깁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단장이
나와서 이 공연에 대한 소개를 합니다.
대중과 좀 더 소통하고 싶어서 올해부터 시도하는 작업인
음악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에 대한 이야기를요.
한 사람의 생각이 바뀌면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되는 것일까
그런 사고의 전환이 여기 저기서 결실을 맺을 수 있길
기도하는 심정이기도 했습니다.
실황이긴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중간 중간에 아나운서가 실제로 소프라노로 활동했던 분과
인터뷰를 하면서 내용에 관한 것,공연당시의 감상등을 물어보는
코너도 있었고 무대 뒤를 보여주는 것,여자 주인공과의
인터뷰,여자 주인공의 삶을 간단하게 다룬 일종의
바이오그라피를 보여주는 것도 있어서
초보자인 제겐 실황의 실감보다도 이런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전체 3막으로 된 이 공연이 일막이 끝나고 잠깐 인터미션이
있을 때까지 거의 1시간40분이 걸렸는데
마치 그 시간이 순간 꿈처럼 끝나버렸다고 느낄 정도로
몰입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꿈이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란 얼마나 재미있고
소중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지요.
2막에서는 여주인공의 광란의 아리아가 있었는데
거의 30분을 마치 그녀 자신이 정신이 혼미한 상태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의 역에 몰입하여 부르는 아리아가
압권이었습니다.
남자 주인공의 테너도 훌륭했지만 제겐
여주인공의 삼촌이 부르는 바리톤의 음색이 정말
듣기 좋더군요.
사람의 목소리가 제일의 악기라더니
오늘 실감을 하는구나
그런데 왜 이런 세계를 그렇게 모르고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마 앞으로 오페라에 갈 일이 종종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 날이었지요.
오늘 아침에 집에서 청교도에 관한 것
마술피리에 관한 것을 뒤적여서 음악을 찾아내서
듣고 있는 중인데요
아마 앞으로 한동안 이런 after를 하게 될 것 같네요.

왕당파 기사와 청교도 집안의 처녀
둘의 사랑이 아무런 장애가 없긴 어렵겠지요.
결혼식을 하기로 한 날
기사는 포로로 잡힌 여자가 바로 찰스 일세의 미망인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냥 두면 자연히 사형을 당하게 될 그녀를 위해서
그는 결혼식을 미루고 그녀를 피신시키게 되는데
그것을 모르는 여주인공은 남자가 다른 사람과 달아났다고
오해를 하게 되고 고통이 광기의 상태로 치닫게 되지요.
그림속의 주인공이 바로 찰스 일세입니다.

당시에 영국으로 건너가서 활동한 안토니 반 다이크덕분에
그 시대를 살았던 영국인들을 그림으로 만나게 되네요,
오늘 아침,그 시대를 다룬 음악을 들으면서요.
이 오페라는 다른 비극과는 달리
오해가 풀리고 해피 앤딩으로 끝나게 되지요.
이야기의 흐름이 중요하다기 보다
이 오페라는 정말 voice,voice,voice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더군요.
테너의 음역이 너무 가혹할 정도로 높아서
테너들에겐 일종의 심한 테스트가 되는 작품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리카르도(주인공 엘비라를 좋아하는)와
그녀의 삼촌이 부르는 이중창의 화음이 좋았습니다.
원래 초연이 되었을때 너무나 많은 앙콜이 있어서
2막의 뒤로 뺐다는 말이 있더군요.
혼자서 부르는 아리아도 좋지만 화음이 어울리는 것의
아름다움도 대단하군 하면서 빠져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청교도가 끝난 다음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남은 시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다음
다시 공연장에 들어가니 이번에는 마술피리입니다.
마술피리는 한 번 공연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라이온킹을 만들어서 토니 상을 수상했다는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여자분이 만든 영어판
마술피리를 보게 되었다는 설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영어판 마술피리라니
그렇다면 어떤 무대가 하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마술피리를 제대로 본 적은 없어서 (지난 번에 본 것은
어린이날 특집으로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것을 본 것이라
원작을 그대로 다 보았다고 하긴 어렵거든요.
무대가 정말 환상적이더군요.
사람의 머리에서 무엇이 나올지 그 끝이 어디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공연 내내 설레면서 보았지만
그것보다도 마술피리의 내용이 담고 있는 메세지가
모짜르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상당히 철학적인 테마를 담고 있구나 이 오페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눈앞에 보이는 것과 실제의 차이,그것을 과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
인간이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무엇으로 자신을 단련하며 살아갈 것이가의 문제
고통속에서 음악이 고통을 견디고 앞으로 나가게 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메세지
지난 번에도 그랬듯이 역시 마술피리에서 파파게노의
역할이 가장 생생하더군요.
그리고 밤의 여왕의 아리아도 역시 좋았고요.
다 끝나고 집으로 오는 버스속에서 마치 한 편의
꿈,그것도 아주 흥겨운 꿈을 꾸고 나서
깨고 나니 아직도 어리벙벙하지만 기분좋은 그런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새로 시작된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 앞으로
어디로 저를 데려가게 될 지 사뭇 기대가 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번의 첫시도가 제대로 열매를 맺어서
호암아트홀에서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공연을 계속 공급을 하면 좋겠다
그렇다면 금요일에 하는 공연이라면 언제라도
가서 볼 수 있으련만
그것이 올 한 해의 선물이 될 수 있겠네 하는
기대를 하면서 돌아오기도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