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중학교 서가를 뒤지고 다니다가 만난 책 제목입니다.
출판연도가 2002년인데 이제야 만나게 되는 책이 되었네요.
민중판화가로 알려졌던 그가 불교와 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판화 한 점에 이야기 하나를 꾸려서 선보인 책이더군요.
좋아서 빌려오자 마자 보고
오늘 아침에도 다시 손이 가서 보고 있는 중이지요.
그러다보니 자연히 이철수님의 판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동해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어제는 마두도서관에서 빌린 빛의 음악이란 제목의 책과 중세를 찾아서를 동시에 보게 되었지요.
빛의 음악은 오에 겐자부로 (일본의 소설가 )의 아들 오에 히카리에 관한 이야기인데
히카리가 빛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상하게 겐자부로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 없군요,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긴 한데
왜 그랬을까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소설에서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자주 쓴다,그 아이가 발달장애를 겪고 있다는 글은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빛의 음악에서 보니 태어날 때 뇌류 상태로 태어난 아이라서
(뇌류란 뇌가 두 개인데 하나는 죽은 뇌 상태로 나온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뇌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살 수 있지만 부작용으로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수반하여
위험한 수술이라고요,물론 죽음의 위험도 있고요.)
수술을 했는데 그래서 키우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요.
그런데 아이가 이상하게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더니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에서 작곡을 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작곡가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히카리의 이야기를 하느라 린즐라 캐머린이 오에의 가족이야기,
특히 겐자부로가 자신의 소설속에서 어떻게 그 아이와의 삶을 담았나를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요즈음 캐드펠시리즈를 계속 읽고 있는 중이라 (시리즈가 자그만치 20권이지요.
그래서 12세기의 영국속에서 살고 있다보니 이 책을 빌려놓고도 손이 가지 않아서
그냥 반납하고 캐드펠 시리즈의 한 권으로 바꾸어 올까 고민하던 책인데
그래도 빌린 책을 그냥 내는 경우가 찜찜해서 읽기 시작한 책읽기가
갑자기 눈앞의 비늘을 떼어주는 역할을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군요.
히카리가 가장 관심있어 하는 시기가 바로크 시기이고
실제로 그의 작품도 투명하면서 깊은 슬픔과 기쁨을 잘 표현했다
그래서 잠을 자기 전 자주 그의 음악을 듣고 있다고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의 말을 빌린
인용도 있더군요.
그래서일까요?
아침에 호로비츠가 연주하는 스카를랏티의 곡을 오랫만에 들어보고 있는 중인데
맛이 새롭습니다.

중세에 관한 책을 찾아보다보면 늘 만나게 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자크 르 고프인데요 그가 쓴 책을 이미 여러 권 읽은 상태여서 제가 중세를 이해하는데
상당히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마두 도서관의 서가를 뒤적이다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을 한 권 다시
발견했는데 역시 그의 책이더군요.
중세를 찾아서는 장 모리스 드 몽트르미가 질문을 하고 여기에 대해서 자크 르 고프가
대답하는 형식의 인터뷰여서 그가 어떻게 중세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그의 연구주제에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는가,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그가 관심있게 생각하는 주제가 어떻게 발전하게 되었는가
그가 생각하는 시대구분이란 무엇인가
르네상스에 대한 시대구분이 과연 적합한 것인가
중세는 그 시기로 과연 끝난 것일까 아니면 지금의 서양에도 중세적인 관념이 계승된 것이 있는가
이렇게 흥미있는 이야기거리가 넘쳐서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을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 주는 책이더군요.
만약 서양사의 중세에 관심이 있으나 무엇을 먼저 읽을까 고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그의 저작보다 먼저 읽어보면 좋을 책이 아닌가 싶네요.
서양사 개론을 읽으면서 만나는 중세는 사실 조금 칙칙한 냄새가 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디테일을 살려서 읽게 되는 소설속에서 혹은 이렇게 중세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바라보는 중세는 과연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살아 있습니다.
그러니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에 따라서 얼마나 읽는 독자에겐 다른 모습으로 비쳐지는가를
생각해보면 글에서의 디테일이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는군요.

중세는 소설에서 만나는 시기이고
수업중에 만나고 있는 시기는 프랑스 혁명이후 빈체제,그리고 1830년의 7월혁명,
1848년의 2월 혁명,그것의 파급효과,산업혁명,미국의 남북전쟁등을 읽고 있는 중이지요.
제 차례의 발제인가 아닌가에 상관없이 수요일에는 보조자료를 읽어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어서
수요일마다 서양사의 그 시기를 집중적으로 읽고 있는 중인데
그 과정에서 보조자료로 쓰려고 빌린 책중에 부르주아전이란 재미있는 책이 있습니다.
문학의 프로이트라고 불리는 슈니츨러의 일기를 통해서 그 시기의 부르주아란 누구인가를
추적하는 책인데요 방식이 참 흥미롭더군요.
한 사람의 일기를 추적하여 이렇게 책 한 권을 쓰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오만과 편견이 개봉되었다고 하는데
생생한 영상으로 영국의 브루주아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겠네 싶어서
영화시간표를 뒤적이게 되기도 하고요.

이번 주일에는 정말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시대에 걸쳐서 글을 읽고
다양한 경험도 한 즐거운 한 주를 보냈군요.
제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는 마음이 절로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