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신림동에서만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 저녁에 만나기로 한 친구가 있어서 교보문고에 여섯시까지 가야지 하고
하루 일정을 잡았었는데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이 근처의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해달라고 하니
맛있는 집이라고 자신할 순 없지만 길을 건너면 시장통이고 그 곳에 음식점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집 저 집 간판을 보고 고민하다가 부대찌개를 시켜놓고는
반쪽이님이랑 이야기 꽃이 피었습니다.
그녀가 아들때문에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저도 그럼 서울대 미술관은 다음으로 미루고 아무래도 시청쪽으로 나가서
피카소전을 보거나 덕수궁이나 창경궁에 가서 사진을 찍은 다음
교보문고에서 새로 나온 책을 구경해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지하철 타는 곳으로 가다보니 시청을 지나서 종로 일가까지 가는 버스가 눈에 띕니다.
그래? 그렇다면 시청앞에서 내려서 아무래도 시립미술관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그렇게 마음을 정했지요.
버스 안에는 막 대학생이 된 듯한 아직은 앳 된 얼굴의 대학생 두 명이 아마 시험을 치르고 나서
시청앞으로 축구 응원을 나가는 모양입니다
시종일관 축구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눈을 감고는 있어도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시청앞에서 내리니
그 곳은 이미 붉은 물결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네요.
어떤 상점앞에서 만난 플래카드입니다.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것도 있지만
일종의 축제를 즐기는 기분이 느껴져서 재미있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시청앞에는 이미 대가 설치되어 있고 사람들의 물결이 느껴집니다.
조금 서서 구경하다가 서울시립미술관에 도착하니 여기는 또 다른 느낌이 드네요.
마치 동화의 세계에 들어온 기분을 느끼게 하는 설치 작품이 눈길을 끕니다.



이 의자에 앉아보고 싶지만 시간이 빠듯하네요.
아침에 호림박물관의 넓은 뜰에 설치되어 있는 작품들을 보고 와서 그런지
시립미술관의 외부에 너무 썰렁한 것 아니야?
조각들을 조금 더 배치하고 공간을 더 성의있게 만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요.
비교란 참 무서운 것이구나 늘 드나들면서도 별로 비좁다고 느끼지 못하던 곳인데
대전 시립미술관의 공간과도 비교가 되고
호림박물관의 공간과도 비교가 되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표를 구하려고 박스앞에 서니 거의 매일 밤 열시까지 전시를 하네요.
아,이런 점이 시립미술관의 장점이니 그렇다면 하고 공연히 마음이 풀어집니다.


피카소는 파리에 갔을 때 피카소 미술관에서 아주 다양한 작품을 보았고
그 전에도 전시가 있을 때 갔기 때문에 새롭다,기대된다 하는 마음보다는
원화가 올 때 기회이니 다시 보아야지 하는 조금은 풀어진 마음으로 전시를 보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피카소입니다.
이미 본 작품은 가뭄에 콩나듯 드문 드문 있고 거의 다 새로운 작품들이더군요.
전시에 관한 것은 after를 혼자서 서서히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두 층의 전시장을 돌고 나서 다시 한 번 마음에 품고 가야 할 작품들만 골라서 다시 본 다음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그,리,다 란 제목으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70년대 이후의 구상미술의 방향을 보여주는 전시라는 전시소개를 읽고 나서
안으로 들어가니 눈길을 끄는 여러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빛의 작용을 담은 그림들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을 보고
역시,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에 내가 그림을 보는 것도 달라진 모양이네 하면서
웃음이 절로 나오더군요.
시간이 촉박하여 더 이상은 곤란하다 싶어서 광화문으로 가는 길
역시 빨강의 물결이 이루어지고 있네요.
월드컵 기간 내내 거의 무심하게 지낸 제게도 역시 현장은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