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공부를 한다는 것이 때로는 외롭기도 하고 지치기 쉬운 여정인데 딸과 함께 공부를 하니 서로가 격려도 하고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하게 되어 얼마나 도움이 되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내가 로스쿨을 간 것이 나의 삶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입시 준비에 지치기 쉬운 딸을 더 이해하고 감싸안을 수 있게 하는 좋은 계기인 것같아 다행스럽다.
자정이 지나 다른 가족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시간에 졸린 눈을 부비면서 빽빽한 활자로 가득찬 사건기록들을 읽다보면 졸음이 밀려와서 커피를 끓이려고 나가보면 딸 아이도 나와 같은 눈으로 나와 있다가 서로 마주 보고 깔깔거리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지는지 모르겠다.
"엄마, 졸지 마세요! 이제 겨우 12시 조금 넘었어요."
"나 안 졸았거든! 네 눈 보니까 몰래 자다가 나온 것같은데?"
낙엽이 너무나 아름답던 가을 날에도, 겨울 햇살이 투명하게 쏟아지는 주말에도 우리 모녀는 함께 책가방을 짊어지고 스타벅스와 도서관을 번갈아가며 찾아가서 엉덩이에 쥐가 날 때까지 함께 공부를 하고 돌아오곤 했다.
작년 이 맘때에는 남편과 커피도 마시러 다니고 아이들 앞세워 공원에도 가곤 했는데 올해 여름부터는 내가 학교에 입학하고 큰 아이가 11학년이 되면서 집안이 다 수험생 분위기가 되었다.
고맙게도 어린 동생들이 언니땜에 놀지를 못한다고 불평을 하는 게 아니라 언니와 엄마를 위해 깜짝 간식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조용히 해야된다고 까치발로 걸어다니면서 엄마와 언니를 도와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이쁘고 고마울 따름이다.
"엄마 공부는 왜 하는 걸까요? 내가 하는 이 공부가 정말로 도움이 되는 공부일까요?"
며칠 밤을 연이어 새벽 두 세시까지 공부를 하느라고 얼굴이 핼쓱해진 큰 아이가 지친 목소리로 물어왔다.
"선영이가 많이 힘들구나? 그래 공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엄마도 너같은 생각을 매 순간 한단다."
"엄마는 그만 하고 싶을 때 없으세요?"
"왜 없겠어. 당장에라도 책을 다 내다 버리고 싶을 만큼 좌절이 될 때도 있고, 이래 가지고 될까 하는 순간도 아주 많아.
나이가 들어 하는 공부이니 젊고 기운 넘치는 다른 동급생들보다 몇 배로 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맘 먹은 만큼 되지 않을 때에는 정말 눈물도 나고 그래."
"그래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세요?"
"그럼. 그만 두고 싶다가도 책을 들여다 보면 빨려들어가는 걸. 공부를 잘하는 것과 공부를 좋아하는 게 서로 다른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 엄마는 공부가 좋아.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거니까 힘이 들긴 해도 맘은 좋은 걸 거야. 선영이도 공부가 좋아야 덜 힘들 거야. 그리고 공부가 아니라도 무엇이든지 힘은 들지만 그래도 하다보면 맘이 기뻐지는 것을 해야 되는 거지. 엄만 그게 공부야."
"그건 나두 그래요. 엄마. 나두 화가 나다가도 수학 문제를 풀면 맘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긴 해요."
빙긋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큰 아이의 수척한 볼을 쓰다듬어 주는데 맘이 아리다.
이제 막 공부의 길로 접어드는 새내기인 우리 딸. 앞으로 10여년을 더 이렇게 공부해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텐데 말이다.
"선영아, 엄마가 언젠가 듣고 아주 감동받은 말인데, 공부는 남을 위해 해야 하는 거야.
내가 잘되려고 하는 게 아니고 공부한 것을 남에게 쓰기 위해 하는 공부라야 진정한 공부가 되는 거란다. 엄마도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잘먹고 잘 사는 것에만 목적이 있는 게 아니야."
"내가 공부하는 건데요?"
"내가 공부하는 거지만 내가 한 공부를 남들이 평화롭게 사는 데에 도움이 되게 써야 한다는 얘기야.
엄마는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변호사가 되는 거니까 아마도 변호사로서 큰 돈을 벌거나 이름을 떨칠 확률은 아주 낮아.
그렇지만 유명한 변호사들이 큰 사건들을 해결하느라고 바빠서 미처 돌아보지 못하는 힘없는 이웃들의 작지만 억울한 사건들에는 엄마같이 이름없고 나이 많은 변호사의 힘이 쓰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공부하는 거야."
"엄마 그럼 나도 언젠가 의사가 되면 내가 힘들여 공부한 거지만 남들을 치료하는 거니까 남을 위한 공부가 되는 거네요.
나는 보건소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가 될 거니까 어쩌면 엄마가 돕게 될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이 나의 환자들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되는 건가? 우리 그럼 동역자들이네? 서로 도와야겠는데!"
딸과 함께 밤을 지새우면서 공부한 이 시간들이 헛되지 않게 우리가 함께 결실을 얻고 먼 훗날 딸과 함께 각자의 분야에 서서 이야기하는 그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언니가 대학 가고 나도 엄마는 외롭지 않게 공부할 수 있어요."
고등학교 신입생인 9학년 둘째가 오늘 아침에 커피를 가져다 주면서 하는 얘기다.
"왜 네가 다음 타자로 엄마 공부 친구 되어주려고?"
"네. 언니는 좀 지루한 타입이지만 전 훨씬 재미있는 공부 친구 될 자신 있어요. 기대하세요."
"엄마, 저도 있어요. 저는 베이킹이 취미니까 엄마에게 맛있는 간식을 제공할 수 있는 공부 친구에요."
세째도 질 세라 한 몫 거든다.
"난 엄마가 공부 다 끝나면 고등학교 가는데 언제 같이 밤 새요?"
막내가 울상을 짓는다.
"엄마는 공부 다 끝나도 일이 많아서 밤에 늦게까지 있어야 될 거야. 네가 공부할 때 옆에서 엄마는 일하면 되지."
"막내만 남으면 그때에는 아빠가 셋째한테 베이킹 배워서 변호사 마누라 간식 만들어줘야겠다!"
늦공부하는 아내의 뒷바라지하느라 우리 집에서 제일 고생이 많은 남편도 같이 끼어본다.
"당신은 간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돈 못버는 변호사라도 걱정없도록 돈 많이 벌어와야지!"
대입을 앞두고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느라 고생스럽다는 또래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솟아난다.
애당초 공부 아니면 안된다는 마음도 아니었던 모자란 엄마이기도 했지만, 지금도 나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공부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아무리 힘이 들어도 하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힘이 들면서도 기쁘기만 한 그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나는 굳게 믿어왔다.
그게 공부라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그 무엇이라면 그것을 해야지만 삶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제일 지루하고 재미없는 나와 큰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행복한 사람들이고, 재주꾼 둘째는 책 한 권만 붙들면 삼박 사일을 굶어도 행복해지는 아이이다.
야물딱스러운 우리 중학생 셋째는 엄마 아빠도 들어본 적이 없는 희안한 각종 레시피들을 찾아 가족들이 깜짝 놀랄만한 요리를 해서 내놓으면서 행복해하고, 동물에 대해 파고들면서 기쁨을 얻는 아이이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막내는 또 무엇에서 삶의 기쁨과 환희를 얻게 될까.
공학을 전공한 남편은 사실 자기는 음악이나 디자인 쪽으로 갔으면 정말 행복하게 일하면서 살았을 거라고 늘 아쉬워한다.
그 아쉬움을 내려놓지 못해 드럼과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고 무엇이든 색감에 뛰어난 모습을 볼 때마다 애당초 전공을 그렇게 정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공부는 무엇을 위해 하는가.
또는 바꾸어 말한다면 무엇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가.
학령기의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누구나 평생을 생각해야 하는 문제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이 곳에 있는가.
온전히 나만을 위해 내 가족만을 위해 하는 일은 오랜 시간을 버틸 동기부여가 되지 못한다.
내가 하고 있는 공부,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결국에는 남을 위해 한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여야 보람도 있고 진정한 의미도 찾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 지쳤다가도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12월 중순에 중간고사가 끝나고 2주의 방학을 보내고 있다.
시험 때에는 시험만 끝나면 하고 싶은 게 어찌나 많던지 맘이 들떴었는데 막상 방학을 하니 집에서 뒹구는 것만 하고 싶어져서 온가족이 일주일을 다함께 뒹굴었다.
1월에 시험을 앞두고 있는 큰 아이는 간간이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만 식구들과 뒹구는 것이 미안해서 오늘부터는 나도 공부 클럽으로 다시 돌아가겠노라고 했더니 씩 웃으면서 좋아한다.
The more, the merrier! Viva! The Dongs Study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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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랭이
'10.12.30 8:19 PM오랜 만이예요,,
저희집 둘째 유치원에서 성품교육을 하고있는데요
지혜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사용할수 있는능력
이라고 노래를 배워 가지고 왔답니다,,, 조그만게 무슨뜻인지나 알고 쫑알 종알 노래를
흥얼거릴까 싶다가도 살아가며 차차 알아지겠지 하며 기다려 봅니다,,2. 찌우맘
'10.12.30 10:03 PM늘 감사하며 글 읽고 있는 한사람 이랍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아이와 가족과의 삶을 반성해 보게 만드는 글....
감사합니다.^^3. 례아
'11.1.2 2:16 PM참 찡하고 마음에 와닿네요~
저도 반성해봅니다4. 변인주
'11.1.5 12:33 AM반갑습니다.
새해에도 열심히 사시는 모습 읽고 있네요.
건강하세요.5. 동경미
'11.1.5 9:47 AM말랭이님,
오랜만이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사용할수 있는능력' 이란 말이 정말 너무 멋지네요. 우리 딸들에게도 바로 번역해줬습니다^^
노래로 흥얼거리면서 다 알아갈 거에요.
찌우맘님,
읽어주신다니 감사드리고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례아님,
마음에 와닿으셨다니 감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변인주님,
오랜만이에요. 새해에도 여전하 분주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6. 시나브로
'11.1.5 11:19 AM동경미님, 따님들 키우고 공부하는 것 보면 늘 감탄합니다. 매번 꼭 필요한 글 올려주어서 감사드려요.
아이들에게 왜 공부해야 하는지 설명하기 곤란할 때가 많은데 저는 '남을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도움을 주기 위해서 너의 역량을 충분히 키우자.'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누고 싶은데 나눌 것이 없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냐는 것을 충분히 이해시키고자 했습니다.
올해도 열심히 공부하셔서 원하는 목표 이루시길 바랍니다
저도 올해부터 대학원공부 시작하는데 동경미님의 용기와 열성이 자극제가 되었답니다.7. 두 딸램
'11.1.5 9:52 PM - 삭제된댓글님의 예전 글들을 다 읽진 못했지만,
읽으면서 참 맘에 와 닿는 것이 많았답니다..
10살,7살딸을 키우면서 순간순간 잊어버릴 수 있는 것들을
깨우쳐주시는 거 같아서,
글로만 뵙는 분이지만,
참 가깝게 느껴진답니다..
님의 글을 읽으면서 내 자신도 돌아보고
아이들과도 더욱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엄마가 되는
이 한 해가 됐음 좋겠네요..
하시는 공부 차근차근 잘 하시길 바라구요..
종종 좋은 글 기대할께요^^8. 소년공원
'11.1.6 12:53 AM존경스런 어머님이세요!
아이가 넷!! 그리고 공부까지...
시간을 황금같이 쪼개서 써도 모자라게 바쁘시겠지만...
그래도 짬을 내서 자주 글을 올려 주세요.
까마득한 후배 엄마로서 많이 배우고 싶어요 ^__^9. 안개꽃
'11.1.6 9:21 AM바쁘신 중간에 이렇게 짬을 내셔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멋지시네요. 건강도 챙기시면서 공부 하시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한편의 동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글입니다.10. 래.나.
'11.1.7 12:00 PM동경미님 글 간만에 보니 반가워요^^
열.공!!하세요^^11. asfreeaswind
'11.1.21 10:03 PM저 또한 많이 감사하면서 글을 읽고 있어요....