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2. 28 드디어 잉카 트레일의 시작이다
오랫동안 꿈꿔 왔던 3박 4일의 잉카 트레일의 시작!!
출발점인 Camp 82Km 지점에서 투어 팀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멤버는 모두 16명.
영국/호주/미국/한국(나)/인도/스페인 출신으로 이루어진 다국적 팀.
근데 극동아시아 출신은 결국 나 혼자 였고, 여자 혼자 여행온 것도 나 혼자여서, 어찌어찌 2인용 텐트를 혼자 차지하게 되었다. 럭키~
침낭 + 매트 + 배낭으로 완전무장하고 의기양양하게 한 컷.
다리 맞은 편에 보이는 건물이 입장객 및 표를 체크하는 체크 포인트
..... 이때까지만 해도 앞날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지......;;
까미노 잉카 입구인 캠프 82를 지나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인디오들이 사는 마을이 있었다.
안데스의 인디오들..아직도 그들 전통의 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케츄아어를 사용하며 살고 있다. 지붕 얹는 방식이라든지, 주거 양식 또한 잉카 때와 별 다를 게 없다고...
관광객을 보자 그 집의 꼬마가 쪼르르 달려나와 줄기차게 과자를 조르더니 기어이 간식으로 나온 걸 몇 개 얻어갔다.
안데스에서 피는 엔젤 트럼펫이라는 꽃. 케츄아 어로 된 원래 이름도 있는데, 도통 발음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ㅡㅡ;
염소들..
까미노 잉카(Camino Inca) - 잉카의 길
'까미노 잉카'는 스페인 말로 잉카길이라는 뜻이다. 잉카인들은 총 연장 수만 km에 달하는 길을 사용했었고, 그 중 많은 부분이 현재까지도 이용되고 있거나 보존되어 있으므로 사실은 수많은 잉카길이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까미노 잉카라고 부르는 것은 마추삑추로 이어진 특정한 부분의 길인데, 한 국가의 수도라는 뜻으로 서울이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하는 것처럼 까미노 잉카 또한 이미 고유명사가 된 듯하다.
까미노 잉카를 걷기 전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과연 몸이 얼마나 고도 적응을 했는 가 하는 점이다. 일단 까미노 잉카 안에 들어가면 그곳에는 의사도 없을 뿐더러, 억지로 길을 간다고 해도 속도가 느려질 것이므로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고, 다른 사람과 함께 간다면 부담도 커질 것이며, 무엇보다도 전설 같은 잉카의 아름다운 산책길이 고통스러운 극기 훈련 코스로 변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몸의 상태를 점검해보고 그 상태에 따라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까미노 잉카의 길이는 약 49km, 사람들마다 필요한 시간은 다르겠지만 , 지리산 화엄사계곡으로 올라가 종주를 하고, 천왕봉을 거쳐 칠선계곡을 완전히 빠져 나가는 길을 단 하루만에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까미노 잉카도 역시 하루만에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빨리 간다고 해서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입장료를 돌려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무리를 해가며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보통 남들이 걷는 만큼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까미노 잉카를 걸은 다음 마추삑추를 보는 것까지 3일이면 적당하고, 4일이면 아주 여유가 넘쳐 흐를 것이다.
- 권병조, [잉카 속으로]에서 발췌 -
==> 4일이면 여유? --;; 누구 얘기요 그건
안데스의 풍경들.. 12월의 안데스는 우기에 해당한다. 다행히도 걱정했던 것 만큼 비는 오지 않고, 간간히 저런 식으로 구름이 끼는 정도였다.
아직은 길이 평탄해서 수월했다.
잉카인들이 닦아놓은 길 옆으로 본격적으로 유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약따빠따(Llactapata) 유적- 케츄아 어로 계단식 밭의 마을 이라는 뜻
길 옆에 있던 파수대 자리. 저기서 아래로, 약따빠따 유적과 유적으로 이어지는 길을 멀리까지 볼 수 있다.
부근으로 간간히 무덤흔적들도 보이지만, 역시 부장품을 노린 도굴꾼들에 의해 도굴된 상태였다. 텅 빈 구멍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가이드 중 한명이었던 줄리앙
*참고로 왼쪽의 남자는 스페인에서 온 라몬
고도 3000미터 지점인 와이야밤바(Huayllabamba:초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 곳에는 몇 채인가 집도 있었는데, 차도 들어오지 못하는 집에서 어떻게 시멘트로 집을 짓고들 사는지..
그 중 한 곳에서는 등반객을 상대로 초코바라던가, 생수를 파는 집이 있었는데, 다들 그 집을 보고 경악했다. 그 이유는...
와이야밤바의 쇼핑센터??
위에 파란 페인트로
"Shopping Center, We accept Visa/Master Card"
라고 써있어서, 모두가 경악..! 어이 진짜 카드 받는 거야? 이런 두메산골에서?
참고로.. 물건은 저기 보이는 게 거의 전부... 차도 안 다니는 첩첩산중 안이다. ㅡㅡ;
뒤로 멀리 보이는 구름과 눈에 쌓인 봉우리가 베로니카(Veronica, 5750m)이다. 쿠스코와 마추픽추를 잇는 오리지널 잉카 트레일은 쿠스코를 출발해 저 베로니카를 넘어서 오는 거라고 한다.
...저걸 넘으라고 한다면 꿈이고 마추픽추고 뭐고 때려칠테다!! 우어어~~
드디어 첫날 야영장에 도착! 뒤에 멀리 보이는 산이 내일 넘어야 할 코스이다.
2004. 12. 28 비가 오고 있는 야영장에서 잉카 트레일 첫날을 마감하며..
여행지에서 시계가 필요없는 체질은 참 편리하다. 여행지에서만큼은 잠자는 시간을 거의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다는 건 타고난 체질인가 보다.. 역시 난 역마살이 낀 걸까...
새벽 4시 57분에 눈을 떴다. 고산지방이라서 새벽은 꽤 추운편이기 때문에 샤워를 아침에 하긴 싫었지만 오늘부터 최소 3일은 샤워를 못하기 때문에 바들바들 떨면서 샤워를 했다.
짐을 챙기고 필요없는 것들을 플라스틱 백에 모아 숙소에 맡겼다.
6시에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아뿔사 숙소 열쇠를 반납한 것을 잊는 바람에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에 다시 다녀와야 했다. (그 와중에 택시를 왕복 3솔에 흥정했는데 막상 내릴 때 6솔을 요구해서 잠시 운전기사와 옥신각신했지만, 결국 안 줬다. 누구한테 사기를 치려고 들어!!)
시간이 되어 여행사에서 제공한 버스에 탑승.
가이드인 오시와 줄리앙 두 사람. 그리고 요리사와 야영장비 및 식량을 운반할 포터들을 비롯해 투어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일행이 되었다.
트레일 출발지점으로 가는 도중, 잠시 내려 샌드위치로 아침을 때우고, 오얀따이 땀보에 들려서 만일을 대비해서 10불 정도 환전을 더하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다.
등산에 필요한 스틱을 사려다가 상인들에게 거의 포위되다시피 해서, 3솔 부르는 걸 결국 2솔에 사고 고산병에 대비해서 코카잎과 코카캔디를 샀다.
그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출발.
버스는 우루밤바 강 옆으로 난 비포장 도로를 한참 달려, Kamp 82km지점에 도착했다.
Kamp 82 km에서 ticket을 체크하고, 빌리기로 했던 침낭과 매트를 받아서 배낭에 달았는데, 3kg에 달하는(침낭 2kg, 매트 1kg) 짐을 추가하니, 순간 허리가 휘청인다. 그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출발.
예전에 지고 다녔던 패러 글라이딩 장비 무게(20kg)에 비해서는 가벼운 거지만서도, 앞으로 걸어야 할 거리와 고도를 생각하니 좀 암담해진다.
잉카 트레일 초입 Camp 82km의 공원 관리소에서 Check-in을 했다. 미리 신청해둔 이름과 여권을 일일이 대조하며 여권에 확인 도장을 찍고 입장 시간을 기재하고 서명까지 받는 걸 보니, 꽤나 관리가 철저하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잉카 트레일은 사전 신청 없이 입장료만 내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폭주하는 관광객에 의한 까미노 잉카와 마추픽추의 훼손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유네스코에서 페루 정부에 대책을 세울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고 한다.
그 결과가 하루 입장객 수의 제한 - 가이드/포터 포함 하루 500명-이다. 사실 납득이 가는게 규제 이전 잉카의 길은 엄청나게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거의 길 전체가 바글바글 했단다. 그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니, 훼손이 안될래야 안 될 수가 없다. 보존을 위해서라면 조금 번거롭더라도 감수하는 수 밖에... 단, 줄어든 관광객으로 인한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입장료를 확 올린 건 정말 눈물난다.
체크인 뒤, 모두 모여 기념촬영을 했는데, 모두들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보니 여러대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느라 한참동안이나 포즈를 취해야 했다.
출발하고 나서 한동안은 그다지 오르막이 없는 평탄한 길...
가는 길에 인디오 마을을 지나치는데, 마을 꼬마들이 익숙한 듯이 과자를 달라고 조르길래, 오레오 쿠키를 줬더니 신이 나서 달려간다.
우기의 초입이라고 걱정했는데, 비도 오지 않고, 날씨는 따뜻한 게 아니라 더울 지경이었다. 길도 생각보다 쉬워서 '뭐야 생각보다 별 게 아니잖아~~ 라고 생각했었다... 점심 먹기 전까지는...
약따빠따 부근에 도착하니, 벌써 포터일행이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 뒤 나온 것은 빵과 누들 수프.. 뭐 등산인데 이 정도겠지, 라고 위안하며 다 먹어치웠더니.. 그 뒤로 볶음밥과 닭요리가 주를 이룬 본요리가 나오고 디저트로 초콜렛 소스를 곁들인 바나나까지 나온다.
(그 뒤로도 나오는 매끼는 정말 호화판 식사였다... 배낭여행하면서 줄일 수 있는 것은 숙박비와 식비 정도 밖에 없었기 때문에 여행하면서 이렇게 세 끼 잘 먹은 건 정말 처음이었다!!)
점심을 먹은 뒤, 다시 출발. 슬슬 오르막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와이야밤바 부근에선 꽤 경사가 진 길을 걷게 되었다.
일행 중 몇명은 [첫날이 제일 쉽다더니.. 이게 제일 쉬운 길이라는 거야?]라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그래도 내가 지금 안데스를.. 잉카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을 모르겠다.
특히 오늘 본 약따빠따 유적은 인상적이었다. 종교 구역, 일반인 거주 구역 등으로 구분된 마을과 그 주변의 경작지 흔적..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다음에 나타날 유적을 기대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4시 무렵 첫번째 야영장에 도착하니 이미 포터들이 텐트를 쳐 놓고 기다리고 있다. 산속이라 해도 빨리졌고, 저녁을 먹은 뒤 곧바로 골아떨어지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