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독후감이자 책 소개글입니다.
그런데 르네상스 시기를 다룬 책이라 다시 필요해서 읽어보니
지금도 유효한 글이네요.
당시에는 그림 올리는 법을 몰라서 그저 화가 이름을 나열하면서 글로만 풀어서 쓴 것인데
오늘 도서관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DK출판사의 THE ARTS OF RENAISSANCE를 읽고 왔더니
좀 더 자세히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보충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내일 서양사 시간에 만날 화가들이라 수업의 예습이란 측면도 있고요.
정말 목요일이 서양사 시간인지 미술사 시간인지 구분이 안되는 날들이지만
그래도 제겐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되고 있는 중입니다.
(서양문화의 역사 시간에 함께 보려고 도서관에 올린 글입니다.
르네상스기의 그림을 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올려 놓습니다.)
가끔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고르는 날이 있습니다. 그냥 그 곳에서 바로 책을 사는 것도 아닌데 신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작은 서점에서 구하기 힘든 목록을 만들고 그 책을 읽을 것인지 탐색하는 날이기도 하지요.
그 때 메모한 책 중에서 그림만 보고 알 수 없는 액자밖 화가 이야기라는 긴 제목의 책을 읽고 싶어서 제가 책을 주문하는 서점에 몇 번씩 연락을 했지만 이상하게 책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포기하고 있는데 책이 왔더군요. 그래서일까요? 반가운 마음에 아주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만으로는 화가이야기라는 것만 제외하면 다른 정보가 없는 셈인데 이 책은 에이미 스티드먼이란 동화작가가 르네상스를 열었던 조토로부터 베네치아의 마지막 화가라고 할 수 있는 파올로 베로제네에 이르기까지 18명의 르네상스시기의 화가의 전기를 간단히 다루고 있는 책이지요.
동화작가의 글이라는 선입견때문일까요?
글이 마치 속삭이는 듯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도록 이야기가 정겹게 펼쳐집니다. 거창한 이론으로 무장하여 나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를 잘 모르는데 기가 죽어서 책을 읽기가 겁난다는 기분을 느끼게도 하지 않는 아주 편한 독서가 가능한 책이란 점에서 르네상스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정작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이렇게 거장 3명의 이름만 들어본 사람들에게 한 시대로 안내하는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크게 보면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화가들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꽃의 도시 피렌체와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화가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면서 한 시대의 미술을 형성하고 있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세의 그림에서 새로운 길을 연 화가로 지목되는 인물은 바로 조토 디 본도네이지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조토는 어린 시절 양을 치러 다니는 양치기였는데 주변의 사물을 눈여겨 보았던 조토는 바위에 양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그려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대에 가장 유명했던 치마부에가 그 길을 지나가다 그 그림을 보았고 스승도 없이 스스로 그림을 그렸다는 조토에게 놀라 그 아이를 아버지의 허락하에 피렌체로 데려가 그림을 가르쳤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의 화가들을 보면 거의 예외없이 스승을 능가하는 화가로 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더군요. 스승이 제자때문에 붓을 놓는 일,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저는 혼자 생각하게 되거든요.
조토의 그림은 지금의 우리가 보기엔 무엇이 그렇게 새롭다는 말인가 하고 의아하게 여겨질 만큼 낯선 느낌이 들지만 중세풍의 그림을 보던 사람들에게는 정말 놀랍고 신기한 변화의 신호였을 거란 느낌이 듭니다. 이런 대조는 중세의 그림과 함께 보는 것이 더 확실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 미술사는 어찌 보면 전 시대의 사고방식을 나름의 방식으로 뛰어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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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와 조토는 같은 피렌체 출신이었다고 이은주씨가 소개한 글에서 읽은 기억이 나지요?
조토가 그린 프란체스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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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지 제단화라고 알려진 이 그림은 나무에 템페라로 그려진 것이라고 하네요.
그 다음에 소개되는 프라 안젤리코는 수태고지 그림으로 제게 기억되는 화가인데 이번 책에서는 그가 그린 다른 작품인 나를 만지지 마라가 소개되었더군요. 처음보는 그림인데 그림 속의 풍경이 너무나 평화롭게 느껴지는 그림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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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 안젤리코는 수도사였는데 그는 자신의 그림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 후에야 붓이나 연필을 들었던 신심이 깊었던 화가였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림에 담을 때면 눈물이 샘솟아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는 일화가 있기도 합니다.
이 말을 읽다가 갑자기 뉘렌베르크라는 영화의 명대사가 생각났습니다.
뉘렌베르크는 독일의 한 도시 이름인데 그 곳에서 2차대전의 전범들이 재판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지요.
최근에 비디오로 출시된 그 영화에서 유태인출신의 심리학자인 한 대위가 전범들의 심리상태를 연구하다가 내린 결론인 말인데 그는 그들의 죄가 바로 감정이입의 부재상태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누가 제 뒤통수를 내리치는 그런 기분이 들더군요. 꼭 전범까지 들먹이지 않는다 하더라고 우리의 일상을 누더기처럼 만드는 많은 일들은 바로 그런 감정이입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프라 안젤리코가 그렇게 신에게 경도되고 감정이입이 이루어지는 상태에서 성화를 그렸기 때문에 그런 성스러운 느낌이 더 나는 것은 아닐까요?
그는 교황의 부름을 받아 성당벽화를 그린 적이 있는데 교황은 그의 깊고 조용한 성품이 마음에 들어 피렌체의 대주교에 그를 임명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그 자리릉 거절하고 대신 그런 자리에 합당하다고 생각이 되는 프라 안토니오를 추천했는데 오늘날까지도 피렌체 사람들이 안토니오 주교의 뛰어난 성품을 이야기할 정도라는 일화는 참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군요. 사실 그림으로 봉사하는 인간에게 그런 기회가 왔을 때 거절하고 다른 적절한 사람을 추천할 수 있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더 돋보이는 지도 모릅니다.
그런 글을 읽다보니까 정조가 김 홍도의 그림에 대한 보답으로 그를 현감으로 보내는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현감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상소에 의해 파직당하고 마는데 상소문에서 김 홍도를 고발한 사람은 그가 일개 화원출신이란 점을 문제삼고 있더군요.
김 홍도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정조가 그를 진정으로 위했다면 현감자리에 보낼 것이 아니라 다른 세상의 그림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더 자주 주었다면 어떤 결과가 생겼을까 혼자 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록상으로 그가 연경에 다녀왔다고 한 시기 이후에 그려진 용주사의 후불탱화를 보고 나서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한 번의 충격으로 이런 그림이 나올 수 있다면 그가 여러 번 그의 화풍과 전혀 이질적인 그림을 볼 기회가 있었다면 그의 그림세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하는 호기심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소개되는 화가는 마사초입니다. 연필만 손에 쥐면 돌변하는 지저분한 소년이란 표제가 있습니다. 그는 그림 이외에는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는 외골수였다고 하네요. 원래 그의 이름은 토마소인데 더러운 토마소란 뜻으로 이름이 마사초가 되었다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외골수가 좋습니다. 그런 집중력 속에서 새로운 예술이 가능하고 그런 예술이 사람들의 눈을 새롭게 뜨게 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일에 무관심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일을 위해서는 영혼과 마음을 쏟아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는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 거창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동시대에 살았던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이 주는 평화와는 달리 마사초의 그림은 주인공이 마치 밖으로 나올 것 같은 긴박감이 느껴지고 인물의 사실성이 더 돋보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화가들이 화가 지망생 시절에 늘 마사초의 그림을 보러 가서 감명을 받고 그의 그림을 모사하는 시기를 겪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그림이 당대에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했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일화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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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그림자로 병을 치료했다는 베드로를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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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주는 즐거움에 비해서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그림에 대한 설명은 여러 작품에 대해 하면서 정작 도판은 겨우 한 작품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도 막상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설명만 읽는 일이 허망한 기분이거든요.
차라리 출판을 하면서 여러 권으로 하고 한 화가에 대해 설명한 작품에 대해서만이라도 도판을 보면서 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읽을 수 있다면 더 생생한 느낌이 들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화가들이 많으나 일일이 다 설명하기 어렵군요. 제게 강렬한 인상을 준 화가는 벨리니 형제 중 조반니 벨리니입니다. 레오나르도 로레단 총독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인데 그런 초상화 한 점만으로도 예술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 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냈거든요. 초상화란 장르는 사진과는 다른 인간에 대한 내면적인 깊이를 창출하는 영역이란 생각이 들어서 요즘 다른 그림도 그렇지만 초상화를 자주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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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향연이란 작품입니다.
드디어 신화가 소재로 등장하는 시기가 되었네요.
또 다른 화가를 들자면 티치아노와 틴토레토인데 그들은 베네치아에서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지요. 물의 도시라는 베네치아는 물에 비친 빛의 다양함으로 인해 유난히 빛과 색에 예민한 그림이 많이 나와서 피렌체와는 다른 느낌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제게 그런 설명에 부합되게 느껴지는 화가들이 바로 위에서 말한 두 사람이었습니다.
색과 빛만으로도 그림이 스스로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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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토레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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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레다와 백조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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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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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란 제목의 그림인데요
마침 가운데 남자의 강렬한 시선을 부분적으로 잡은 사진이 있어서 올려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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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 안젤리코에서의 나를 만지지 마라와 티치아노의 그림에서의 같은 소재를
어떻게 다루었나 비교하면서 보아도 좋은 그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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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의 탄생입니다.
보티첼리의 그림과 비교해서 보아도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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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과의 내기에서 진 마르시아스의 껍질을 벗기는 장면이네요.
미술사 책에서 한 번씩 그림을 본 적이 있는 화가들이 태반인데도 그들의 살아간 생애를 다룬 글을 읽고 나니 그림책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보게 되고 훨씬 정다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유 홍준교수가 대학시절 조르조 바사리의 르네상스 화가들에 대한 평전을 읽고 그런 평전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고백을 한 이야기를 화인열전에서 보았는데 이 책을 쓴 동화작가도 바사리의 화가들의 삶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쓰고 있습니다.
책방에 가 보니 바사리의 이 책이 번역되어 있기는 하지만 책의 질이나 그림의 상태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결국 그냥 나왔는데 여기 저기서 바사리에 대해 알게 되니 슬그머니 그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소개한 책에서 만나지 못했던 그림이나 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읽는 동안 마음 속을 찌르는 큰 교훈이 될 구절을 만날 수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