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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가 판치는 헐리우드 영화, 조폭이나 가벼운 코미디 일색의
한국영화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극장을 점점 멀리하는 나를 느낀다.
물론, 이런 류의 영화는 재미있다. 생각과 여운, 그리고 감동을 앗아가버리는게 탈이지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포스터를 보는 순간 뭔가 여운이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다.
로버트 레드포드 제작, 베니스 영화제 신인상을 받은 중앙역의 월터 살레스 감독,
체 게바라의 실화라는 것......개봉날만 기다렸다...
영화의 시작은 평화롭다.
아르헨티나에 사는 23세의 의대생이 친구와 남미횡단을 결심한다.
도로사정 따위는 무시하고 지도를 펜으로 쭉 그어 경솔하게 여행지를 결정한다.
낡은 오토바이 하나에 넝마처럼 주렁주렁 짐을 달고 돈 한 푼 없이 출발한다.....
열정만 있고, 계획은 없는 무모한 여행의 시작....그들에겐 젊음이 있으니까 모든게
용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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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준비미숙으로 인한 수 많은 우여곡절과 고난이 기다린다.
강풍에 텐트가 날아가버리고, 사기꾼이 되기도 하고, 거짓기사를 신문에 싣기도 하고.....무전여행을 하기 위해 온갖 파렴치한 짓을 감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여행과정보다는 남미의 풍광이 너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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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 영화의 백미는 신의 선물인 남미의 자연과 라틴음악의 조화다.
스카보로의 추억과 엘콘도 파사를 연상시키는 음악들이 주욱 깔리는데,
눈과 귀의 즐거움만으로도 영화 티켓 값은 빼고도 남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에 가슴이 뻥 뜷리는게, 이 좁은 반도 땅덩어리 어디서
끝없는 지평선을 볼 수나 있었겠나? 익산에서 전주 가는 30분 정도의 도로에서
처음으로 지평선이라는 걸 보고도 감동했는데.....남미의 지평선엔 넋을 놓을 수 밖에....
굽이굽이 드러나는 안데스 산맥의 황홀경에는 찬사와 함께 신음이 절로 났다.
그림같은 칠레의 해안, 사막, 그리고 아마죤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미개발지를 보는 것만도 정말 행복했다.
칠레의 유적지와 마츄피츄를 비춰주는 앵글을 따라가는 동안은,
겸허지기까지 하면서, 잉카문명에 대한 경외감과 더불어 이를 파괴한 스페인에 대한
분노가 치미는 등 감정이 복잡해지기도 했지만......
감독은 아름다운 자연과 대비시켜 비참한 민중의 삶을 살짝살짝 비추면서
게바라의 의식이 변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는데,
그런 친절한 설명이 없어도 자연을 직접 체험하는 사람에겐 말보다 더 한 감동과
의식의 변환이 생긴다는 건 자명한 사실일게다.
둘째, 知를 추구하는 젊은 모습이다.
끈임 없이 읽고, 일기를 쓰고, 지식을 탐구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오랜만에 봤다.
IT와 핸드폰으로 무장한 요즘 젊은이들이 잃고 있는 소중한 것들. 지식의 탐구,
끊임없는 고뇌, 자기 성찰, 가볍지 않은 언행들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가벼움과 빠름에 익숙한 젊은이들은 知의 추구 안에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체 게바라는 전쟁 중에도
괴테를 손에 들고 있던 사람이 아닌가.
글을 쓰고, 기록을 남기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우리의 60,70,80년대의
젊은이들에겐 이런 모습이 있었는데......시를 외우고, 책을 소중히
여기는 미덕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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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순수하고 고결한 영혼을 만났다.
극도의 궁핍과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영혼만은 항상 맑은 젊은이들을 보았다.
당시 거금이었던, 미화 15달러를 지니고 있던 그는 그 돈을 병원비로도, 밥값으로도
쓰지 않았다. 비참한 노동자에게 주고 만다. 자신도 비참한 상황에서....요즈음의 우리에게 이런 덕목이 있던가.....아마도, 그건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나라면 절대 그 상황에서
돈을 줘버리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을거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래서.....그런 영혼을 가진 젊은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산빠블로 나병환자촌에서 그들의 정신은 더욱 숭고했다. 나병은 전염되는 것이
아니란 걸 안 후, 규칙을 어겨가면서 그들은 맨손으로 환자들을 만지고,
가슴으로 대화하며 그들에게 모든 것을 열어보인다. 도무지, 편견이나 위선, 에고가
보이지 않는다. 생일날, 수녀님과 병원직원들이 차려 준 파티 후,
강 건너에 격리된 환자들에게도 축하를 받아야 겠다며 목숨을 건 도강을 하는
장면은 과히 압권이었다. 그는 중증의 천식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도강 후, 강을 사이에 둔 환자와 직원들의 환호와 눈물....
인간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떠한 벽도 편견도
용납할 수 없다는 젊은이의 순수를 보았다.
넷째,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다.
우리는 빠른 템포, 많은 대사와 상황의 반전에 익숙해 있다.
너무나 빨라서 너무나 말이 많아서 구경을 할 뿐 참여하거나 느낄 경황이 없다.
이게, 허리우드 영화와 흥행몰이를 하는 우리 영화의 현주소다.
함께 영화를 보던 젊은 이들이 지루해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영화 끝난 후 보니 사라졌다. 이 영화 보기를 포기한 것이다. 왜?
이 영화는 지루하다. 절대 빠르지도 변화무쌍하지도 않다.
지루하게 남미의 풍광을 보여주고. 그들의 눈이 돼 세상을 비춰 줄 뿐이다.
같이 느끼기를 바라며, 생각해보길 권하지 재미를 주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영화의 바로보기를 제시하고 있는데,
바로 이 느림이 젊은 관객들이 하품을 하고 도망갈 수 밖에 없는 이유였나 보다.
........
8개월의 여행 후, 두 사람은 갈라섰다.
한 사람은 카라카스에서 의사로, 한 사람은 마이에미로.......
8년 후, 체 게바라가 쿠바에서 알베르토를 부르자,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친구를 찾아간다.
엔딩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화면을 채우는 알베르토의 늙은 얼굴........
그는 일찍 죽어버린 친구를 위해 쿠바에 병원을 세우고, 혁명의 완성을 도왔다.
영화에서 보았던, 사기 친 신문기사. 맘보탱고라고 쓰여진 선물 받은 땟목,
오토바이 탄 그들의 실제 여행 사진들이 올라올때....입가에 미소와 함께
가슴이 져렸던 느낌은...시네마천국 마지막에 키스씬이 흐를때의 감동 이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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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진에 나오는 맘보탱고 땟목
이 영화는 로드무비이고, 성장영화다.
젊은이들은 항상 떠나기를 꿈꾸지만, 생각뿐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는 용감하게 열정만으로 떠났다.
떠날 수 있는 자와 그러지 못하는 자는 분명히 다르다.
빨치산으로 부터, 유신, 국민의 정부로 가는 시간동안, 우리 젊은이들도
체 게바라와 같은 열정을 가지고 혁명을 꿈꾸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이상과 정의에 투신했지만, 우리는 기득권을 놓지 않은채
혁명을 꿈꾸지는 않았는지....그 젊은이들이 모두 현재의 기득권이 되어 있으니.....
중산층에서 태어나 보장된 안락함과 의사의 가운을 던지고,
불합리와 자본주의의 폭력에 맞선 쿠바 혁명의 기수, CIA에 의해 총살당한,
가장 현명하고 인간적인 지도자로 추앙받는 체 게바라가 아닌,
그저 순수하고 가슴이 열린 젊은이 에르네스토를 만날 수 있었다.
ps. 에르네스토 게바라가 체 게바라가 된 것. 영화에서 암시하고 있는데.,
칠레 사람들이 듣기에 아르헨티나 발음은 체가 세게 들린다고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를 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54년 멕시코에서 개명했다.
[ 길 위에서 지낸 기간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체 게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