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쪽지가 왔습니다.
곰브리치 미술사를 친구와 둘이서 공부하고 싶은데
어떤 방식으로 읽으면 좋은가 하고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긴 호흡의 글이 될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런 질문을 받을 여지가 있을 것 같아서
그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냥 이곳에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쪽지를 보낸 분은 미술이 전공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전혀 초보자가 아닌 사람들의 글읽기라 일반적으로 처음 미술을 접하는 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그래도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은 비슷할 것 같아요)
우선 미술사를 알고 싶은가
아니면 그림 자체를 보고 느끼고 싶은가에 따라서 방법이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미술사를 읽으려면 아무래도 처음부터 공부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므로
인내심이 필요하겠지요?
더구나 어떤 강의를 듣는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친구와 둘이서 한 달에 한 번 만나서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오래 가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두 명의 모임에 덜 친숙한 사람들 (예를 들어 동네에서 알게 된 그림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을
합류시켜서 약간의 공식적인 모임을 만들고
최소한 어디까지는 읽자와 발제를 맡는 사람이 있어서 그 모임을 한 번씩 주도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발제하면 너무나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그냥 책에 줄을 쳐서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하거나
중요한 부분에 대한 요약과 더불어 상대방이 모르는 내용에 대해 답을 하게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곰브리치 미술사 자체가 글을 참 잘 썼고
그 정도만 읽어도 다양한 분야가 많이 다루어지므로
처음 읽으면서 여러 가지 책을 동시에 읽는 것은 오히려 더 힘이 들지도 모르겠어요.
차라리 책에서 나오는 이름을 인터넷에서 찾으면서
좀 더 다양한 도판을 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만약 미술사가 아니라 그림 감상을 좀 더 잘 하고 싶은 경우라면
꼭 미술사의 초기시대부터 최근까지의 글을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우리가 친숙하게 알고 있는 인상주의 이후의 그림부터
좋아하는 화가,마음에 당기는 화가순으로 그림을 보고
기회가 되면 전시장에 다니면서 실제 원화를 보는 기회를 자주 갖는 것이 좋겠지요?
아무리 인쇄가 잘 된 책이라고 해도
복사본을 보는 것과 원화를 보는 것은 너무나 다른 경험이어서
단 한 번이라도 좋은 전시를 보는 것이 그림에 대해 제대로 감상하고 좋아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거든요.
그러면서 이 화가가 활동한 시기는 도대체 어떤 시대였을까 궁금하여
거꾸로 미술사 책을 그 부분만 중심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곰브리치 미술사가 버거운 사람들 (우선 책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에겐
당신의 미술관이나 이주헌님이 새로 쓴 미술사에 관한 두 권의 책을 구입하여 곁에 놓고
수시로 찾아보는 방법도 좋겠네요.
아니면 요즘 자주 출간되는 그림에 관한 에세이집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저자가 소개하는 그림에 관한 해설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이 사람은 왜 이 그림을 골랐고 어떤 느낌으로 그림을 보았나,
내가 못 본 것을 보는 눈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나라면 이 그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창조적으로 책을 읽다 보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책읽기 그림보기가 되지 않을까요?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일이지만
혼자서 어떤 의무도 없는 일을 오래 하기는 참 어려운 일같아요.
그러니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너무 많아도 곤란하겠지요?)
서로 가능하면 지속적으로 미술관을 방문하는 모임을 만들어도 좋고
그 때 그동안 자신이 구해서 읽은 미술에 관한 책을 돌려보면서
나는 이 책에서 어떤 그림이 마음에 와 닿았다는 간단한 소감을 피력하면서
돌려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아요.
제가 사는 일산은 동네가 작아서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데
서울의 경우에는 우선 거리상 만나서 무엇을 함께 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이겠지요?
화요일의 갤러리 투어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지속적으로 모인다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런 모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지금으로서는 armania님과 저,그리고 용인에서 오시는 분
이렇게 셋이라 그런 생각을 못 해본 상태입니다.
다만 책을 돌려서 보는 일은 시작을 한 셈이지요.
제가 사람들과 그림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한 세월이 벌써 6년이 넘었네요.
그렇게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은 도서관이란 공간이 있었고
사람들이 멤버가 교체되기도 하고 그만 나오다 다시 나오기도 하고 변했지만
한 자리에 버티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어떤 모임을 꾸리려면 가능한 한 끈기있는 사람이 한 둘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고민할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니
우선 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서
조그만 모임이라도 시작해보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다 보면 그 모임의 성격에 맞게 조금씩 틀이 생길 것이고
처음에는 어설프더라도 방법이 보일 것 같은데요.
서점에서 곰브리치 미술사를 보긴 했으나
너무 두꺼워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반 룬의 예술사 이야기를 권합니다.
이야기의 감칠 맛이 있고 미술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 책인데
만약 마음에 내키지 않거나 잘 모르는 장이 있으면 우선 건너 뛰면서
관심가는대로 먼저 읽고 다시 돌아가는 방법도 있지요.
이제 우리가 학교에 다니는 학생신분이 아니므로
우리들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특권을 누려도 되지 않을까요?
글을 쓰면서 함께 본 그림은 모네입니다.
이 글이 미술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요
시도해보고 생기는 후일담이 많이 이야기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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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1,287 |
추천수 : 15
작성일 : 2005-06-17 09: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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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사랑가득
'05.6.17 10:22 AM반룬의 예술사이야기 강추입니다...3권짜리인데....^^
저처럼 예술에 대해 문외한인데다 전형적인 이과취향의 사람이 읽기에도...재미있습니다2. 사랑가득
'05.6.17 10:26 AM늘 좋은 글과 그림 감사합니다.
아침에 보는 모네...참 좋네요...
예전에는 그저 추상화만(왠지 있어보여서...^^) 좋아했는데...나이들수록 이런 그림들이 좋아지네요...
전 요즘 오치균님 그림이 좋던데....언제 함 올려주세요...제가 본 그림은 몇 개 안 되서...ㅠ.ㅠ3. 가루녹차
'05.6.17 5:03 PM그림 사이사이 멘트가... 마치 그림을 보며 님의 나레이션을 듣는 듯... 좋은 글과 그림...도움이 되었어요.
4. toto
'05.6.17 6:58 PM오늘 모네 그림 너무 좋아요.
님 덕분에 그림에 눈을 뜨고 있는 중입니다.
파라솔 쓰고 있는 여인네는 초면이 아닌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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