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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찻잔 두개

| 조회수 : 2,381 | 추천수 : 8
작성일 : 2005-03-27 00:06:57
저희집 주방에는 오래된 찻잔이 두 개 있습니다.

한 눈에 봐도 오래된 티가 나지요? 나이가 거의 저와 비슷하죠.

물론 제가 산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사신 물건입니다.

먼저 왼쪽에 있는 찻잔. - 그건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가 산거랍니다.

젊었던 시절, 육군 조종사 시절이었다죠 그때가.

윗분 비행기로 모셔다 드렸더니 수고비를 좀 줬답니다.

그 돈으로 그당시 살던 지방 어느 도시에서 유일했던 백화점에 들러 사서 엄마께 선물했던 4인조인가 찻잔 세트랍니다.

오른쪽 것은 엄마가 서울로 살림나서 맘먹고 장만했다는 한국도자기의 장미 홈세트입니다.

제 기억에 티팟까지 있었던 풀세트였던것 같습니다.

작년에 친정에 가서 가져올때만 해도

하나씩 가져다가 혼자 차마실때 엄마, 아빠 생각하며 써야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것들을 주방 한켠에 가져다 놓으니

쳐다볼때마다 그것이 찻잔이 아니라

젊고 아름다운 30대의 우리 부모님 같이 느껴져서 아직 한번도 차를 마셔보지 못했습니다.

생각지 않은 돈이 생겼다고 아내한테 저런 찻잔 세트를 사다주는 남편 (우리 남편보다 백배 낫다!)

벼르고 별렀다가 마침내 저 세트를 장만하고 기뻐했을 장미꽃같이 어여쁜 아내

그리고....

행복하게 저 그릇들을 바라보았을 그 분들 앞에 얼마지 않아 닥친 커다란 불행....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마 울 엄마는 저렇게 장만한 그릇들 , 제대로 한번 펼쳐놓고 써보지도 못했을겁니다.

이날까지.

그런것들을 생각하니 저 그릇들 볼때마다 마음 한켠이 알싸하니 시려옵니다.


무슨일때문인가 심통이 나서 설거지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나는날

한참 심통내다 보면 왼쪽 옆통수가 왠지 껄쩍찌근 해집니다.

" 여보, 쟤가 왜 그런대요?"

" 내비둡시다. 저러다 말겠지."

주방 한켠에서 두분은 삼십대의 젊은 부부로 걸터앉아 저를 보며 얘기를 나누시는듯 합니다.

아, 심통도 맘대로 못냅니다.
2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헤르미온느
    '05.3.27 12:10 AM

    한편의 수필같은 글이네요...
    마음이 짠~... 해지구요..
    아름다운 사랑으로 자라셔서, 님도 따뜻하신 분이실듯...^^;;

  • 2. 아들셋
    '05.3.27 12:12 AM

    편집이 뭔가 잘못되었나봅니다. 사진과 글 사이가 너무 뜨네요.
    이해해주세요. 초보라서리.....죄송.

  • 3. 미스테리
    '05.3.27 12:21 AM

    커피마시는 잔이 아니라 추억과 사랑이 담겨진 잔이네요~^^
    저두 가슴이 짜안~해집니다...

  • 4. 퍼플크레용
    '05.3.27 12:44 AM

    엄마네 집에 가면 구닥다리 살림살이 왜 끌어앉고 사냐고 타박만 하곤 했는데...
    엄마 옛날 살림살이가 두고두고 곁에서 엄마 노릇을 하기도 하는군요...
    새롭게...감사히...배웁니다.

  • 5. 애살덩이
    '05.3.27 12:53 AM

    그 모습이 그려지네요.....마음이 짜안해집니다....

  • 6. 그린
    '05.3.27 12:54 AM

    그래요, 옛 것에 무엇보다 소중한 추억거리들이 담겨있죠.
    마음이 짠~해 집니다....

  • 7. 초록달
    '05.3.27 1:46 AM

    최고의 명품 찻잔입니다..

  • 8. yuni
    '05.3.27 1:49 AM

    저 왼쪽것 기억나요.
    우리 엄마도 가지고 계셨는데 아마 저게 찻잔만 있는게 아니고
    여러가지 있을거 에요.
    갈비찜을 담았던 뚜껑달린 그릇도 있었고 찻잔세트도 있고, 티포트도 있어요.
    어릴때 무늬가 보리같다고(보리가 뭔지도 모르면서), 어쩜 밑이 이리 찔룩하냐고
    생각하던 기억이 납니다.

  • 9. 깜찌기 펭
    '05.3.27 2:19 AM

    귀한 찻잔이네요.
    추억과 사랑이 담북 담긴..

  • 10. lyu
    '05.3.27 7:25 AM

    사연이 있는 그릇이어서 더 소중하겠습니다.
    사랑 가득한 부모님 기억이어서 행복하신 분.^^

  • 11. honeydew
    '05.3.27 7:33 AM

    찻잔에 담긴 사연이 있으면 그 찻잔을 사용할때마다
    우리는 추억을 마시면서 사는거지요
    저런 앤틱 찻잔들 너무 이쁘고, 소중해 보입니다

  • 12. 두아이맘
    '05.3.27 11:07 AM

    소중히 잘 간직하세요...
    귀한 찻잔이네요...

  • 13. 봄&들꽃
    '05.3.27 11:12 AM

    사진 보는 순간 퍽 단아하다... 이런 느낌 받았어요.
    사연을 읽고보니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우리가 의지할 것들.

  • 14. 냉동
    '05.3.27 11:33 AM

    귀한 거군요.
    잘 간직 하세요.

  • 15. champlain
    '05.3.27 12:30 PM

    왼쪽의 찻잔세트 낯이 익어 반가웠는데
    글을 읽다보니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 집니다.
    글 솜씨가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 16. 고미
    '05.3.27 2:09 PM

    champlain님 제가 쌍둥이라고 그랬던 것 기억하세요?
    제 쌍둥이 언니가 바로 아들셋님입니다.
    그러니까 저 찻잔의 원 주인은 제 부모님들이시구요.
    오늘 아침 눈물 납니다.
    엄마! 건강하시구 아빠 몫까지 오래오래 사세요^^

  • 17. 화성댁
    '05.3.27 2:42 PM

    마음이 거시기 합니다...

  • 18. 첫비행
    '05.3.27 11:11 PM

    그릇에는 음식 뿐만 사연과 추억이 담기는 거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네요^^

  • 19. 김혜경
    '05.3.28 1:35 AM

    아래 찻잔과 같은거..옛날에 저희 집에도 있었는데...우리 엄마는 다 깨뜨리신 것 같아요...
    잘 간직하세요.

  • 20. 김혜진(띠깜)
    '05.3.28 8:46 AM

    정말 좋은 한편의 수필 같습니다. 마음도 짠~ 하니.....
    늘 부모님들과 같이 계셔서 좋으시겠어요.^^
    행복 하세요~~^^ 참~! 글 너무 잘 쓰세요.

  • 21. 겨란
    '05.3.28 4:08 PM

    아 진짜 가슴이 두근두근하네요...

  • 22. 현범맘
    '05.3.31 2:35 PM

    아래 찻잔보면서, 어! 저거 한국도자기아니야? 했습니다. 저희 친정엄마도 이 찻잔 있었는데...

    다음에 친정가면 저도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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