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연극을 보러 가게 되지 않았는지
혹은 보러 가게 되지 못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 흘렀네요.
한 달에 한 번씩 혜화동의 민들레 영토에서
곰브리치 미술사를 읽는 모임이 있어서 그 곳에 가도
아침에 모이는지라 저녁까지 그 곳에 남아서 기다리기도
어렵고 (늘 다음에 해야 할 일,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소극장에 가 보지 않은 세월이 오래다 보니
무엇을 보아야 할 지도 포스터만 보아서는 알기 어렵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하철역에서 출구로 나와 올라가는 길에 죽 늘어선
포스터를 보고도 마음에 확 당기는 작품이 없었던 것도
한 가지 요인이었을까요?
이래 저래 혜화동에 다니면서도 연극과 거리가 멀었는데
어제는 수업마치고
중계동의 한 산후조리원에 태어난 아이를 보러 갔다가
돌아오면서 친구가 염쟁이 유씨에 대해서 들어보았느냐
오늘 시간이 있는데 그 연극 볼까? 그렇게 묻길래
아,그 연극 신문에서 본 것 같아,그러면 오늘
연극보자, 그렇게 순식간에 결정을 하고 펴를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표를 구하려고 하자
다른 것들도 막 눈에 띄는 겁니다.
산울림에서 하는 엄아는 오십에 바다를 보았다도 유혹을 하고요.
그래도 민속학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먼저 이야기한 연극을
제 취향대로 뒤집긴 뭐해서
그 연극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이 작품을
제대로 보기로 마음을 먹고
우선 저녁밥을 먹을 장소를 골라서 들어갔습니다.
확실히 바람이 시원해져서 좋았습니다.
여덟시에 시작하는 연극이라
이야기 꽃을 자르고 아쉽게 자리에서 일어나니
일곱시 삼십분 조금 넘은 시간
벌써 바깥은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분위기네요.

그동안 너무 더워서 카메라를 들고 다닐 엄두를 못냈더니
역시 손이 무뎌지고 감각도 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대가들도 운동이나 발레,혹은 악기 연습에 조금만 게을러지면
당장 표가 난다고 하는데
저처럼 초보자가 한 6개월을 미친듯이 좋아하면서
사물만 보면 카메라를 들이 댈 때는 조금 진척이 보여서
좋아했는데 역시 공백기가 길어지니 이렇구나 싶어서
마음에 새긴 날이기도 해요.

바로 이 연극입니다.
일인극이다,시골에서 온 배우가 매일 공연마치고
청주로 내려가면서 오랜 기간 공연한 것이다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에 염하는 사람 이야기이다
이 정도의 간단한 정보만 갖고 보러 들어간 극장
정말 소극장이란 말에 걸맞은 작은 무대와
객석입니다.
그런데 객석에 차근차근 들어오는 관객들을 보자
얼마나 다양한지요.
어린 학생들부터 시작하여 아마 입원환자인듯
무료함을 달래려고 살짝 나온 모양인지 환자복을 그대로
입은 중년의 여자분도 있고
대학생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머리에 힘을 준 기색이 역력한
젊은 총각들,처녀 총각티를 살짝 넘긴 사람들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젊은 관객이 많아서 이런 문제에 관심을 둘 나이로
보이기엔 아직 젊은데 놀랍다,혹은 기특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대는 정말 입관을 할 때 필요한 시설만 되어 있습니다.
과연 한 시간 삼십분동안 배우 혼자서 어떻게 꾸려갈까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하던 생각은
무대에 배우가 들어와서 몇 마디 하는 사이에 기우였음을
알았습니다.
그 때부터 한 시간 삼십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몰랐습니다.
웃다가,눈물 찔끔 흘리다가
다시 웃다가 혼자서가 아니라 객석과 호흡하면서
소리지르기도 하면서 보낸 한 시간 삼십분
그 사이에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
그 사이에 놓인 삶,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것은 기억인가
명대사들을 기억하면서 다시 무대를 보기도 했습니다.

배우가 얼마나 능청스럽게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이는지
엉성한 듯한 목소리로 끌려드는 사람도 있고
너무나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서 박수를 여러번 받은 사람도
있지요.


혼자서 여러 역을 소화해내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배우
그가 만난 수없이 많은 주검을 열거하는 동안
나의 마지막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그것은 결국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의 총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무섭기도 하더군요.
3월에 시작하여 계속 연장공연을 하고 있다는 이 연극은
인기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아,충분히 그럴 만하다 싶었습니다.
심지어는 이 연극을 일곱번이나 본 사람도 있다고 하네요.
무엇을 볼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 꼭 혜화동에 가보시라고 강력하게 권할만한
작품이더라고요.
연극을 보고 나온 거리는 이미 밤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에는 함께 인천에 가기로 한 일행이 있는데
그들에게 야간 촬영하는 기술을 꼭 배워서
조금 더 풍광이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보아야지 하는
마음을 먹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